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3주기를 지나며

by 코지

어제는 엄마의 3주기였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올해가 몇 주기인지 세어보았는데 햇수로 계산을 해보니 올해가 엄마가 돌아가신 지 3년이었단 걸 새삼 깨달았다. 작년에도 와 아직 2년밖에 안되었다고 하며 믿을 수 없어했는데 올해도 굳이 굳이 손으로 세어보고는 아직도 3년밖에 안되었다고? 하고 놀랐다.


그 숫자를 곱씹어보며 놀란 이유는 내가 아직 엄마의 죽음과 부재를 다 소화하지 못했다는 의미일까(사실 당연하다) 아니면 평소 내가 그걸 회피하고 안 보려고 한다는 의미일까. 사실 나는 그 얼마 안 되는 수를 매년 세어보아야만 몇 년이 되었는지 안다는 사실에도 놀랐는데 이건 평소 내가 그 주제를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


작년에는 엄마에게 편지도 써보고 엄마가 좋아했던 미술관도 가보고, 나름의 의미를 찾으려 했고 올해도 마찬가지로 편지를 써보려 했다. 근데 쓰다가 도저히 마음이 안 내켜 멈췄다.



언제쯤 엄마의 기일에 햇수를 세어보며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몇 년이 되었든 놀랄 것 같다. 다만 엄마가 돌아가신 지 (몇)년이 되었는데 나는 이렇게 (잘) 살고 있구나, 살았구나 라는 의미의 점검이 되지 않을는지. 해마다 () 안의 내용만 바뀌면서.



아빠가 돌아가신 지는 올해로 7년이 된다. 좀 더 아득하고 먼 느낌이다. 다만 아빠의 죽음은 함께 추억하고 슬퍼할 사람-엄마-이 있었는데, 여기서 또 함께 슬퍼하던 사람의 부재가 느껴지는 정도. 나눠가졌던 슬픔이라 그런지 아니면 생전 관계의 상대적 거리 때문인지 아빠의 슬픔은 나누어가졌던 그 크기 정도로 느껴진다. 하지만 엄마의 죽음은 여전히 익숙하게 오롯이 나만의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기일이 나를 기다리겠지만 역시 기일은 내게 무엇인가 해야 할 것만 같은 날이다. 그리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날이다. 오늘은 애도를 해야지, 많이 해야지 한다고 해도 뭔가 이상하고, 그저 아 내가 또 평소 엄마의 죽음을 안 보려고 하고 있었나? 정도의 점검으로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도.



그래도 역시 3년이라니, 3년밖에 안되었다니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았지? 하루하루 365일을 꽉 채워서 일 년인 건데 그렇게 세 번을 했다니. 참 인생이란


3년이라니!라는 말이 떠오르면 이내 이런 생각이 문득 들고 그걸 들여다보면 그렇게 살아오던 하루하루가 무너질까 봐 애써 숫자를 세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난 내가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러고 나면 스위치를 껐다 다시 키듯 더 좋은 생각들로 마음을 채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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