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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Jan 15. 2024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11화

11화. 질병 휴직

  여름 방학을 앞두고 향진중학교에서는 은혜의 2학기 수업 복귀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이루어졌다. 인사위원회에서는 은혜의 수업 복귀로 뜻을 모았다. 교육과정 부장 홍선영과 3학년 부장 조영심이 인사위원에 들어가 있어 회의 분위기를 복귀 쪽으로 만들어 둔 덕이었다. 교무부장은 학부모 대표의 반발이 우려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으나 대다수 인사위원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인사위원회가 끝나고 선영이 은혜에게 만장일치로 수업 복귀 의견이 모아졌다는 회의 결과를 은혜에게 알려주었다. 

  “이번 주에 교장이 부친상 중이라서 다음 주에 출근해서 승인만 하면 돼요. 근데 인사위원회 결정과 상관없이 교장이 학부모 대표들한테 끌려다니고 있어서 아직 안심하기는 힘들어요. 또 무슨 핑계를 대면서, 복귀는 안 된다고 막아버리면... 교감이야 교장 눈치만 보는 허수아비라서 교장이 안 된다고 하면 바로 말 바꿀 사람이고.”

  선영의 말대로 은혜는 안심할 수 없었다. 교장은 교사들의 의견보다는 목소리 큰 학부모 대표들의 말을 따를 것이 분명했다. 학교장과의 수업 복귀로 인한 계속된 갈등 상황이 은혜의 마음을 더욱 힘들게 했다.


  은혜가 우려했던 대로 며칠 뒤 교장은 전화하여 병가 연장을 강요했다. 은혜가 복귀하겠다고 하자 녹음테이프를 돌리듯이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선생님이 병가 연장을 하지 않고, 출근한다면 학교에서는 교육청에 직위해제 요청을 할 겁니다. 선생님이 알아서 판단하세요.”

  은혜가 강하게 복귀를 말하면, 교장은 더 크게 언성을 높이며 직위 해제를 운운했다.      


  은혜는 학교장과의 계속된 대립 상태에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경찰 수사 이후 힘겨운 마음을 추스리기도 전에 또다시 만신창이가 된 것 같았다. 학교장의 연락을 받을 때마다 가슴 통증은 강도가 점점 심해졌다. 이런 상태로 출근하는 것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방학 전까지 남은 병가와 연가를 모두 다 써서 1학기를 쉬고, 2학기에 복직하기로 결정했다.           


  잠잠했던 1학년 국어 교사 단체대화방에 장영미가 먼저 노크를 해 왔다. 인사위원회의 결정을 듣고 2학기 수업시수 배분을 위해 협의를 하고 싶다는 용건이었다. 1학기에는 비담임이었던 은혜가 담임인 장영미와 신규 최지혜를 배려해 혼자 20시간을 맡고, 담임들은 16시간을 맡았다. 2학기에는 최지혜가 20시간을 하기로 1학기 시수를 배정하면서 이미 얘기가 된 상황이었다. 


  2학기에는 자유학기 수업인 주제선택, 예술체육, 진로동아리를 어떻게 배분할지만 논의하면 될 일이었다. 주제선택은 담당 교사가 직접 수업 활동계획을 세우고 프로그램을 짜야했지만, 예술체육과 진로동아리는 외부강사가 들어오는 수업이 많아서 임장 지도만 하면 되는 수월한 수업이었다. 자유학기 수업을 어떻게 나누면 좋을지 은혜가 운을 떼자 신규 지혜가 바로 자신의 뜻을 밝혔다.    

 

 -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번에 예술체육과 진로동아리를 맡고 싶어요. 1학기 때 정은혜 선생님 수업 보강하느라 저희가 정말 엄청 고생했어요. 2학기 때는 제가 20시간 하기로 전에 얘기는 됐었지만, 보강하느라고 고생했던 시간을 감안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저희들이 선생님의 탄원서도 힘들지만 작성해서 드렸다는 점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25살 신규의 당돌한 메시지에 은혜는 적잖이 놀랐다. 요즘 신규들은 자기주장도 강하고, 자신들이 챙길 것은 기가 막히게 챙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장영미에게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은혜가 묻자 그녀도 주제선택 수업은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에둘러서 표현했다.     

 

 - 선생님들 원하는 대로 해요. 2학기에도 내가 20시간 하고, 주제선택도 내가 맡을게요. 1학기 때 본의 아니게 내 수업 보강하게 해서 미안하고, 보강 들어가느라 고생했어요. 탄원서 고마웠고요.    

 

  은혜는 착잡한 마음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스무 시간이면 어떠랴. 강사가 들어오는 수업을 맡으면 편하겠지만, 주제 선택 수업 프로그램 기획 정도야 은혜에게는 자신 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수업에 복귀할 수 있다면 시수가 많은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2학기 첫 수업에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시작하려면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수업 자료 폴더를 뒤적였다. 



  방학을 며칠 앞두고 3학년 학부모 대표 양미영과 1학년 9반 학부모 대표 최민경이 교장실에 찾아왔다. 교장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고 짐짓 미소를 지으며 학부모들을 맞이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양미영이 본론을 꺼냈다.

  “정은혜 선생님 2학기 수업 복귀를 반대하는 뜻을 명확히 전하러 왔습니다.”

  “인사위원회에서 복귀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는...”

  “이번 사안은 학부모나 아이들의 의견이 더 중요한 거 아닙니까? 아직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않았어요.”

  교장의 말을 자르고 양미영이 계속 말을 이었다. 


  “만약 학부모회의 뜻과 달리 정은혜 선생님이 돌아온다면, 언론에 이 사안을 알릴 겁니다.”

  “아이고, 언론이라니요... 그 무슨 말씀을...”

  언론이라는 말에 교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양미영이 교장의 표정을 읽고, 옆에 앉은 최민경의 옆구리를 찌르며 거들라는 눈짓을 했다.

  “언론 보도는 물론이고, 학부모회 주최로 교문에서 피켓 시위를 하며 집단행동까지 불사할 생각입니다.”

  최민경이 피켓 시위라는 말에 힘주어 말했다. 기세를 몰아 양미영 씨가 덧붙였다. 

  “정은혜 선생님한테 저희 학부모 대표의 뜻을 그대로, 분명하게, 전해 주세요!”     


  학부모들이 돌아가고, 교장은 바로 은혜에게 연락을 했다. 은혜는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부재중 전화로 떠 있는 교장의 이름을 확인하고 가슴이 철렁해졌다. 이번 일이 발생하고부터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려서 핸드폰을 늘 진동이나 무음 상태로 설정해 두고 있었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은혜는 긴 호흡을 내쉬고 전화를 걸었다.       

  “정은혜입니다. 전화하셨네요.”

  “정은혜 선생님, 학부모 대표의 뜻을 전해줘야 할 것 같아 연락했습니다.”

  교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딱딱하게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교장은 학부모들의 의견이라면서 양미영과 최민경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교장 선생님, 정말 궁금한데요. 그렇게까지 학부모들이 제 복귀는 막는 이유가 뭐랍니까?”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아직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나는 분명히 학부모 대표의 의견을 전달했고, 선택은 정은혜 선생님이 이제 알아서 하세요.”

  은혜의 물음에 교장은 사무적인 투로 학부모들의 의견을 전했다. 은혜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 후 전화를 끊었다.      


  은혜는 교장에게 찾아간 학부모가 3학년 학부모 대표 양미영 씨와 1학년 9반 최민경 씨 일 거라고 짐작했다. 도대체 그들은 왜 이렇게까지 복귀를 반대하는 건지 그 속내가 궁금했다. 3학년 학부모 대표는 무슨 원수를 지었다고 자기 아이와 해당도 없는 일에 나서는 건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1학년 부장이 전에 말한 대로 은혜가 돌아오면, 아이들에게 무슨 보복이라도 할까 봐 그러는 것인지. 도대체 교과 교사가 아이들에게 무슨 보복을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지레 판단한 건지 생각할수록 가슴이 갑갑해졌다. 아니면, 학부모 대표들 간의 알력 싸움에 이 사건이 제물이 되어 버린 건가 싶었다. 1학년 담임들 말에 의하면 아이들은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고 있다는데, 왜 자신만 이렇게 힘들게 보내야 하는지 화가 나고 억울했다.    



  교장과 교감은 하루가 멀다 하고 번갈아 전화하여 은혜에게 2학기 휴직을 종용했다. 학부모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으름장도 잊지 않았다. 관리자는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선배 교사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체감하는 날들이었다. 2학기부터 수업에 복귀하더라도 수사가 길어지면, 제대로 학교 생활을 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은혜는 교감에게 통화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다. 바로 교감에게 전화가 왔다.

  “원하시는 대로 2학기에 질병 휴직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교장 선생님께 그렇게 전할게요.”

  교감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로까지 안도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교감 선생님, 한 가지 요청이 있습니다.”

  “그래요, 말해 보세요.”

  “제가 이대로 질병 휴직을 하면, 아이들과는 그 사건 이후로 오해를 풀지도 못하고 끝나버립니다. 제가 수업했던 아이들을 한 번 만나서 제 마음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학교장이 바로 수업 배제를 하는 바람에 3월 말 이후 은혜는 아이들을 전혀 만나지 못했다. 지난번에 담임들은 은혜에게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낸다고 했고, 심지어 은혜가 신고를 당해 수사까지 받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아이들도 많다고 했다. 은혜는 이번 일로 인해 받은 상처가 너무나 깊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잘 매듭을 짓고 싶었다.     

  “교장 선생님께 잘 말씀드려 볼게요.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과의 만남을 허락한다 해도 오늘이 방학이니 2학기 개학하고 가능할 것 같네요.”

  “상관없습니다.”


  “참, 정 부장! 선임한 변호사는 잘하고 있나요?”

 언제부터 은혜 일에 나서줬다고 이제 와서 변호사 선임을 체크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은혜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갑자기 그건 왜 물으세요?”

“변호사가 제대로 신경 써서 일하게끔 자꾸 압박도 해야 한다고 누구한테 들었거든. 이런 일을 맡았으면 변호사가 나서서 애들을 만나서 합의를 하기도 하고 탄원서를 받아주기도 한다던데. 정 부장 변호사는 뭘 나서서 하는 게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교감은 새삼스럽게 오지랖 넓은 소리를 하다가 건강 잘 챙기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교감의 전화를 끊자마자, 은혜의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권 변호사였다.

  “네, 변호사님.”

  “선생님, 경찰에서 한 번 더 출석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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