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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Dec 12. 2023

이맘때는 늘 심란하고 갈팡질팡

선택은 언제나 어렵다.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이맘때 교사들은 학기말 업무로 바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공립학교 교사들은 몇 년마다 학교를 옮기는데, 11월 말이면 내신서(학교를 옮길 때 내는 인사 서류)를 쓰기 때문이다. 학교를 옮길 것인가, 그냥 있을 것인가. 옮긴다면, 관외(지역을 옮겨서 이동하는 것)로 쓸 것인지, 관내(현재 있는 지역 안에서 옮기는 것)로 쓸 것인지,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학교급을 옮길 것인지 등등 거취를 고민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선택은 늘 고민되고 어렵다. 무엇보다 선택 이후의 상황을 알 수 없으니 그 결과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크다. 같은 공립학교 교사이지만, 어느 학교에 근무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과 정신적인 편안함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학교가 어느 지역에 있는지,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있는지,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성향이 어떤지, 교사와 학교에 대한 요구나 민원이 많은지 등은 근무환경에 정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학교의 규모나 동 교과 교사 수도 고려하지만, 이보다는 학교 분위기, 교사들의 관계, 교장이나 교감 등 관리자의 인품과 성향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 부분은 매해 사람들이 바뀌기 때문에 가늠할 수가 없다. 이런 불명확한 상황 속에서 학교를 옮기는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출퇴근 상황은 기본이고 온갖 학교의 정보를 확인하고, 비교하며 장단점을 분석해야 한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 그대로 남아 있는다 해도 심란한 건 마찬가지이다. 내년에 어느 부서로 갈 것인지, 어떤 업무를 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이런저런 떠도는 정보에 민감하게 귀를 기울인다. 학교에서 어떤 사업을 중점적으로 할 예정인지, 부장이 누구인지 등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담임을 하게 되면 가르치던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가야 할지 다른 학년을 맡을지, 교과만 담당한다면 어떤 학년, 어떤 과목을 가르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   


  인사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함부로 단언할 수가 없다. 2월 말 업무분장이 발표될 때까지는 변수도 너무나 많다. 1년에 한 번씩 이렇게 거취에 대해 고민하고 결정하는 상황이 교직 생활 20년이 넘어도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올해 출퇴근 거리가 왕복 3시간 정도 되는 학교로 오니,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예전엔 운전하는 것이 좋았는데, 점점 나이가 드니 이젠 차선 하나 바꾸는 것조차도 신경을 바짝 쓰고 근육이 경직되는 것이 느껴질 정도이다. 지난번 교과부장 회의에서 국어과가 1명 TO감 되었다길래, 1년 만에 TO감 내신을 쓰는 것까지 생각했었다. TO감은 무조건 학교를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엉뚱한 곳으로 튕겨갈 수 있는 위험 부담이 있어서 한 달 넘게 고민하고, 교감 선생님과 면담 끝에 그냥 지금 학교에 남기로 했다.


  업무분장 희망원을 월요일까지 내야 는데 또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다. 지금 담당하고 있는 인문사회교육 비담임 업무를 계속하고 싶은데,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서 업무메신저에 접속했더니 교감 선생님이 주말에 보내놓은 메시지에 심란하고 불안한 마음이 더해진다.



한 가지 부탁의 말씀을 드리면 현재까지 90%의 선생님들이 업무 희망원을 제출하셨습니다. 담임을 하시겠다고 희망하신 분이 12분이네요.. 나머지 18 학급은 담임 없이 학교를 운영해야 할지 아니면 제가 18 학급 담임을 다 해도 될지 힘드네요. 모두가 다 힘들고 이유는 충분합니다.

최대한 개인의 희망을 반영하려 해도 무리수는 어쩔 수가 없다는 결론이 1분 단위로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들 업무분장이 어찌 결정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꼭 원하시는 대로는 안될 수도 있을 듯하다는 말씀을 미리 드립니다. 원망해 주세요 저를.... 일 년 동안 원망을 듣도록 마음 단단히 먹을게요...

주말 푹 쉬시고 월요일 뵐게요.



  장거리 출퇴근만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추적관찰하며 검진받는 병원도 두 곳이나 되어서 건강상의 문제로 담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 주변 지인들은 전에도 부장을 했었으니 학교에 남는 김에 차라리 부장을 하는 게 낫지 않냐고 하길래 부장을 할까 고민도 했다. 근데 예전만큼 체력도 에너지도 되지 않아 괜히 부장 맡았다가 무리하게 될까 걱정도 된다. 아휴, 갈팡질팡 고민만 더 얹어졌다. 무엇을 맡든지, 어디에 있든지 좋은 사람들과 지내며 마음이 편안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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