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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Jan 22. 2024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12화

12화. 두 번째 경찰 조사

  “경찰에서 갑자기 왜요? 경찰 조사는 한 번 아니었나요?”

  갑작스러운 소식에 은혜가 놀라서 권 변호사에게 물었다.

  “드물긴 하지만, 가끔 보강 조사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그럼, 전 뭘 어떻게 준비하면 될까요?”

  “특별히 준비하실 건 없어요. 시간 확정되면 연락드릴게요.”     


  경찰 조사를 또다시 받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은혜는 마음이 무너졌다. 불안감은 커져만 갔고, 매일 잠을 설쳤다. 정신의학과에서 좀 더 강한 약을 처방 받아서 먹고 있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아침마다 눈을 떠서 현실을 자각하는 것이 괴로웠다.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점점 무기력해졌다. 언제까지 이 일이 계속될는지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깊은 우울감이 몰려왔다.      


  변호사를 선임했어도 당사자가 준비하고 작성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겨우 기운을 내서 수업 시간에 했던 활동을 증명해 주는 체크리스트와 수업 활동 내용을 기록해 둔 자료를 정리하고, 진술서를 수십 번 고쳐 썼다. 동료들과 지인들이 추가로 보내 준 처벌불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목록도 작성했다.

 


  2주 만에 은혜는 또다시 경찰청에 출석했다. 한 번 수사를 받아봤지만,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사관은 아이들이 과장해서 진술한 폭언 관련 내용을 중점적으로 물었다.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왜 서너 명이나 이런 내용의 진술을 했을까요?”

  “제가 알기로는 학급 회장의 목격자 진술에서 거론된 아이들이 교실에 한꺼번에 모여서 사실확인서를 작성했다고 들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남자아이들 특성상 함께 모여서 쓰다 보니 같이 흥분하거나 감정적으로 동조하여 과장한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억울함을 풀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전혀 사실이 아니었어도, 몇 명의 아이들이 써 놓은 내용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모든 학생에게 전수 조사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진술내용에 더 무게가 실리는 듯했다. 은혜는 진실을 밝혀줄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전혀 없었다. 학기 초 3월에 벌어진 일이아이들과 래포 형성도 되지 않아 따로 연락할 수 있는 아이도 없었고, 바로 수업에서 배제되어 아이들과 만날 수도 없었기에 진실을 밝혀 줄 증언을 받을 수도 없었다. 변호사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쓴 내용을 은혜의 진술보다 무게를 둘 수 있다고 했었다. 여러 명이 마음먹고 합작하면 한 명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임에도, 수사관은 피의자가 된 은혜의 말보다 피해자로 상정된 몇몇 아이들의 진술을 신뢰하는 듯했다.     


  “아이들을 향해 공책을 던진 적이 있나요?”

  “아니요. 저는 공책을 던진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공책을 던졌다는 진술 내용은 왜 있을까요?”

  “제가 독서일지 개별 지도 후 공책을 돌려주는 과정에서 공책이 교탁을 맞아 튕겨서 바닥에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공책을 아이가 주우면서 감정이 상해서 그렇게 작성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수사관은 계속해서 과장된 진술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했고, 은혜는 사실대로 조목조목 답변했다. 이번에는 쉬지도 않고 네 시간 넘게 조사가 이루어졌다. 


  “검찰로 넘기실 건가요...?”

  조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권 변호사가 수사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무래도 피해자 진술이 여러 명이니 검찰로 넘어가긴 할 것 같아요.”

  “이 정도 사건이면, 검찰에서는 기소 유예를 받을 수 있을까요?”

  “제가 뭐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 일로 선생님도 고생이 많으니 최대한 빨리 조서 넘기려고 해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권 변호사가 깍듯하게 인사했다. 옆에 있던 은혜도 수사관에게 수고하셨다며 인사했다. 수사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불안했고, 두려움에 가슴에 통증이 심해졌다.  



  “경찰 조사를 왜 두 번씩이나 한 걸까요?”

  권 변호사를 배웅하러 큰 도로까지 같이 걸으며 은혜가 물었다.

  “지난번 경찰 조서만으로는 검찰에 넘기기 부족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또 변호인 의견서에 계속 무혐의 주장을 한 것을 괘씸하게 여겼을 수도 있고요.”

  “그게 왜요...? 당연히 제가 정서적 학대를 한 게 아니니 무혐의 주장을 하는 게 맞지 않나요?”

  “잘못을 인정하고 선처해 달라는 식의 내용을 더 좋게 보는 수사관이나 검사들도 많거든요.”


  권 변호사의 변호인 의견서 마지막 부분을 은혜가 수정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었다. 선처해 달라고 쓴 문장을 혐의가 없다는 내용으로 바꿔서 무혐의 주장으로 의견서를 제출한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권 변호사의 말을 들으니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괜한 요청으로 일을 그르친 것만 같아 자책이 들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제가 알지도 못하면서 일을 망쳤나 봐요... 흑...”

  경찰 조사를 두 번씩이나 받게 만든 게 자신 탓인 것 같아 은혜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워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은혜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 일을 겪으며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한여름 대낮에 길거리에서 이렇게 큰 소리로 목 놓아 울게 될 줄은 몰랐다.     


  도로 앞 신호등에서 중년의 여성이 권 변호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젊은 남자 앞에서 끄억 거리며 우는 은혜를 보며, 남자가 대체 어떻게 했길래 여자가 이토록 오열을 하나 의심스러운 눈초리였다.

  “그런 거 아닙니다. 저는 이 분의 변호사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가세요.”

  당황한 권 변호사가 중년의 여성에게 말했다. 그제야 은혜는 이 상황이 권 변호사에게 괜한 오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한 마디 거들었다.

  “네. 제 변호사님이 맞아요. 흑흑...”

  중년 여성은 은혜의 말을 듣고야 시선을 거두었다.

  “변호사님,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제가 요즘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계속 눈물만 나고...  저도 저를 어떻게 하지 못하겠어요.”

  은혜는 겨우 울음을 멈추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 제가 보기에는 무엇보다 멘털 관리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의뢰인들 보면 사건 자체보다 스트레스로 건강까지 잃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건강이 가장 중요해요. 이 사건이 사실상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아니고, 별거 아니에요.”

  “하지만, 저한테는 너무 중요한 일이에요. 저는 아이들에게 정서적 학대를 한 교사라는 오명을 받고 싶지 않아요.”

  “최악의 상황을 말씀드려 볼게요. 검찰에서 혐의 없음이나 증거불충분 나오면야 가장 좋겠지만, 쉽지 않을 수 있어요. 기소 유예가 나온다면, 재판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니까 다행이고요. 만약에 기소 됐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사건은 약식으로 재판 없이 벌금형이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최악을 생각하더라도 벌금형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 인생이 끝나지 않아요.”

  권 변호사의 최악의 상황을 듣고 나니 상상만으로도 은혜는 아찔했다.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를 받아야 해요. 이 일로 인해 잘못하면, 교육청에서 징계까지 받을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정말 저는... 흑흑...”

  참았던 눈물이 다시 터져 나왔다.     

  “저도 정신의학과 다녀봐서 조금 아는데요. 지금 선생님은 우울 삽화가 심각한 것 같아요. 사건 자체보다 이런 일로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게 더 무서운 거예요. 잠시 이 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어디 바람이라도 쐬고 오세요.”

  은혜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권 변호사가 말한 최악의 상황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모든 게 끔찍했다. 권 변호사가 호출한 콜밴이 얼마 후 도착했다. 권 변호사를 보내고, 은혜는 근처 호수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공원에는 자전거를 타거나 배드민턴을 치며 운동하는 사람도 있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도 꽤 많았다. 공원에서 한낮에 여유 있게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은혜는 자신만 힘겹게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것 같았다. 은혜는 사람들이 뜸한 쪽으로 걸었다. 온몸에서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듯 기운이 없었다. 휘청거리다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또다시 울음이 북받쳐 올랐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끄억끄억 소리 내어 울었다. 애참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경찰에 두 번이나 출석해서 조사받은 것 자체가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고작 이런 꼴 당하려고 그토록 열심히 지도했었나. 월급 받는 만큼만 적당히 수업해도 됐을 것을 뭐 하러 그렇게 열심을 내었단 말인가, 스스로를 탓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청춘을 다 바쳐 학교에 올인했던 모든 것이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은혜는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세상을 떠난 그 어느 유명인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자신이 추구했던 삶을 배반하는 왜곡된 상황에서 수치를 견디지 못하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은혜는 호수의 반짝이는 윤슬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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