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서운하다는 감정

2023년 3월 씀

by 코지

이번 주부터는 엄마가 정말로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나기 시작했는지, 공허함과 허전함이 시시때때로 찾아왔다.


슬픔은 익숙한 감정이라 치고, 나를 당황하게 만든 감정은 서운함이었다.


내가 서운함을 느낀 대상은 바로 친구들이었는데, 사람 마음이란 간사해서 뭔가를 기대하면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꾸만 기대한다.


형제가 없고 친척과 가깝지 않은 내가 부모님을 여의고 혼자가 된 후 가장 도움이 된 건 역시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엄마가 눈감는 순간부터 발인 이후 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3일 내도록 옆에서 나를 지탱해 줬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신 지 한 달이 넘은 지금 하루도 빠짐없이 내게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가 있는 한 편, 연락이 아예 없는 친구들도 있다.


연락의 빈도가 그 사람의 마음의 크기를 꼭 나타내는 건 아니지만 내가 서운한 건 후자 쪽이다. 서운한 감정을 가져봤자 아무 의미 없고 다들 살기 바쁘다는 걸 안다. 그리고 실제로 엄청나게 슬퍼서 일상생활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가도 문득 내가 이렇게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데 왜 내게 안부를 묻지 않지?라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의 알량한 마음은-아니면 상실감에 젖어 이성을 잃은 마음이라고 할지-’ 그들이 아직 부모님이 돌아가신 경험이 없어서 깊은 공감이 어려울지도 모른다 ‘며 나를 더 고립시키기도 했다. 결국 내 상황은 나밖에 모르고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며.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 감정은 삼 년 전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이미 한 번 겪어보았기에, 이번에는 좀 다르게 접근해 보기로 했다. 원래 나의 스타일은 슬픔과 외로움을 어떻게든 티 내지 않고 혼자 해결하는 것이나, 이번에는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해서 나 지금 좀 힘든데 연락을 자주 해주고 체크해 주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그렇게 해달라고 물었다.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내 생각이 났지만 매번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는 것도 부담이 될 것 같아 망설였다는 친구도 있고, 당연하지~! 하며 흔쾌히 받아들여주는 친구도 있었다. 모두 잠시라도 큰 위로가 되었다.


이렇듯(?) 감정적으로 성숙한 태도는 “내가 이런 감정이나 욕구가 충족이 안된다,” 원하는 것을 얘기하는 것 일 텐데 왠지 민망해서 쉽지가 않다. 이렇게 생각이 이어지니, 기대고 싶을수록 혼자 감정을 처리하는 게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절대 모른다.



서운하다는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서른다섯인 아직까지도. 힘들수록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고, 초등학생도 아닌데 친구 사이 이런 마음을 갖는다는 게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상실이란 내가 예상치 못했던 때에 희로애락을 시도 때도 없이 불쑥 튀어나오게 한다. 그것도 평소의 몇 배의 크기로. 이렇게 혼자 또 같이 울고 웃다 보면 상실의 무게도 가벼워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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