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결국 혼자
성현 엄마의 지나친 행동에 대해 다른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말이 오갔다. 평소에 성현의 행실이 좋지 못했고 수업 방해가 심각했으며, 친구들한테 함부로 하고 현욱이를 따돌리기도 했었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성현의 행동에 대해 현욱이 아버지가 성현을 왕따 가해자로 학폭 신고를 했다. 현욱 아버지는 성현 엄마가 담임인 민영을 두 번이나 신고해서 담임이 병가를 낸 상황에 대해 분노하며, 성현에 대해 절대 합의하지 않겠노라고 강하게 응수했다.
하지만, 현욱 아버지의 불타올랐던 의지는 현욱에게 또 다른 문제가 닥치자 너무나 초라하고 맥없이 한순간에 꺾였다. 성현 엄마는 현욱이가 성현의 지나친 장난에 화가 나서 “이, 개새끼가!”라고 욕했던 일을 끄집어내어 현욱이를 학교폭력으로 맞신고했다. 결국 현욱 아버지는 성현 엄마와 서로 없던 일로 하자고 합의를 보고 며칠 만에 끝냈다.
최근의 학교 폭력 신고는 네가 신고하면, 나도 신고한다는 식의 진흙탕 싸움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흔하게 있을 수 있는 장난이나 언행에 대해 상처를 입었다고 신고하면 그만이었다. 신고를 당한 쪽도 혼자 당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의 케케묵은 실수나 잘못된 행실을 찾아내어 변호사를 선임하여 맞대응하고 있었다. 툭하면 학폭 신고를 해대니 학폭 업무 담당자만 매번 사안 조사하고 서류 작성하느라 야근이 일상이었다. 교육청으로 학폭 사안이 이관되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조사하고 처리해야 할 행정업무는 그대로였다. 언제부터인지 변호사를 선임하며 법과 규정으로만 잘잘못을 판단받으려 하면서 더 이상 학교나 교사의 중재나 개입은 어려워졌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교사가 학부모에게 말 한마디라도 실수했다가는 그것을 빌미로 신고당하기 일쑤였다. 잘못이 있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용서와 화해를 통해 사회성을 배워나가고 그 과정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혜진은 민영이 안타까웠다. 사고 치는 아이들이 많은 2학년 1반을 맡아 아이들과 학부모 상담하고 번번이 사건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민영은 중학교에 근무하면서 야근도 자주 했다.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면서도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 못 간다는 민영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었다. 혜진은 민영 집 근처의 카페에서 민영을 불러냈다.
“민영 샘, 성현 엄마 같은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은 더 세게 나가는 수밖에 없어요. 그냥 당하고 있으면 샘을 더 우습게 알고 이 일을 그냥 끝내지 않을 거예요. 내 생각에는 샘도 성현 엄마를 명예훼손과 성희롱으로 고소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요. 성현 엄마가 학교 와서 진상 부리고 막말하고 민영 샘에 대해서도 선생이 야동 보는 거 아니냐고 말했던 것까지 모두 다 내 교무수첩에 그대로 적어 놨어요. 내일이라도 경찰서에 가서 샘도 맞고소해요.”
혜진은 민영에게 교무수첩 복사본을 내밀었다.
“부장님, 제가 경찰 조사를 받아 봤잖아요. 그게 참 너무 수치스럽고 힘들더라고요. 지금도 검찰 조사받으러 갈 생각을 하면 숨도 못 쉬겠어요. 제가 고소하면, 성현이도 제가 당한 것처럼 경찰서 불려 다니고 할 텐데, 어떻게 제가 우리 반 아이에게 그렇게 하겠어요. 저는 고소 안 할래요. 그리고 더 이상 송사에 얽히고 싶지도 않고, 그럴 에너지도 없어요.”
“아이고, 샘! 누가 교사 아니랄까 봐! 그렇게까지 생각할 거 없어요. 지금은 어찌어찌 버티고 있어도, 이런 일 겪으면 그 상처가 살면서 계속해서 올라올 거예요. 애 생각하지 말고, 지금은 샘만 생각해요. 이렇게라도 해야 억울하지 않지요. 그리고, 우울하면 정신의학과도 가고 심리치료도 받고 해요. 마음에 병들면 더 힘들어요.”
혜진은 민영에게 겨우 교무수첩 복사본만 건네주고 그냥 돌아왔다.
혜진의 긴 이야기를 듣고 은혜가 물었다.
“그래서 그 선생님 사건은 어떻게 되었어요?”
“아직 검찰 수사 중이야. 그래서 내가 우리 학교 선생님들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탄원서 받아서 얼마 전에 민영 샘한테 갖다 줬어. 근데 사람들이 얼마나 웃기는지 알아?”
“그 탄원서가 뭐라고 그걸 안 써 주는 사람이 있어. 그러면서 뒤에서 민영 샘을 두고 수군거린다. 원래 꼰대 기질이 있었다, 그냥 넘어가 주지 평소에도 애들한테 너무 깐깐했다, 그 나이 먹도록 시집을 못 갔다는 둥 별소리를 다 하더라고.”
“정말 너무하네요. 어떻게 동료가 그런 식으로 말해요? 사람들이 참 못된 것 같아요. 자기들도 언제든지 겪을 수 있는 일을...”
“그러게 말이야. 그래서 내가 교직원 회의 마무리 하면서 한마디 했어. 이건 절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중 누구라도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을 겪는 것은 교사의 능력이나 역량의 탓이 절대 아니다. 막무가내로 꼬투리 잡고 덤벼드는 악성 학부모를 어떻게 막겠냐. 내년에 그 아이의 학부모를 여기 있는 선생님 중 누군가가 맡아야 한다, 본인이 그런 일 당하면 절대 함부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 일이 아니라고 모른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우리는 동료 아니냐고. 여태까지 그렇게 힘든 아이와 학부모를 상대하면서 혼자 감내했던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동료로서 예의는 지켜주었으면 좋겠다고 했지.”
“우와, 역시 우리 선배는 대학교 때처럼 아직도 멋지시네요.”
은혜가 엄지를 추켜세웠다.
“내가 쓴 탄원서 참고하라고 복사해서 샘플로 샘들한테 나눠주면서 탄원서 써 주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남의 일로 여기지 말아 달라고 다시 강조했거든. 그래서 겨우 교직원의 삼분의 이 정도가 써 준 것 같아. 근데 웃긴 건 뭔지 알아?”
“뭔데요?”
“교장은 안 써 주더라.”
“관리자한테 뭘 바라겠어요.”
은혜가 착잡한 심정으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혜진이 은혜의 마음을 알아채고 말을 이었다.
“그 학교 관리자도 자기만 생각하고 전혀 교사를 보호해 주지 않는 사람이네. 어떻게 교사에게 상황 설명을 듣지도 않고 민원이 들어왔다고 바로 수업 배제를 시키냐. 제대로 된 관리자라면 자기가 나서서 어떻게든지 학부모들 마음 돌리게끔 노력했어야지. 교사가 직접 당사자와 오해 풀게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데도 왜 막냐고. 여태껏 학부모 눈치만 보면서 병가 강요하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한 게 아무것도 없잖아. 교사 한 명 희생시키고 조용히 무마시키려는 속셈인 거지. 도대체 존경할만한 관리자들은 어디에 있는지...”
혜진이 은혜를 안타까워하며 답답한 마음을 쏟아냈다.
“당신이 그런 관리자가 되면 되지. 이 사람 이번에 전문직 시험 합격했어. 아직 말 안 했지?”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진욱이 말했다.
“우와, 정말요? 그 바쁜 교무부장님이 언제 공부를 하셨어요. 역쉬, 우리 선배는 정말 능력자네요! 축하해요, 선배!”
“그러니까, 아까 말한 사건도 교무부장이라 교보위 담당하고 이것저것 일 처리하느라 매일 야근하고 집에 와서도 밤늦게까지 공부하더라고. 내가 참 멋진 아내를 둔 것 같아. 존경스러워.”
진욱이 혜진을 자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우와, 선배는 좋겠네요. 남편한테 멋지다, 존경한다는 말을 듣는 아내가 몇이나 되겠어요. 부럽네요.”
“부러우면 너도 결혼해. 아직 안 늦었어. 내가 지금이라도 찾아볼까?”
“저는 지금 저 하나 사는 것도 힘겹네요. 정중히 사양합니다.”
세 사람은 무거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털어내고 담소를 더 나누고 집으로 들어왔다.
다음날, 혜진은 은혜에게 부산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물었다. 은혜는 바다를 보며 산책하고 싶다고 했다. 진욱은 좋은 곳이 있다며 운전대를 잡았다. 세 사람은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출발하여 이기대 해안 산책로를 산책했다. 바닷바람이 시원했으나 뜨거운 햇살 아래 걷는 길이 쉽지는 않아 중간 정도 갔다가 되돌아왔다. 점심으로는 꼬막 정찬을 먹고, 은혜의 기차 시간에 맞춰 부산역으로 향했다.
“건강 잘 챙기고, 바람 쐬고 싶으면 언제라도 와.”
역 앞에서 혜진이 가볍게 은혜를 포옹했다.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건강하게 잘 지내라.”
진욱이 차에서 내린 은혜의 스튜케이스를 건네주며 말했다.
“선배님들 덕분에 잘 쉬었다 가요. 감사했어요. 또 연락드릴게요.”
기차 역사로 들어가는 은혜의 뒷모습을 혜진과 진욱은 오래도록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