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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Nov 15. 2021

그때와 지금 무엇이 얼마만큼 달라졌을까

만추의 주말 풍경

  만추를 그냥 보낼 수 없어 오랜만에 DK와 만나 전시회도 가고 낙엽 쌓인 길을 걸으며 가을을 몸으로 느끼고 떠나보내기로 했다. 토요일 오전, 서울로 가는 광역버스를 타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좌석을 꽉 채운 버스는 무심하게 지나쳤고, 긴 기다림이 허망하여 맥없이 버스 꽁무니를 쳐다봐야만 했다. 긴 기다림 끝에 다음 버스의 마지막 좌석을 차지한 행운의 주인공이 되어 겨우 버스에 올랐다. 

 

  2층 버스에 꽉 찬 승객들의 사람들의 고요한 심호흡 속에서 마스크를 두 겹으로 한 것 마냥 묵직하게 숨이 막혀 온다. 창밖을 내다보니 너도나도 가을을 붙잡으려 가는지 버스전용차로가 무색하게 고속도로에는 수 많은 차들이 달리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제 광역버스를 탔노라고, 아무래도 조금 늦을 것 같다고 DK에게 연락을 한다. 


 - 괜찮으니 천천히 와요. 전 커피 한 잔 하면서 기다릴게요.

  초조한 마음을 일시에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답신이 왔다.



  무언가 부스럭 거리는 움직임에 잠에서 깨니 어느 덧 버스는 빌딩으로 둘러싸인 서울 시내로 진입을 했다. 시청 근처 버스 정류장에 다가올수록 차창 밖에 늘어가는 군집한 경찰의 모습에서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커져간다. 이미 약속 시간은 30분을 넘겼는데 을지로입구 지하철 입구는 폐쇄되었고, 서울 지리를 지하철 역으로만 알고 있는 뇌 속은 잠시 회로가 멈추어 버렸다. 


  마지막 좌석의 행운과 달리 가을 좀 느끼려고 나온 간만의 서울나들이가 수월하지 않을 듯하다. 거리에 떨어진 노오란 낙엽잎들이 흩뿌려진 채 자유롭게 뒹굴고 있다. 경찰들이 입은 군청색 제복 위의 형광색 빛깔이 묘하게 낙엽과 어우러진 채 늦가을의 독특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통신을 하고 있는 경찰에게 가서 물으니 민주노총에서 대규모 집회가 불법으로 예정되어 있어 일부 지하철역을 폐쇄했다며 을지로 3가로 가야 지하철을 탈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을지로 3가 방향은 어디로 가면 되나요?"

  "길 건너서 쭉 직진하시면 됩니다."

  "근데, 집회는 지상에서 하는데, 왜 지하철을 폐쇄하나요, 그만큼 심각한 상황인가요?"

  "지하철 역을 폐쇄하는 이유는 제가 잘 모르겠고, 오늘 집회에 2만명이 넘게 모인다고 합니다."


  만추를 보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고속도로가 정체될 만큼 많은 사람들은 여기저기로 가을 나들이에 나섰다. 수 만명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외치며 투쟁을 한다. 또 그만큼 많은 경찰들은 집회를 통제하기 위해 열을 맞춰 움직인다. 어쩌면 집회하는 사람 중에 형이나 아버지가 있고, 집회를 통제하는 경찰중에 동생이나 아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위하던 친구가 군대가서 전경이 되었던 것처럼. 



  대규모로 군집한 경찰들의 모습을 보니 오래 전 대학교 학보사 기자로 수많은 집회 현장에 참여했던 때가 생각난다. 특히 대규모 8.15 집회를 취재하러 갔던 연세대학교에서 바리케이드로 세상과 차단된 채 며칠간 공대건물 안에 갇혀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헬기에서 뿌리는 최루탄으로 따가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켁켁 거리며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코를 막은 채 겨우 숨을 내쉬었었다. 어디선가 제공해주는 김밥과 초코파이, 물을 배급받아 먹으며, 씻지도 못하고 연신 경찰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화학 실험실 찬바닥에서 새우잠을 잤다.  


  같은 학교의 영자 신문사팀은 상황이 심각해질 것 같자 이틀 만에 철수했는데, 같이 간 선배는 취재자가 아닌 시위참여자가 되어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3일째 갇혀 있으면서 더 이상 여기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다시 한번 돌아가자고 했으나 선배는 혼자 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럼 혼자라도 나가겠다고 말을 하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한밤중에 갇혀있던 공대 건물에서 나와 방향도 모른 채 무작정 걸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가다 말을 걸어왔다.


  "학생, 어디 가요?" 

  "밖으로 나가려구요."

  "혼자 나가게요?"

  "실은, 학보사 기재로 취재하러 왔다가 같이 온 선배가 안 간다고 해서... 혼자라도 나가려구요."

  "지금 밖에 전경들 쫙 깔렸어요. 혼자 나가면 위험해요. 우리랑 같이 가요."


  그들은 천주교 단체에서 집회 참여자들에게 김밥과 음식물을 전해주고 가는 봉사자들이라고 했다. 그들 무리를 따라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으로 들어갔다. 주황색 모자에 안경을 쓴 모범생같이 생긴 남자가 와서 새벽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갈테니 잠깐 눈을 붙이라고 했다. 몇몇 간호사가 우리들에게 이동식 침대를 내어주었다. 몇 개 안 되는 침대 중 하나를 가리키며 안경남이 올라가서 자라고 양보한다. 괜찮다고 해도 기어코 양보해서 신발을 벗고 올라섰다. 삼일 만에 푹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안경남이 나를 흔들며 깨웠다.


  "얼른 일어나요. 지금 빨리 나가야 해요."


  눈꼽도 떼지 못한 채 일어나서 가방을 챙겼다. 선두에 선 사람의 지시에 따라 빠른 걸음으로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이윽고 선두의 손짓에 따라 담장 옆의 개구멍만한 작은 출입구를 한 사람씩 천천히 빠져나갔다. '휴우~' 이제 됐나보다 한숨을 내쉬자마자 선두가 다시 멈추라는 신호를 보낸다. '다 나와서 걸린건가.' 가슴이 쿵쾅거린다. 경찰서에 잡혀들어가는 장면, 가족이 걱정하는 모습 등 오만가지 생각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자연스럽게 그냥 앞만 보고 걸어가요." 

  선두의 지시에 따라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새벽녘 어둠 사이로 어슴푸레하게 한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잔뜩 긴장한 채 한참을 걸어 지하철 역에 다다랐을 때 안경남이 말한다.


  "아까 사복 경찰이 있었어요. 우리를 보고 그냥 못 본 척 해 줬어요."

  "네... 그랬군요."

  "어디로 갈 예정인가요? 아직 이 근처 지하철역과 서울역에는 경찰들이 깔려 있어요. 시위 참여자 잡으려고요. 지금 행색은 누가봐도 시위학생이네요."

  "인천에 저희 외갓집으로 먼저 갈까해요."

  "그럼, 지하철 타는 곳까지 내가 같이 갈게요."


  안경남 덕분에 지하철 역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후 일주일간 외갓집에 머물며 TV뉴스를 보니 시위 관련 뉴스 속보가 매일 보도되었다.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뉴스를 본 외삼촌이 말씀하신다. 

  "기껏 공부하라고 대학교 보내놨더니 왜들 저러고 있는지... 쯧쯧... 너도 네 엄마가 너 이러고 있는 거 알면 얼마나 속상하겠니..."

  입안에 넣은 밥이 훅 얹힌 것 같다. 속으로만 '저는 취재하러 간 건데요... 수업도 한 번 안 빼 먹으면서 공부도 열심히 해요.'라는 말이 목 안에서 맴돌다 기어들어갔다. 눈치를 보며 숟가락을 내려 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편집국장에게 전화로 상황을 전하자 절대 학교로 돌아오지 말고, 당분간 외갓집에서 머물다 오라고 했다. 먼저 집회 현장에서 나간 건 아주 잘 한 일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며칠 간 뉴스를 보며 상황을 주시했다. 헬기로 계속 최루가스를 뿌려대고 시위자들의 저항도 거세졌다. 폭력적 대치 끝에 남아 있던 시위참여자들은 대부분 경찰에 검거되었다는 보도가 나온다. 

  얼마 후 편집국장은 같이 갔던 선배는 멍청하게 남아있다 경찰에 잡혔다고 전했다. 후에 학교로 돌아가고 나서 그때 경찰에 잡혀갔던 선배를 비롯한 다른 학우들의 후일담을 들으니 그들이 잡힌 게 내 탓이 아니지만, 뭔지모를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때 그들은 무엇을 위해 부르짖고 저항했으며,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끊임없이 부르짖어야 하는가. 그 부르짖음으로 인해 그때와 지금은 과연 무엇이 얼마만큼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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