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임종을 지키며 들었던 연주곡
격리된 병실에서 하루라는 시간이 엄마와 나에게 주어졌을 때, 나는 의식이 거의 없는 엄마의 옆에서
엄마가 좋아했던 연주곡들을 틀어놓고 시간을 보냈다.
엄마의 마음에 평안이 오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나에게도...
우리가 1인실에서 단둘이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건 상황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엄마는 항암 중 항생제 내성균이 생겨 격리된 병실에서 지냈고, 코로나로 인한 규제로 인해 보호자 한 명만 곁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갑작스럽게 엄마의 상태가 악화되면서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는 간호사분의 전화에 나는 부랴부랴 이틀 치 짐을 싸서 간병인과 교대했다.
죽음을 앞두어 경황없는 와중에도 엄마의 마지막을 지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에 내심 안심했다. 아빠는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었기에 마지막 인사를 못했던 것이 내심 마음에 짐처럼 남아있던 까닭일까.
그렇게 병실에서 나와 엄마만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는 엄마에게 하고픈 말을 터진 봇물처럼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산 기간이 길어 말이나 표현을 잘 못하는 나였던지라, 어색하게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을 더듬더듬해보았다. 서툴러도 걸음마 떼듯 ‘나의 말’을 해보아야 한다던 상담선생님의 말을 되짚어보면서...
죽음이 어디까지 왔는지 모를 상황에서 시간은 착실히 가고, 친구들이 걱정 어린 눈으로 병원 로비에서 건네주고 간 식사거리를 먹고 멍하니 앉아있다 문득 노래를 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평소 콘텐츠를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기록하기를 좋아하던 엄마의 블로그에는 가요부터 클래식까지 감명 깊게 들은 노래가 올려져 있었는데, 그중 베토벤의 월광은 엄마가 deathbed에서 들어도 좋을 것 같다던 연주곡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고 월광을 틀어놓았을까, 문득 떠오른 노래가 하야토 스미노의 New Birth라는 연주곡이었다. 그 음악이 주는 유별나지 않은, 연약하면서도 힘 있는 희망찬 기운이 좋았다. 어쩌면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고 태어남이기도 하니까. 그날이 엄마에게 그리고 나에게 그렇게나 슬픔만은 아니기를 바라면서, 무언가의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 연주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희망과는 가장 거리가 먼 순간에 나는 역설적으로 희망을 좇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도 내가 그러기를 바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지는 병실에서 나는 엄마가 편하기를 바라며 ‘괜찮아 엄마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다가도 사실은 전혀 괜찮을 리 없는 마음에 소리 내서 꺽꺽 울었다. 내도록 의식이 없던 엄마는 나의 우는 소리에 내 손을 힘주어 맞잡아주기도 했다. 회상하기에 너무 아파 묻어두었던 기억이지만 눈을 감고 떠올려보면 그 온기와 손에 느껴지던 압력이 생생히 느껴진다.
그리고 엄마는 딸이 밤새며 고생하는 것을 보기 싫다는 양-이것 또한 나의 해석이겠지만-그날 자정을 넘기고 곧 눈을 감았다.
간호사님이 나가계시고 사촌오빠와 이모가 병실에 도착하기 전, 그 마지막이 막 지나간 시간에. 더 이상 나를 마주 안아줄 수 없던 엄마의 품에 이내 몸을 기대어 안겨보던 그 밤이 아직 아프게 선하다.
New Birth
그 노래를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이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제주 바다를 보며 다시 들어본다. 눈앞의 하늘은 변덕이 심한 제주 날씨답게 아주 맑지만 동시에 눈과 비를 흩뿌리고 있다. 바다 빛깔도 눈이나 비가 내리면 뿌예지기 마련이지만 에메랄드빛 김녕 바다는 연신 거친 파도를 실어 나른다. 연주곡의 제목과 썩 잘 어울리는 풍경이지 않은가.
나는 엄마를 보내고 새로 태어났다.
그리고 일 년간의 제주살이를 결정하며,
또 제주로 내려오면서도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매일 주어지는 하루하루에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나의 마지막이 오는 날까지 매일을 새 날처럼 살 수 있다면, 어제의 고통도 내일의 웃음도 모두 처음 겪는 것처럼 느끼며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