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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Oct 17. 2024

낭만적인 가을을 맞이하며

가을 마중 콘서트에 다녀와서

 경기아트센터는 공연이나 음악회 등에 대한 나의 문화생활을 매우 충실하게 만족시켜 주는 곳이다. 유료회원에 가입하여 경기필하모닉의 연주를 초대받아 가기도 하고, 최근에 생긴 할인혜택인 70세 이상의 어르신과 동반자만 구입할 수 있는 만원의 행복 티켓으로 좋은 공연을 보기도 한다. 이번엔 엄마와 함께 만원의 행복권으로 "가을 마중" 음악회를 다녀왔다. 


  프로그램은 1부에는 강원호 지휘자와 코리안퍼시픽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 2부는 크로스 오버로 코리안퍼시픽필하모닉의 연주에 뮤지컬넘버 갈라 콘서트로 구성되었다. 특히 이번 공연의 출연진이 아주 화려하다. 홍지민, 정선아, 손준호 등 유명한 뮤지컬 배우가 출연하여 기대가 컸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와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로 객석은 만석이었다. 


  오프닝곡으로 트로트 교향시 '코리아 트롯 판타지'가 연주되었는데, 신나는 음악에 푹 빠져서 감상했다. 팸플릿을 보니, 트로트 주제에 의한 서곡 교향시 '흥(興)'의 작곡자가 신하용이라고 쓰여 있었다. 영화 어벤저스 삽입곡과 트로트 '아모르파티'에 '무조건', '찐이야' 등의 신나는 트로트 선율을 담고 있어서 익숙한 멜로디를 클래식으로 흥겹게 즐길 수 있었다. 엄마는 아는 트로트 곡들이 나오자 신이 나서 손으로 장단을 맞추고, 작은 소리로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혹여라도 옆에 앉은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 봐 살며시 엄마를 제지해야 했다. 이번 공연에서 처음 발표하는 곡이라는데, 클래식 연주를 대중들에게 친밀하면서도 흥겹게 다가가게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1부에서 연주한 클래식 명곡은  '신세계로부터'라는 부제가 붙은 드보르작의 교향곡 제9번이다. 체코 출신의 음악가 드보르작이 1893년에 미국 뉴욕의 국민음악원 원장직으로 갔을 때 작곡한 곡이다. 평생 체코에서 지냈던 드보르작에게 나날이 발전하는 뉴욕의 모습은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한다. 그는 인디언과 흑인들의 노래와 문화에 관심을 가졌고, 그래서 이 곡에는 흑인 영가와 인디언 음악의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다. 한편으로 자신의 고향 체코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2악장에서는 호른의 연주로 잔잔하고도 아름다운 멜로디를 통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드보로작은 열차의 차종과 제원을 외울 정도였고, 기차를 보러 가야 해서 수업을 휴강한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기차 마니아였다. 4악장의 도입부를 들으면 마치 죠스 영화가 떠오르는데, 점점 빨라지는 템포는 증기기관차의 출발소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미국이라는 신세계에서 드보르작이 경험한 새로운 문화와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담겨 있는 이 곡은 1893년 뉴욕 카데기홀에서 공연되었는데, 미국 청중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 공연의 연주를 맡은 코리안퍼시픽필하모닉은 사실 이름이 낯선 오케스트라였다. 찾아보니 2018년에 창단된 신생 오케스트라였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웅장하고 힘찬 연주와 서정적인 선율을 이끌어 낸 지휘자의 지휘가 인상적이었다. 멜로디와 함께 몸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지휘봉을 휘두르는 모습이 딱 맞는 파도를 자유자재로 타는 서퍼 같았다고 해야 할까. 엄마가 지휘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고 사진으로 남겨두면 참 좋겠다고 속삭일 정도였다.     



<코리안퍼시픽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강원호 지휘자>




  2부 공연은 코리아주니어쇼콰이어의 '뮤지컬 마틸다'와 '위대한 쇼맨' 무대로 포문을 열었다. 어린 학생들이 어찌나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무엇보다 2부의 하이라이트는 뮤지컬 배우 홍지민 씨의 무대였다. 홍지민 씨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이 엄마가 딸한테 "쫄지 마. 쪼니까 만만하고 쪼니까 하찮아지는 거다. 쫄지 마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너무 인상적이었다며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직접 작사작곡한 '국민 여러분'을 들려주기도 했다. 이제 보니 노래만이 아니라 창작 능력까지도 갖춘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윤복희의 '여러분'과 아바의 '댄싱퀸'에 이어 함께 출연한 성악가들과 부른 '아름다운 강산'까지 홍지민 씨의 노래와 춤은 관객의 흥을 끌어올리는 신나고 멋진 공연이었다. 그녀는 파워풀한 성량에서 나오는 가창력과 춤솜씨는 기본이고, 탁월한 무대 매너를 보여주었다.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스킬, 유쾌하고도 솔직한 입담으로 관객과의 자연스러운 소통, 사이드 좌석에 앉은 관객에 대한 배려, 연주자와 공연 스텝에 대한 인사, 무대를 쥐락펴락하는 프로페셔널한 배우라는 것이 바로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바로 뒤에 출연한 뮤지컬 배우 정선아 씨는 뮤지컬 캣츠의 'Memory'를 부르고 나서 "홍지민 씨의 흥겨운 무대 뒤에 제가 이런 노래를 부르게 되어 어쩔 줄을 모르겠네요. 프로그램 순서가 바뀌었어야 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아주 난감해 했다. 이후에 출연한 뮤지컬 배우 손준호의 노래도 좋았으나 관객과의 소통 능력이나 무대를 이끌어나가는 스킬 면에서는 확실히 홍지민 배우가 두각을 보였다.  


  오랜만에 감성을 충족시킬만한 멋진 공연을 보고 나니, 삶이 한껏 풍성해진 느낌이 든다. 공연의 제목인 '가을마중'대로 이 가을의 시작을 낭만적으로 잘 맞이한 것 같다. 이 감성을 고이 간직하여 일상을 풍요롭게 살아내야지. 



<출연진의 앙코르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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