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김영철 DJ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스타 중 한명을 김연아로 꼽으면서 한 말이 가슴에 확 꽂혔다.
"김연아 선수의 영상을 가끔씩 찾아보는데, 특히 김연아 선수가 경기 중에 넘어진 영상을 봅니다. 경기에서 넘어지고 나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서 다시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였어요. 어린 나이에 큰 경기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김연아 선수에 대해서는 늘 멋진 모습으로 트리플 악셀을 보여주고, 아름다운 표정 연기를 선사하고 팬들에게 환호받는 모습만 떠올랐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결점이 없는 완벽한 경기를 보여주는 것도 힘들고 대단한 일이지만, 경기 중에 실수하고 나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계속 경기를 이어나가고 뒷 무대에서 멋진 연기를 펼쳐나가는 것은 엄청난 멘탈을 소유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넘어져도 바로 일어나서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남은 경기에 임했기 때문에 남은 경기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주고, 그 결과 값진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던 것이다. 넘어진 건 실패가 아니다. 털고 일어나면 될 일일 뿐.
책에 보니 공자도 이런 말을 남겼다.
"가장 위대한 영광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일어서는 것이다."
사실 살다보면 자신의 삶에 완벽하게 멋진 순간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크고 작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며 살게 된다. 그때마다 절망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툭툭 털어내고, 다시금 주어진 삶을 뚝심있게 살아내는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요즘의 나의 모습을 많이 되돌아보게 했다. 생각하지도 못한 일로 넘어져서 긴 시간 동안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겨우겨우 헤어나왔다가도 새로운 상황마다 수없이 휘둘리고 무너지고 나약하게 쓰러지기를 수십 번. 어쩌면 내가 처한 상황보다 더 과하게 감정에 사로잡혀서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었던 것 같다. 살다보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미처 보지 못한 작은 웅덩이에 발이 빠져 발이 다 젖어버릴 수도 있다. 김연아 선수처럼 담담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서 자연스럽게 다음 스텝을 밟는 정신력이 필요하다.
오랜만에 전화통화한 친구 K가 해 준 뼈때리는 찐 충고에 정신이 번쩍난다.
"지금 네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는 하는데, 내가 친구로서 조금 세게 충고할게. 지금 너는 너무 멘탈이 약해 진 것 같아. 힘든 상황보다 몇 배는 더 크게 감정에 매몰된 것 같아. 그래서 지나치게 힘들어 하는 것 같아. 세상은 참 험하고, 다들 살다보면 별의별 일들을 다 겪는거야. 네가 겪은 일도 속상하고 힘들겠지만, 너무 오랫동안 너무 과하게 스스로를 그 감정에 빠뜨려서 더 힘들게 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할 땐 나가서 걷거나 자전거라도 타. 그러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져. 아니면, 전부터 쓰려고 했던 글을 쓰든가. 내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해서 미안한데,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는 이해할 거라 믿어."
긴 시간 동안 나를 곁에서 보고, 모든 속 얘기를 나눈 친구기에 해 줄 수 있는 따끔한 충고가 오히려 고마웠다. 이렇게 진심어린 말을 해 주는 친구가 있어 감사했다. 너무 나약해진 멘탈 위에 얼음을 넣은 차디찬 물 한 바가지가 훅 끼얹어진 것 같았다.
그간 나름대로 안간힘을 쏟으며 버티느라 많이 지치고 힘들었던 것 같다. 요즘 주변에서 힘든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이 안타까워하며 너무 오냐오냐 했었나, 그래서 내가 응석받이처럼 나약해졌던 걸까. 이럴 때 입에 쓴 약처럼 알싸한 충고를 들으니 이제서야 전기회로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힘겹고 아픈 내 마음은 따뜻하게 안아주되, 조금은 멀찌감치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봐야겠다. K의 따끔한 충고처럼 멘탈을 좀 강하게 해야 할 것 같다. 살면서 겪는 수많은 실수와 실패에 매번 절망하고 낙담하며 감정과 에너지를 소비하지 말자. 넘어진 건 한 순간, 단지 과정에 불과하지 내 삶의 실패가 아니니까. 툭툭 털고 담담하게 호기롭게 일어나서 다시 걷자.
(덧붙여)
아침에 위 내용을 끝맺고 다시 으쌰으쌰, 하는 마음을 다지고 외출을 했다.
오늘 오후에 몇 달간 다니던 병원을 바꾸려고 오래 전부터 대기했던 병원에 드디어 예약이 되어 있었다. 새로 찾아간 병원 여의사에게 또다시 힘든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아프고 힘겨웠다. 입을 떼자마자 눈물부터 왈칵 쏟아졌다. "아, 제가 멘탈이 너무 약해진 것 같아요. 이 얘기만 하려면 이렇게 계속 눈물부터 나요..."
네 번째로 찾아간 병원에서 만난 젊은 여의사는 지금까지와의 병원과는 달리 꽤 긴 시간 내 이야기에 공감하며 들어주었다.
"힘든 상황이 끝나지 않고 계속 휘둘리다보니, 마음이 그때마다 무너져 내려서 다시 바로잡기가 힘들어요. 이성적으로는 알겠는데, 내가 왜 이런지 나도 모르겠어요. 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산책도 못하고, 글을 쓰려고 했는데 그것도 못 하고..."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 마음이 들 때는 그냥 그렇게 있어도 돼요. 밖에 나가서 산책하는 것만이 아니라 정말 힘든 사람은 양치질도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건 이성의 힘으로 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마음이 힘든 건 겉으로 안 보일 뿐, 지금 내 눈에는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너무 안간힘을 쓰지 말고, 힘들면 힘든 대로 그냥 두세요."
아~ 마음을 다진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 의사의 말을 들으니 또 이런 달콤한 위로의 말에 엄마 품에 폭 안긴 아기가 된 것처럼 한없이여려진다. 아침에 K의 충고를 새기며 다짐했던 마음이 아이스크림이 흘러내리듯 스르르 녹아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