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임을 다하며 일하는 사람

잘하는 일을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보람

by 은향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서 헌신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얼마 전 퇴임했다. 머리 감을 시간을 줄이려고 짧게 머리를 자르고, 잠자는 시간이 적어 날이 갈수록 수척해진 얼굴로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그 노고가 짐작되었다.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브리핑 할 때마다 흰머리가 점점 늘어나는게 고스란히 드러났고, 닳고 닳은 구두를 신고, 분식집과 도시락 가게에서 포장 음식을 먹으며 오직 방역을 위해 헌신적 모습에 코로나19의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방역에 대한 신뢰로 옮겨졌다.

우리는 일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어딘가에서 일(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세상에는 다양한 노동이 있고, 일하는 사람의 손길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일에 대한 태도와 자세는 사람마다 다르다. 정은경 전 청장의 헌신이 빛나는 이유는 책임감을 뛰어넘은 소임에 대한 태도와 자세 때문이다.


어떤 일에 임하더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지난 봄 초대형 산불을 진압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사투를 벌이는 산림청 공중 진화대나 소방관 분들을 비롯하여 자신의 일을 책임감 있게 하는 모든 분들을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뭉클하다. 그런 분들은 사람들의 칭찬에 이렇게 말한다. "당연히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작년에 우도에 갔을 때, 천진항에 내리자마자 내 눈길을 사로잡은 분이 있었다. 확성기를 들고 배에서 내리는 관광객들에게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경찰관 한 분.

"전동차를 빌릴 때는 미리 상태를 반드시 체크하세요! 보험 내용도 꼭 확인하세요! 전동차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륜차를 운전할 때에는..."


줄지어 내리는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를 지나면서 목이 갈라져가면서도 반복해서 주의사항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안내하는 경찰관을 시야에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았다. 마음 같아선 시원한 음료라도 한 잔 건네드리고 싶었으나, 마중나오기로 한 숙소 직원과의 약속 시간이 있어 가던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시켰다고 저렇게 힘들게 배가 도착할 때마다 관광객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는 않으실텐데... 이런 책임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아마 관광객이 많은 우도에서 전동차 사고가 빈번히 일어났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고 운전자끼리의 다툼도 있고, 전동차 대여점과의 불편한 상황도 많이 벌어졌을 것이다. 관광객들의 수많은 전동차 관련 사고를 처리하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고, 갈등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안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누구나 거기까지 생각은 하더라도, 저 경찰관처럼 확성기를 들고 뜨거운 햇볕에서 수백번씩 관광객들에게 이륜차 대여 관련 점검 사항과 안전 사항에 대해 일러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문의사항이 있어 각종 공공기관에 전화할 때마다 평정심을 잃고 뚜껑이 열리기 직전까지 화가 치솟을 때가 있다. 일단 전화 연결되는데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다. 막상 담당자와 통화가 되었어도, 딱딱하고 불친절한 말투에 수화기 넘어 상대방의 짜증스런 인상까지 고스란히 느껴질 때도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로 민원인의 언어폭력에 시달리는 감정 노동자도 많긴 하다.)


얼마 전에 건강보험관리공단에 문의할 일이 있어 전화를 했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직원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깔끔했고, 민원인에 대한 배려심이 느껴졌다. 문의사항과 관련하여 다소 복잡하고 긴 상황을 듣고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간파하는 판단력이 있었고, 공감능력까지 겸비했다. 해결 방안을 이해하기 쉽게 단계별로 설명하면서도, 명확하고 간결하게 아주 명쾌한 답변을 해 주었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해당 직원의 친절한 응대를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방법을 알아내어 만방에 알리고 싶을 정도였다. 공공기관에 전화해서 이렇게 친절하고 명쾌한 답변을 받을 때가 있다니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초등사회 개념사전>에 ‘노동’의 뜻이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노동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일하는 것을 의미해. 육체적 활동뿐만 아니라 정신적 활동 또한 노동에 해당하며, 오늘날에는 정보화로 인하여 언제 어디서나 노동할 수 있게 되었어."

<초등사회 개념사전>에는 읽을 거리로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와 함께 아래의 질문과 답변도 실려있었다.


"노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 고통을 참고 노동해야 할 때도 있지만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노동을 하면 기쁨과 보람을 얻을 수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일을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과 보람은 없을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는 데에는 과학기술의 발전이나 리더의 뛰어난 역량도 필요하겠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정말로 큰 힘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한사람 한사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책임감이 개인의 삶을 갉아먹지 않는 한도에서 발휘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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