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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May 14. 2022

나도 컴퓨터 잘 다루고 싶어요

기계와 친하지 않은 사람의 비애

  나이가 들면서 일처리의 속도가 빨라져야 하건만, 그와는 정반대로 점점 느려지고 있다. 내가 이렇게 업무 속도가 느린 사람이었나, 싶을 때가 많다. 공강 시간에는 활동지를 만들고, 교과 협의록을 작성해야지, 처리할 일들을 그날그날 몇 가지 계획하지만, 절반을 끝내기에도 늘 빠듯했다. 그러다보니 퇴근할 때마다 무거운 노트북이며 자료들을 주섬주섬 챙겨 일거리를 잔뜩 들고 가야만 했다. 나이들면서 기억력이 감퇴하는 건 그렇다쳐도 왜 이렇게 일을 빠릿빠릿하게 처리하지 못하는걸까.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나름 생각해보니 내가 계획한 일을 하는 중간중간에 메신저로 새로운 업무가 종종 전달되어 급히 처리해야 할 때도 있었다. 때로는 옆자리 선생님과 공강 시간이 일치할 때 대화하느라 일을 못할 때도 있었다. 옆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시는데, 매몰차게 "선생님, 제가 지금 바빠서요."라고 끊을 수가 없어서 들어 드리고 호응하다보면 몇 십분이 훌쩍 지나가기도 했다.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게 "지금은 업무를 급히 처리해야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어떤 무언가를 만들어 책상에 두어 서로 무안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배려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말을 시키는 동료나 중간에 급하게 처리할 일보다 내 업무 속도를 느리게 하는 더 주요한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 워드 프로세서 자격증도 있고,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를 작성하는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다. 기계를 다루는 직관 능력이나 감각이 현저하게 부족하다.


  우리 학교는 이상하게 교실에는 와이 파이를 설치해 주고, 교무실에는 설치하지 않았다. 정보부장님께 교무실에 와이파이 쓰게 해 줄 수 없는지 문의하니 무엇 때문에 안 된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잘 이해가 안 되었다. 전에 학교에서는 태블릿을 사용하여 수업 준비를 할 일이 많아서 교무실에도 와이파이를 설치해 주어 편리했다고 여기도 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전입 교사가 그렇게 말하는 게 좋게 보일리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냥 알았다고 했다. 정보부장은 노트북에 모바일 핫스팟으로 태블릿을 이용하라며 그 방법을 알려주셨다.


  새로운 방법을 배워서 신나게 우리 교무실 선생님들께도 전달 연수를 해 드렸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상하게 모바일 핫스팟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네트워크를 열면 속성 화면 왼쪽 하단에 모바일 핫스팟이 있었는데, 그 화면 자체가 없다. 이것저것 눌러봐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인터넷에 모바일 핫스팟 사용 방법을 검색해 봐도 내가 알고 있는 내용만 설명해 놓았다. 도대체 그 설정 화면이 어디 있느냐고! 으아~! 전에는 네트워크 아이콘을 누르면 나왔는데, 왜 안 나오는지를 알려달라고!


  다시 노트북을 가지고 정보부에 가려 했으나 정보부장님과 공강 시간도 잘 안 맞았고, 벌써 그 전에도 다른 일로 여러 번 찾아가 이런저런 거를 물어보아 남의 소중한 공강 시간을 자꾸 빼앗는 게 미안해서 미루고 있었다. 도저히 불편해서 안 되겠을 때 우연히 화장실에서 정보부장님을 만났다. 5교시 공강이 같다는 것을 알고 도움을 요청했다.   

  알고보니 방법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네트워크 아이콘을 클릭했을 때 그 안에서 '파일' 부분이 활성화 되어 있었다. 그 옆의 '네트워크'가 활성화 되어 '네트워크 및 공유터'를 클릭하면 그토록 찾았던 모바일 핫스팟 설정화면이 나왔다. 작업줄 우측에 알림 아이콘에 '더보기'를 눌러도 설정 화면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단순한 걸 나는 도대체 왜 모르는 걸까? 자괴감이 들었다. 이런 건 어디가서 배워야 하나. 이런 단순한 거 알려주는 연수는 없는데...


  한 번은 수업 자료를 만들다가 EBS 교재의 일부를 출력해야 할 일이 있었다. PDF로 된 파일이었는데, 파일은 잘 열렸지만 이상하게 인쇄가 되지 않았다. 복사기 연결이 잘못되었나 싶어서 다른 한글 파일을 열어 한 장을 출력해보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 뭐지? 왜 갑자기 PDF 출력이 안 되지? 설정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눌러보고 살펴보아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공강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쉬는 시간에 수업을 마치고 들어온 부장님께 물어보자 부장님이 내 자리에 와서 봐 주었는데, 우린 둘 다 문과 샘들.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부장님은 정보부장님께 도움을 요청해 보라고 권했다. 얼마 전에 모바일 핫스팟도 여쭤봤는데, 또 물어보기가 미안했다.


  생각해보니 이건 인쇄 문제이니 일주일에 두 번 오는 컴퓨터 수리 업체에 수리 보수 요청 사항에 올려 놓으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후 점심시간. 업체에서 직원이 와서 10초 만에 출력을 해 주셨다.


  "이거, 지금 어떻게 하셨어요? 제가 아무리 해도 인쇄가 안 되었는데요?"

  "아, PDF 열 때 2018버전으로 여세요. 2020버전은 인쇄가 안 될 때가 종종 있어요."

  "그래요? 당연히 2020 버전이 상위버전이라 이걸로 여는 게 더 좋은 줄 알았어요."

  "기본 설정을 2018로 열게 해 놨으니 이제 괜찮을 거에요."


  식사 후 들어오는 부장님께 말했다.

  "부장님, 나 너무너무 자괴감이 들어요."

  "아니, 왜요?"

  "한 시간 동안 PDF 출력 안 돼서 끙끙대던 것을 업체 분은 10초 만에 해결했어요. 지난 번에 모바일 핫스팟도 그렇고, 나 정말 이런 일 있을 때마다 너무 작아져요. 알고 보면 이렇게 단순하고 쉬운 것을 나는 왜 몰랐던가... 자괴감이 막 몰려와서 자존감까지 낮아지려고 해요..."

  "아니에요. 나도 몰랐잖아요. 다들 그래요."



  또 하나의 작은 사건. 며칠 전에 운이 좋게 행운권 추첨으로 여분의 보조 모니터를 받았다. 보조 모니터를 사용하면 문서 작업을 할 때 편리하다는 것을 전에 학교에서 사용해 봐서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좁은 책상 왼쪽에 겨우 보조 모니터를 놓고 사용을 하는데, 모니터 간에 커서 이동이 잘 안 되었다. 왼쪽에 있는 보조 모니터에서 오른쪽 노트북 화면으로 커서를 옮기려고 마우스를 아무리 오른쪽으로 움직여도 꿈쩍도 안 했다.


 이건 또 왜?? 아아, 이 놈의 컴퓨터, 정말 싫다!!! 나랑 무슨 원수지간도 아니고... 툭하면 지 멋대로 됐다 안 됐다. 나 정말 바쁘다고, 빨리 수업 자료 만들어야 하는데, 커서가 안 움직이면 어떡하라고... 혼자 속으로 씩씩대고 열을 내면서 마우스와 씨름하다가 결국엔 보조모니터를 꺼 버렸다. 이런! 기껏 행운권 당첨돼서 보조모니터를 받으면 뭐한담. 이렇게 제대로 사용도 못하는데... 또다시 자괴감이 몰려왔다.


  정보부에 또다시 도움을 요청했다. 정보부장님은 안 계시고, 계원인 과학 샘이 보조모니터가 노트북의 어느 쪽에 위치하는지 물었다. 왼쪽이라고 답했다. "그럼 보조 모니터 왼쪽 끝으로 쭉 커서를 움직이세요. 그럼 노트북 쪽으로 이동될 거예요." 헉, 이걸 도대체 어떻게 아냐고요! 이렇게 단순한 걸...   

  그런데 커서 이동 방법은 알았지만, 막상 그렇게 쓰려니 불편했다. 왼쪽의 보조 모니터로 커서를 움직이기 위해 왼쪽 방향이 아닌, 노트북의 오른쪽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게 서로 방향이 맞지 않아서 영 불편했다. 그러다보니 보조 모니터를 잘 안 쓰게 되었다.


  며칠 뒤 과학 샘이 주기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내PC지킴이가 다른 아이피 주소에서 실행된 것 같다며 내 자리로 왔다. 실행을 마치고 과학샘이 말했다.


  "보조 모니터는 이제 잘 쓰고 계시지요?"

  "쓰긴 쓰는데요. 커서 이동이 반대라서 너무 불편해요."

  "책상이 좁으니 오른쪽에 있는 책장을 옮기고, 보조모니터를 노트북의 오른쪽으로 옮겨서 쓰세요. 그럼 괜찮아요."

  "아, 저는 보조모니터 위치를 이동해도 커서 이동은 계속 반대로 되는건지 알았어요."


  생각해 보니 예전 학교에서는 보조 모티너를 노트북 오른쪽 두고 사용해서 이런 불편없이 썼었다. 이런 단순한 것들을 몰라서 겪는 불편함이 수도없이 많다. 도대체 이런 것은 어디가서 배울 수 있는 걸까. 유튜브나 검색창에서도 이 정도 수준의 기초적인 내용을 알려주는 곳은 없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직관적으로 컴퓨터를 다루고 싶다. 나도 기계와 친해지고 싶다. 아주아주 격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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