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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May 17. 2022

안녕하세요!

인사 잘 하는 사람에 대한 호감

  정말 오랜만에 야구장에 갔다. 우리의 자리는 테이블석. 음식 먹기도 좋고, 홈 바로 앞이라 관람하기에도 참 좋다. 지침이 완화되어 이제는 야구장에서 응원도 가능하고, 취식도 할 수 있다. 날씨도 좋고, 치킨과 생맥주도 맛있고, 간만에 마음의 여유도 있는 환상적인 날이었다.


  타석에 들어서는 각 선수에 따라 각기 다른 응원가를 따라 부르는 것도 재미있고, 점수를 낼 때마다 함성을 지르며 응원하는 것도 신이 났다. 특별히 좋아하는 선수도 없고, 어떤 선수가 잘하고 유명한지도 모른 채 관람을 하다가, 어느 한 선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특별히 잘 하거나 외모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매번 타석에 나올 때마다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예의바르고 깍뜻한 모습에 그 선수에 대해 호감이 생기고, 더 큰 목소리로 홈런을 치라고 저절로 응원하게 되었다. 



  인사는 마법처럼 신기한 힘을 가졌다.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할수도 반대로 닫게 할 수도 있는 엄청난 능력이 어찌보면 대수롭지도 않은 인사에 달려있다. 옆 자리 음악 선생님이 며칠 전에 이런 말을 하셨다.


  "J샘은 왜 복도에서 나를 볼 때마다 인사를 안하고 지나 갈까요? 매번 마주칠 때마다 계속 그러네요. 샘한테는 인사 잘 해요?"

  "특별히 생각나지는 않는데, 제가 먼저 인사하면 그쪽에선 그냥 고개만 까딱하고 지나갔던 것 같아요. 제 인사를 받아주는 것처럼요."

  "내가 인사를 했는데도 인사를 안 하고 지나가니까 은근히 기분이 상하네요. 그렇다고 왜 나를 보고 인사 안 하냐고 정색하고 따지기도 그렇고..."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인사 잘하라는 말을 수시로 하셨다. 왜 그렇게 인사를 강조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인사만 잘 해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지낼 수 있다. 밝게 인사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호감을 준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처음 본 아이가 인사할 때가 가끔 있다. 그런 아이는 그냥 예뻐 보인다. 신기하게도. 



  얼마 전, 급식실 안쪽 구역을 맡아 급식지도를 하고 있었다. 내 수업을 들어서 나를 분명히 아는데, 인사를 안하고 지나가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다. 심지어 국어 부장인 아이가 나를 보고도 못 본척하고 지나갔다. 마음이 살짝 상한다. 뭐지? 분명히 나를 봤는데 인사도 안 하고 가네...흠...  


  예전에는 인사 안하고 지나 가는 아이를 보면, "**야, 안녕~ 선생님 못 봤니? 인사도 안 하고 가네~"라고 내가 먼저 인사하고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인사를 유도하기도 했다. 그러면 아이도 인사를 하면서 못 봤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변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번잡한 상황 속에서 급식 지도를 할 때에는 이렇게 여유있게 말할 수도 없었다.


  정신없이 복잡한 급식실에 서서 1시간 가까이 급식지도를 하다보면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서 금세 지친다. 한 학년이 끝나고 잠깐 여유가 생겨 무심코 배식구 쪽을 봤는데, 급식 당번 아이 한 명이 손을 번쩍 올려 반갑게 흔들고 있었다. 그러더니 펄쩍펄쩍 뛰면서 양손을 반갑게 흔들었다. 저 아이는 누구한테 저렇게 반갑게 인사할까 싶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조금 후에 내가 가르치는 심화국어 수업을 듣는 여학생 한 명이 식판을 들고 다가오면서 말했다.


  "선생님, 조금 전에 제가 인사했는데요..."

  "그랬니? 몰랐어~" 

  "아까 제가 저기에서 인사하면서 팔짝팔짝 뛰었잖아요."

  "아~그래? 아까 흰 배식 모자쓰고 급당했던...?"

  "네, 저예요. 선생님 보고 반가워서 계속 손 흔들고 인사했는데, 못 본 것 같아서 팔짝팔짝 뛰면서 양 손까지 흔들었어요."

  "너였구나~ 샘이 전혀 몰랐네. 미안해라~ 샘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인사하는 줄 알았어. 밥 맛있게 먹어."


  그 다음부터 수업시간에 그 아이를 보면, 왠지 모르게 정이 갔다. 나에게 인사하려고 내가 볼 때까지 팔짝 뛰는 아이에게 어찌 애정이 안 가겠는가. 


  금요일 오후 퇴근하며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3학년 여학생 몇 명이 지나가다가 '어? 논술샘이다."라고 말하며, 가던 길에서 살짝 돌아서 내 쪽으로 와서 반갑게 인사했다.


  "논술 샘!!! 퇴근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논술 샘, 주말 잘 보내세요~"

  "그래, 고마워. 주말 잘 보내~"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그 아이들 덕분에 주말 퇴근길이 더 즐겁고 가벼웠다.    


  지치고 힘들 때, 반갑게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로 기운이 나고 기분마저 상쾌해진다. 특히 매번 나를 보면 멀리에서도 반갑게 달려와 인사하는 8반 회장 진우. "심국 샘~! 안녕하세요?" 오늘도 비타민제 보다 효능 좋은 진우의 인사를 받으니 하루의 피로가 다 풀린 것 같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인사가 사람의 마음과 인간 관계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해 보면, 실로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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