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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Mar 01. 2022

제 전시회 보러 오세요.

제자에게 받은 초대장

쌤! 저 MJ예요! 제가 너무 오랜만에 연락 드렸죠... 잘 지내고 계신가요?
  쌤, 제가 이번에 대학원 석사청구전을 진행하게 됐어요. 
고등학교에서 두 번이나 제 담임 선생님이셨고, 그 아래서 열심히 배우고, 
지금까지 해올 수 있던 건 다 쌤 덕분인 것 같아요.
그래서 감사 인사도 드리고 전시 초대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연락 드려요!
  열심히 준비했으니 혹시 시간 되시면 와서 구경하고 가세요!
  맛있는 커피라도 대접하겠습니다 ☺☺       

  아주 오랜만에 제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 벌써 이 아이들이 대학원을 졸업할 때가 되었구나.' 한편으로는 유수와 같은 빠른 세월을 실감하면서, 자신의 성장을 오래 전 담임 선생님의 공로로 넘겨주는 겸손한 감사 인사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MJ는 내가 한국도예고등학교에 전입한 첫해에 우리 반 학생이었다. 담임을 하면서 매달 다양한 학급 행사를 열어서 아이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었다. 학급 단합대회, 집단 상담, 모둠별 요리대회, 마니또 활동, 선생님과 함께 라면(담임 선생님과 라면 먹으며 이야기하기), 학급 문집 만들기 등등... 그해 우리반 아이들과 함께 한 수많은 추억만큼 아이들에 대한 기억도, 애정도 오래도록 마음 속에 남았다.       


  말수가 적은 MJ는 평소에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는 않는 편이었지만, 학급 행사 때마다 즐겁게 참여하여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아이돌 댄스를 잘 추어서 학교 축제 때 멋진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무언가를 해내고자 하는 의지도 강하고 책임감도 있어 고등학교 시절 내내 최선을 다하는 아이였다. 내 수업 시간에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 활동이나 교과 융합수업을 진행해서 아이들이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이 있었는데, MJ는 수업 시간에 늘 성실하게 참여하여 성취도도 높았다.     

  

  MJ가 고3이 되었을 때 다시 내가 담임을 맡게 되었다. 뭐든 잘하는 아이였지만, 자소서를 준비하면서 MJ가 유난히 많이 힘들어 했었다. 주말에 집에 와서 자소서를 붙잡고 끙끙대고 우는 아이를 보고 MJ 엄마가 너무 안타까워서 나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수차례 자소서 내용을 수정하면서 MJ는 울기도 하고 힘들어했지만, 다행히 끈기있 자소서를 잘 마무리했다. 전공 실기에도 재능이 있어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해 MJ를 비롯해서 3년 동안 가르친 우리 아이들의 입시 결과가 아주 좋았다. 수시 합격 발표가 날 때마다 아이들이 내가 있는 도서관으로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서 안겼다.      

"선생니임~~~~!!! 저 붙었어요!!!
으아~~~ 너무 좋아요.
정말 감사해요, 선생님!!! 엉엉~~~~"      


  아이들과 서로 부둥켜 안고 같이 울기도 하고, 얼싸안은 채 빙빙 돌기도 하고, 펄쩍 뛰기도 했다.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선수처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처럼 그 환희의 순간에 아이들을 축하해 주며, 감격하고 기뻐하면서 그간의 피로함을 씻어내곤 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대학에 가면, 몇 년 간은 많은 아이들이 꾸준히 연락하고 종종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바쁘고 나는 나대로 바쁜 생활을 영위하느라 차츰 연락이 뜸해지고, 또 몇 년이 지나면 하나둘씩 아이들의 소식이 끊어진다.

     

  마흔이 지나면서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바치며 지내왔던 내 청춘이 조금 허망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그 시절,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한편으로 내 개인적인 삶은 점점 줄어들었다. 학교 생활이 나의 전부였던 삶이, 내 청춘을 맞바꾸어 버린 것 같은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은 원하는 진로를 찾아갔는데, 청춘을 다 쏟아부은 나에게는 지금 무엇이 남았을까.      

       

  30대의 내 청춘은 그렇게 급행열차처럼 지나갔고, 나의 보람과 자부심도 점점 희미한 연기처럼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문득 가슴에 휑하니 칼자국을 내며 지나갈 때, 가끔씩 제자들에게 받는 메시지 한 통이 또 다시 나의 가슴에 열정의 불꽃을 일으킨다.    

     


개인전 <CHUBBY ISLAND>     

미의 기준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존재한다.

모든 모습이 존중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매체는 언제나 날씬하고 매끈한 모습을 보편화 시키며 그와 상반되는 모습은 희화화 하는 모순을 보인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외모의 정형화를 좇는 사회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통통함과 굴곡짐, 비정형을 메인 키워드로 하는 Chubby Island 에서는 직선적이거나 정형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오히려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뚱뚱한 살을 모티브로 재치있게 만들어낸 것들이 디폴트인 공간에서 작품을 직접 만지고 사용하는 행위를 통해 일상 속 고정관념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다양한 모습과 굴곡 또한 우리에게 자연스럽고 가까운 것임을_     


  MJ가 보내온 개인전의 주제를 보니 예전에 나와 함께 한 수업들이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었을까 생각해 본다. MJ의 작가의식이 형성되는데 작은 영향이라고 있었다면, 내 30대 청춘을 불태웠던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렇다면, 교사로서 더할 나위 없이 보람되고 감사한 일이지 않을까.

개인전 정말 축하해!!!^^ 전시회 주제가 넘 멋지다!
                   주제의식이 있는 멋진 작가가 되었네~^^                        

  

  그 시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수업을 통해 "사유하는 예술인"을 키우고 싶다는 나름의 목표가 있었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창작하는 원천은 기술적인 면보다는 생각하는 힘이 크다고 여겼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에 어떤 주제 의식을 담아 내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국어 수업에서 사고력을 키우는 다양한 프로젝트 활동과 전공과의 융합수업을 늘 새롭게 기획하고 진행했다. 아이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행복한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나름의 가치관을 형성하기를 바랐다. 그런 생각이 깊이를 더해 작품 창작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늘 연구하고 수업을 다양하게 디자인했다.                                     


  다시 3월이다. 내 청춘을 불태워서 뭐가 남든 어떻든, 최선을 다해 왔으니 그 자체로 된 것이다. 올해 새로운 학교에서 새롭게 만나게 될 아이들과 이번에는 어떤 프로젝트 수업을 할지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막 샘솟는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마음이 통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아이들도 나도 수업을 통해 함께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는 워라밸을 갖추면서 나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찾아 의미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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