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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Nov 17. 2023

복도 감독관도 참 힘드네

수능 감독은 정말 너무 힘들다.

  올해는 수능에서 복도 감독관을 하게 됐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감독을 안 하려고 했으나 학교에서 감독관이 부족하다며 여러 차례 교감 선생님이 간곡하게 협조를 부탁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감독을 하게 되었다. 요즘 수험생들은 툭하면 감독관을 탓하거나 민원을 넣고, 심하면 소송까지 걸기 때문에 교사들은 수능 감독을 꺼려한다. 수능 감독을 안 하는 게 가장 좋지만, 그래도 교실이 아닌 복도 감독관이라 심적 부담은 덜했다.


  수능 전날 점심으로 김밥과 컵라면을 주었는데, 그걸 먹고 급체를 했다. 보건실에 가서 찜질을 하고 누워 있었는데, 배가 계속 쑤시고 열도 나고 메슥거리기까지 했다. 보건 선생님이 주는 진통제를 먹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통증이 너무 심해 허리를 펼 수도 없었다. 보건 선생님은 내 상태가 심각하다며 학교 건너편에 있는 내과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오후에 수능 감독관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기에 1층 시청각실 앞에서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던 몇몇 선생님들이 보건 선생님의 부축을 받아 힘들게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마침 복도를 지나던 교장 선생님과도 마주쳐서 보건 선생님이 상황을 말했고, 누구에게 전해 들었는지 교감 선생님과 교무 부장님은 운동장까지 뛰어나와 괜찮냐며 내 상태를 살피셨다. 길 건너 내과에 겨우 도착했는데, 하필이면 점심시간이었다. 그때가 1시 15분쯤이라 45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다행히 병원 문이 열려 있어서 안에 들어가서 의자에 누워 있었다. 접수를 대신해 준 보건 선생님께 가셔도 괜찮다고 몇 차례 말했으나 누워 있는 나를 둔 채 가는 게 영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계속 옆에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진통제 기운이 그제야 발휘된 건지 콕콕 쑤시던 통증이 점점 덜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보건실에서 찜질하고 누워 있다가 교무실로 올라갔다. 수능 업무를 담당하는 L 선생님이 우리 교무실 앞의 시험실 상태를 체크하다가 교무실 문을 열고 물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예비 감독관이 5명이나 있으니 힘들면 부담 갖지 말고 꼭 말하세요."

  "네, 아까 보다 괜찮아졌어요."  


  수능 당일, 몸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아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했다. 새벽 2시부터 몇 차례씩 계속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학교에 7시까지 도착하면 되는데, 5시부터 준비하고 나오니 6시 30분에 학교 도착. 교무실로 올라가서 무릎 담요와 보온 물주머니 등을 챙긴 후 연수장소인 시청각실로 내려왔다. 아침으로 또 김밥을 받았는데, 어제처럼 탈이 날까 봐 먹지 않고 간식으로 받은 과자만 몇 개 먹었다. 연수 후 2층 감독관 대기실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려고 막 물을 붓자마자 서무요원이 복도 감독관을 찾았다.

  "복도에서 수험생들이 너무 떠들어서 시끄럽다고 계속 민원이 들어와요. 복도 감독관들은 지금 빨리 올라가서 복도 관리해 주세요."


  1교시 감독관 입실시간인 8시 10분이 되려면 20분이나 남은 상황이었다. 급하게 금속 탐지기와 보온 물주머니를 챙겨 들고 담당 구역인 4층 복도로 올라갔다. 한참 이른 시간부터 수험생들을 관리하며 추운 복도에서 계속 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1교시에 시험장 반입 금지 물품을 수거하여 시험 본부에 갖다 줘야 하는데, 내가 담당하는 실이 5개라서 무거운 가방을 양손에 들고 세 번이나 계단을 왔다 갔다 하니 땀이 날 정도였다.


  잠시 후 복도를 순회하던 교감 선생님이 오더니 말했다.

  "선생님, 몸은 괜찮아요?"

  "네, 어제보다 괜찮아요."

  "복도 감독관은 쉬는 시간에도 복도에 상주하면서 학생들이 너무 소란하지 않게 관리해 주셔야 해요."

  몸은 괜찮냐고 물은 건 그냥 인사치레였나 보다.  

  "그럼, 저희는 언제 화장실을 가나요....?"

  "그건 요령껏 알아서 살짝 갔다 오세요..."


  복도 감독관 근무 요령에도 나와 있지 않는 과한 업무 지시였다. 교감 선생님께 지나친 요구라고 말씀드리려다가 수능으로 인해 바짝 예민할 텐데 괜히 감정만 상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같은 층 반대편 복도감독관 선생님께 쉬는 시간 20분 중 10분씩 화장실이나 감독관 대기실에 다녀오는 걸로 우리끼리 융통성 있게 하기로 했다. 보온 물주머니에 따뜻한 물을 갈아주어야 하고, 화장실도 다녀와야 하고, 차 한 잔 마시기에도 10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감독관 대기실에 있는 귤조차 복도 감독관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오전에 시험이 끝나자마자 복도 감독관 5명이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시간이 50분 밖에 안 되어서 양치까지 하기엔 빠듯한 시간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식사를 마치고 나가면서 우리가 밥 먹는 테이블로 오셨다.

  "아이고, 우리 복도 감독관님들 수고 많으세요. 뭐 힘든 건 없으세요?"

  "복도가 너무 추워요."

  5층을 담당하는 L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답했다.

  "히터 틀면 되지, 왜 안 틀었어요?"

  "어느 층은 전원이 켜 지는데, 어느 층은 중앙제어라는 문구가 뜨고 작동이 안 되는 층도 있어요."

  이번에는 내가 답했다. 교장 선생님은 알았다며,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교무 부장님한테 가서 복도 난방기에 대해 지시했다.

  

  급하게 점심을 먹고 양치를 하고, 예비령이 울리기 전에 담당 구역인 4층 복도로 갔다. 복도 난방기가 켜져 있어서 아까와 달리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예비령이 울리고 수험생들이 교실로 들어가자 조용한 복도에 난방기 돌아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3교시 영어 듣기 평가 시간은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 작은 소음도 민원이 될 수가 있는 시간이다. 시험실 상황을 살폈으나 교실 문이 닫혀 있고, 방송 소리가 크게 잘 들려서 그런지 별다른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마침, 방송 담당 H선생님이 순회하면서 귓속말로 나에게 물었다.


  "히터 소리가 좀 크지 않나요?"

  "네, 그런데 전원 컨트롤이 안 돼요."

  복도 벽에 있는 전원을 가리키며 내가 작게 속삭였다. H선생님은 알았다고 하며 내려갔다. 잠시 후 듣기 평가 방송이 잘 나오는지 확인하러 교장 선생님이 복도를 순회했다. 내 쪽 복도로 오더니 난방기 소리가 바로 거슬렸는지 인상을 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방기 소리가 큰 거 같은데, 꺼야 하지 않아요?"

  "네, 근데 여기서 제어가 안 돼서요."

  나는 또다시 복도의 전원을 가리키며 손가락으로 엑스표를 그으며 작게 답했다.

  "그럼 빨리 본부로 와서 말했어야지."

  H선생님이 확인하고 조치하러 갔다는 대답을 하려 했으나 성격 급한 교장님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벌써 아래층으로 내려가셨다. 잠시 후 3학년 부장님과 교장님이 다시 등장. 3학년 부장님이 복도 전원을 눌렀으나 역시 제어가 되지 않았다. 교장님은 다시 내려가서 이번에는 행정실장님을 대동하고 다시 등장. 통제되지 않는 전원을 또다시 눌러보고 이런 거 저런 거를 하던 중에 누군가가 중앙제어 장치를 움직였는지 복도 난방기가 그제야 꺼졌다.


  "난방기 제어가 안 되면 진작에 본부에 알렸어야지."

  아침부터 꼼짝없이 복도에서 추위에 떨며 고생하는 내 쪽으로 교장 선생님이 다가와 또다시 난방기 소리를 조치하지 않은 탓을 했다.

  "아까 H선생님이 확인하고 가셨어서요."

  "이따 시험실에 방송 잘 들렸는지 확인해 봐요."

  "네..."

  교장님은 얼굴빛이 약간 풀어진 채로 사라졌다. 듣기 평가가 끝나고 시험실에서 결시자 현황표를 건네받으며, 난방기 근처 시험실에 있던 감독관에게 방송 잡음 없이 잘 들렸는지 물었더니 괜찮았다고 답했다. 시험 본부에 결시자 현황표를 건네주고, 교장 선생님께 가서 시험실에서 방송 아무 이상 없이 잘 들렸다고 보고했다. 그제야 교장님은 표정이 밝아졌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4교시까지 시험을 치르는 수험장이어서 16시 37분에 시험은 종료되었다. 하지만, 답안지 확인 및 모든 이상유무를 체크하기까지 수험생이나 감독관은 한참을 대기해야 한다. 따져보니 거의 9시간 동안 복도에서 있었다. 하루종일 긴장하고, 왔다 갔다 하며 진이 다 빠졌다.


  복도 감독관은 시험실에서 도장 찍는 게 없어서 다행히 다른 감독관보다 빨리 퇴근할 수 있었다. 급하게 짐을 챙기고 시동을 걸어 나가려는데, 교문 앞에 수험생을 기다리는 학부모들이 우산을 들고 구름처럼 몰려 있었다. 학교 앞 도로에는 학생들을 마중 나온 학부모들의 차가 길게 늘어서 있고, 통행하는 차들과 엉켜 있어 교문을 빠져나가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차! 내 핸드폰!!! 아침에 제출한 핸드폰을 돌려받지 않고, 급하게 나온 것이었다. 내 차는 교문 입구 중간에서 목을 내밀고 있었고, 내 차의 꽁무니에 바로 다른 차가 바짝 따라 나오는 중이었다. 차 문을 빼꼼 열고 주차 관리를 하는 주무관님을 불렀다. 순간, 교문 앞에 서 있던 학부모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민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주무관님이 내 목소리를 못 들어서 서 있던 누군가가 불러 주어 겨우 주문관 님에게 말했다.

  "주무관님, 죄송한데, 저 후진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핸드폰을 못 받았어요..."

  "지금 후진 못해요. 그냥 나가세요."

  "네......"

  이럴 거면, 괜히 창문을 열었다 싶었다. 할 수 없이 차를 빼서 바로 앞 신호에서 좌회전을 하여 학교 건너편 상가 쪽 주차장에 급하게 차를 세웠다. 우산과 차 키만 챙겨 들고 학교로 뛰었다. 교문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는 학부모의 틈바구니를 뚫고 다시 학교로 들어가야 했다. 그들의 시선을 뒤로 한채 뛰어서 학교로 들어왔다. 계단을 뛰어올라 2층 시험 본부로 갔다. 핸드폰을 어디에서 찾는지 몰라 헤매다가 겨우 받아왔다.


  다시 교문 앞의 인파를 헤치고 나가야 하는데, 정말 너무나도 민망했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는 노릇. 에라, 모르겠다. 그냥 뛰자. 수험생이 나오기만 기다리며 목이 빠져라 학교 안을 바라보는 학부모들 사이를 뚫고 무작정 뛰었다. 신호등은 왜 이리 안 바뀌는지... 겨우 차 있는 곳까지 왔다. 아휴~ 온몸에 힘이 다 풀렸다.


  집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려면 유턴을 해야 하는데, 유턴하는 곳이 없어 한참을 돌아 겨우 집으로 가는 도로에 올랐다. 새벽에 집에서 출발하여 다시 돌아오기까지 무려 13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 동안, 너무나도 정신없고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 옷을 갈아입고 씻을 힘도 없어 한참을 그냥 힘없이 누워 있었다. 복도 감독관도 참 쉽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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