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씀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의 엄마도 그랬지만, 나도 모든 것을 굉장히 빠르게 처리하고 싶어 했다.
엄마의 시신이 병실 침대에서 장례식장으로 옮겨지기 전, 몇 년 만에 얼굴을 보는 이모, 사촌오빠와 엄마의 짐을 정리하며 나는 벌써부터 집에 갔을 때 닥쳐올 슬픔에 대해 걱정했다.
엄마가 챙겨 온 쨍한 빨강 파우치 안의 이어폰, 화장품 샘플, 립밤 등이라던지. 엄마가 차가 마시고 싶다 해서 일주일 전 내가 바리바리 싸들고 갔던 여러 종류의 티백이라던지. 생수병을 혼자 까서 마시기도 힘들어하던 엄마가 원했던 빨대가 꽂아지는 생수병뚜껑 등등. 버릴 수 있는 건 모조리 버리고 오고 싶었다. 그래서 그것들을 짐가방에 욱여넣으며 아 이거 집에 가서 짐 풀면서 보면 나중에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은데 지금 버릴까? 하고 고민하고 있으니 사촌오빠가 그랬다.
"지금 슬프나 나중에 슬프나 똑같아, 너 나중에 안 슬플 거야? 나중에도 똑같이 슬퍼, 어차피 네가 집 가서 이모 짐 다 정리할 거잖아. 그리고 슬퍼도 돼~ 사람인데 당연히 슬프지 그러니까 지금은 고민하지 말고 그냥 챙겨놔"
엄마가 입고 들어갔던 옷들, 병원이랑 호스피스 갈 때 입을, 내가 주문해 줬던 그 옷들을 병원에 버리고 도망치듯 병실을 빠져나와 어찌어찌 장례식을 치르고 나는 혼자 집에 돌아왔다. 친구들이랑 이모가 에어비앤비나 호텔 가서 하루라도 자고 들어가라 했지만, 어차피 언젠가 내가 감내해야 하고 감당해야 할 감정인데 그걸 하루 미룬다고 해서 무슨 소용일까 싶어서.
관성적으로 현관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서, 엄마가 응급실에 실려가기 전 들 것에 올려지던 바로 그곳에서 홀로 정적을 마주했다. 그리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운 후 도저히 가만히 못 있겠는 마음에 바로 엄마 방 정리를 시작했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집을 떠날 때 그대로인 엄마 방 흔적들을...
정리를 하던 일주일간의 여정을 다 설명하지는 못하지만(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몇 가지 정말 슬펐던 물건들이나 순간들을 남겨보면:
- 이불과 매트리스(엄마가 허리 아프다고 해서 작년 연말에 시키고 엄마는 한 달도 채 못 누웠던)에 붙어있던 엄마의 머리카락
- 엄마가 자주 들던 가방 안의 병원 영수증들, 병원에서 그나마 맛있었다던 자몽에이드나 샌드위치 사 먹은 영수증, 껌종이 등
- 엄청난 양의 약들... 생리식염수.. 거즈.. 의료용품
- 마지막 한 달 즈음은 식사를 거의 못해서 마셨던 앤 커버 같은 대체용품 수십팩
- 진단서와 내역서, 영수증
- 중요한 서류 모아놓은 것(아빠 시체검안서, 사망진단서, 묘원 영수증, 보험서류 등)
- 항암에 좋은 식재료를 열심히 메모한 노트
- 엄마가 정말 가고 싶어 했던 천주교 호스피스의 전화번호와 정보
- 엄마가 일했던 곳의 명함과 사원증
- 부엌 찬장에서 발견한 카레 분말(가위로 모서리를 잘라놓은 그 흔적을 보고 무너졌다)
- 그나마 식혜만 먹힌 데서 엄마가 시켜놓은 식혜캔들
- 친구 어머니가 엄마 주신다고 한 냄비 끓여주셨던 시래깃국 소분해 얼려놓은 것
- 엄마가 자주 입던 옷들(엄마 냄새가 안 나서 서운했다)
- 엄마의 노트북 바탕화면 정 가운데 내 앞으로 남겨져있던 메모장 편지(제목은 내사랑 이뿌나)
- 아빠와 엄마의 핸드폰
정도일까?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네.. 며칠 동안은 정말 미친 듯이 물건을 처리하고 정신없이 보냈던 것 같다. 펑펑 울고 무너지면서 다시 일어서서 정리하고 또 무너지고... 그렇게 하나씩 정리, 아니 지워갔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듯, 이번에도 가족앨범을 더 가볍고 산뜻한 색으로 바꿨다. 가족을 보내는 나만의 관례 같은 건가 보다. 이제 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엄마가 요리를 하지 않아서, 냉장고에 엄마 흔적이 많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다른 사람들은 엄마 반찬이나 김치를 못 버린다고 하던데 난 그런 과정은 겪지 않았다. 그게 내심 차라리 안도가 되었다.
이렇게 시작이 됐다. 뭐에 쫓기듯 필사적으로 정리하고 가슴 아플 흔적들을 서둘러 지워내려 한 나의 혼자로서의 여정. 앞으로 이제 쭉 그리워하고 슬플 거는 당연히 알고 있고 괜찮은데, 그 가슴이 미어지는 순간들을 그저 빠르게 처치하고 또 사전에 방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게 정말 괜찮은 방법일까? 하지만 애도에 정답은 없기에... 그 후로는 드라마틱한 일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을 최선으로, 매일을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요즈음은 날이 더 추워졌으니 엄마 생각도 더 많이 떠올리고 애도해야지,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엄마의 짐은 빠르게 정리되었으나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미처 처리하지 못한 보이지 않는 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