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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내가 함께 공존하는 다정한 세상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 김민섭 작가의 당신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by 은향

책을 주제로 한 어느 연수 프로그램에서 공장 농동자였던 김동식 작가가 인터넷 게시판에 취미로 쓴 소설을 발굴하여 <회색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등을 통해 작가로 데뷔시킨 편집자로 김민섭 작가를 알고 있었다.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학생 책쓰기 프로젝트에 2년째 담당자로 참여하면서, 학생들이 쓴 책 전시회인 <경기 북적북적 페스티벌>의 '작가와의 만남'을 행사를 통해 김민섭 작가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김민섭 작가는 지방 대학에서 8년간 시간 강사를 하면서 실제 겪고 느낀 이야기를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 담았고, 이후 시간 강사를 못하게 되면서 생계를 위해 대리 운전을 시작하며 대한민국의 노동 현장의 단면을 쓴 <대리사회>를 집필했다. 그는 첫 책은 '나는 행복했나?' 하는 나를 향한 물음표로 시작했고, 두 번째 책은 '그럼 너는 행복한가? 우리 사회는?'이라는 물음에서 쓰게 되었다고 했다. 이후 세 번째 책인 <훈의 시대>에서는 시대의 욕망이 언어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런 욕망의 언어를 수집해서 썼다고 한다.


"교훈, 사훈. '훈'의 언어는 어디에나 있는데,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은연중에 우리는 그 말에 익숙해지죠. 제 아내가 나온 여고의 교훈을 찾아보니 '착한 딸, 어진 어머니'예요. 저는 서울에서 남고를 나왔는데, 교훈이 '의리'더라고요. 구글의 사훈이 뭔지 아시나요? 'Don't be evil.(악마가 되지 말자.)'예요. 수집한 데이터를 나쁘게 쓰지 않도록 만든 사훈이지요. 우리나라 대기업의 사훈에는 어떤 말들이 있을까요? '근면, 성실'이라는 말이 가장 많아요. 몇 년 전에 울산의 현대 중공업 공장 외벽에 크게 붙어 있는 문구가 이렇게 바뀌었어요. ‘우리 회사에서는 당신이 다치면서까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전까지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생전에 한 말인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라고 붙어 있었거든요. 이런 말들을 통해 시대의 욕망이 어떻게 전환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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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작가가 쓴 책들>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


김민섭 작가는 2022년에 <유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다. 그가 소셜 미디어에 올린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는 아내의 허락을 받아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고, 가장 저렴한 여행지였던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108,300원에 끊었다. 하지만, 여행 당일에 아이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여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사에 알아보니 항공권 환불은 10,800원. 대여가 가능한지 물어보니 대한민국 남자, 이름이 김민섭, 영문 스펠링이 'KIM MIN SEOP'으로 같아야 할 것, 이 세 가지 조건이 맞으면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는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렸다.


"김민섭 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의 댓글이 달렸고, 세 가지 대여 조건이 일치하는 93년생 김민섭 씨에게 연락이 온다. 93년생 김민섭은 디자인을 공부하는 대학생으로, 졸업전시 비용이 부족하여 휴학을 하고 알바를 하는 중이었다. 이후 여러 사람에게 여행 지원을 하겠다는 연락이 이어졌다. 고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어떤 분은 숙박비 30만 원을 지원해 준다고 했고, 어떤 이는 후쿠오카 그린패스(1일 버스 승차권) 2장을 보내준다고 했고, 어떤 이는 와이파이 렌털권을 제공한다 했다. 내친김에 김민섭 작가는 '93년생 김민섭 씨 후쿠오카 보내기' 카카오 펀딩을 시작했고, 카카오에서 메인 화면에 올려주어 충분한 경비를 후원받는다. 카카오 회사에서도 93년생 김민섭 씨의 여행 경비와 졸업전시 비용까지 후원해 주기에 이른다.


후쿠오카 여행을 떠나는 날, 83년생 김민섭 작가는 인천공항으로 가 93년생 김민섭 씨를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93년생 김민섭을 여행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한다.

"2003년생 김민섭은 내가 여행 보내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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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찾기 프로젝트 관련 내용들>





"동정, 그리고 다정" 누군가의 잘됨을 바라는 것.


이 일을 통해 김민섭 작가는 '사람이 왜 사람을 돕는가', '사람들은 왜 하지 않아도 될 도움을 주는가'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잘됨을 바라는 것', 사람은 기본적으로 누군가가 잘 되기를 바라는 존재이고, 인간은 자신이 받은 도움을 이어나가고 확장하는 본성을 지닌 존재이다. 선하게 타인과 연결되려는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가 여전히 잘 지탱되고 있다. '동정'은 인간만이 가진 감정이며, '다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동정해야 한다. 자신을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이 타인을 동정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93년생 김민섭 씨는 유퀴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온전히 나만 잘 되는 길을 선택할 때 머뭇거려져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은 경험이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이후 그는 "나는 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지?"를 고민했고, 기후위기가 심각한데 이산화탄소가 덜 배출되는 건물을 디자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캐나다에 있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환경학을 공부할 계획을 세웠다. 많은 사람들이 연봉이나, 전망, 정년 보장과 같은 고민을 하고 직업을 선택하는데, 93년생 김민섭 씨는 이타적인 고민으로 진로를 선택했다. 83년생 김민섭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고민 위에 타인을 고려한 이타적인 고민을 함께 한 선택을 한다면, 세상에 다정한 결과가 더 많이 생길 겁니다."


후쿠오카 이후에도 두 김민섭 씨는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고, 올 초에 83년생 김민섭 작가가 살고 있는 강릉에 93년생 김민섭 씨가 찾아온다. 혼자가 아닌, 결혼할 사람과 함께. 둘은 그린피스 환경 단체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들은 용산구청에서 무료로 결혼식을 올렸고, 김민섭 작가는 결혼식에 축사를 했다. 김민섭 작가는 결혼 축하의 의미로 93년생 김민섭 씨의 캐나다 대학원 첫 등록금인 700만 원을 흔쾌히 선물했다.



두 김민섭.jpg <83년생 김민섭 작가와 93년생 김민섭 씨>




이야기를 파는 서점, "당신의 강릉"


김민섭 작가는 7살 아이가 "바다가 뭐야? 바다 있는 곳에서 살고 싶어."라는 말을 해서, 강릉으로 이사를 했다 한다. 그는 오래전에 야구 선수, 국어 교사, 서점 주인이라는 꿈이 있었는데, <당신의 강릉>이라는 서점을 열게 된다. 그는 자신의 서점을 '이야기를 파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한다. 처음 기획한 행사는 김동식 작가의 책을 무료로 나눠주고 저자 사인회를 여는 것. 김동식 작가와 김민섭 작가가 반반씩 부담하여 서점을 방문한 220명에게 무료로 책을 나누어 주며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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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작가의 책 증정과 사인회 행사>


이후 <당신의 강릉>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좋아하는 작가를 초청하여 무료로 책을 나누어 주고 사인회를 연다. 행사에 참여한 독자 중에는 "뒤에 10명의 책은 제가 계산할게요."라고 하거나 "제가 교사인데, 작가님을 우리 학교 강연에 초청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다른 누군가에게 나누려 하거나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김민섭 작가는 말한다. "서점에서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열려 있는 다정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려해요."


김민섭 작가는 김동식 작가 책의 추천사를 받은 인연으로 홍세화 작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2016년 겨울, 김민섭 작가는 친구들과 삼겹살을 사서 홍세화 작가의 집에 놀러 갔다. 홍세화 작가는 삼겹살을 직접 구워 주며, 촛불집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저는 누군가를 비난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기성세대가 제대로 살아오지 못해 젊은이들이 촛불을 들고 나온 것이에요. 정말 미안합니다." 그 말을 듣고, 김민섭 작가는 그가 참 좋은 어른이라고 느꼈다 했다.


이후 <당신의 강릉> 첫 북토크 행사에 홍세화 작가를 초청하였다. 11년째 학생부장을 하는 국어 교사인 친구와 홍세화 선생님이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나요?'를 주제로 대담을 나누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이 질문에 홍세화 선생님은 이렇게 답했다.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겸손하게 살면 됩니다." 그 말이 기억에 남아 김민섭 작가는 홍세화 선생님께 며칠 후 '겸손'이라는 글을 써 달라 부탁했다. 홍세화 선생님은 종이에 '겸손'이라는 말과 2024년 4월 15일 날짜까지 써서 보내주었다. 그리고 사흘 뒤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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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작가의 글 '겸손'>




당신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유퀴즈 출연 이후 김민섭 작가는 강연 요청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작년 가을 안동에 있는 중학교에서 강의를 했는데, 어느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저도 일본에 안 가 봤어요. 저도 일본에 보내주세요."

시간 강사 할 때 월 130만 원 벌었던 것에 비해, 400회가 넘는 강연을 한 작년 수입은 꽤 많이 늘었다. 김민섭 작가는 문득 '이제 보내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 학생의 연락처를 받아왔다. 그동안 번 돈과 앞으로 벌 돈의 일부를 모아 청소년을 여행 보내주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비영리법인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를 만들었고, 어제 등기 완료를 했다고 한다. 그는 여전히 대리 운전도 하고 있으며, 독립출판사도 하고 있다. 그가 계획하고 있는 또 다른 일은 청소년에게 공짜로 책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김민섭 작가가 누군가를 돕는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된 건,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거나 특별히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한 번 누군가에게 내민 작은 손길이, 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으로 전파되고 확장되는 것을 보면서 계속해서 그런 일을 펼쳐나가고 있다. 물론 그의 마음 바탕이 선하고 따뜻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세상이 험하고 악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이만큼 유지되고 있는 건, 김민섭 작가처럼 누군가가 잘 되기를 바라는 선한 마음을 가진 존재들이 작지만 다정하게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이어나가기 때문이다. 타인과 공존하는 세상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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