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내고 싶지 않지만 떠나보내주는 마음

기쁜, 슬픔, 아름다운 마음을 들으며

by 코지




나는 살면서 많은 위기와 외로움, 그리고 고난들을 어떤 대상에 사랑과 관심을 쏟으며 지나왔는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내가 찾은 탈출구는 뜬금없게도 어느 아이돌이었다.


물론 어릴 때도 지오디, 투피엠 같은 그룹들을 좋아했고 그런 내 무언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축구, 뮤지컬 등으로 뻗어나갔지만 삼십 대 중반에 아이돌 덕질이라니...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배워야 했던 팬 문화도 처음이었다.


그렇게 그 아이돌 덕분에 절대 가볼 일 없었던 곳에 발을 들이고, 교류하지 않았을 사람들과 무조건적인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으며, 반택/끼택 등 모든 종류의 택배 보내는 방법을 섭렵하고, 무려 6년 만에 꺼리던 비행기도 타봤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는 내게

기댈 가족 하나 없이 목적을 잃어버린 삶에 사랑과 흥미를 채워주었다.

절망과 무너짐 대신 기쁨과 기대를 주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을 때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일어나 일을 했고,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잠에 들었다.


그러다 그 사랑도 지난 덕질들처럼 자연스레 1-2년 사이 사그라들었고, 나는 가끔씩만 그들의 소식을 확인하면서도 안정감이 필요할 때는 습관처럼 노래를 찾아듣곤했다.







그런 그가 며칠 전 그룹을 탈퇴하고, 아이돌을 그만둔다고 결정했다.


나는 이미 그를 너무나도 사랑하던 때와는 아주 다른 사람이기에 이 일에 대해 말을 붙이고 입을 데기가 조심스럽지만, 팬들이 느낄 마음을 옅게나마 희석된 마음으로 느껴볼 수 있다. 이별은 어느 이별이나 다 비슷한지 그의 결정에 나의 덕친들 또한 애도와도 같은 부정 분노 타협 우울의 무한굴레를 겪는 것처럼 보였고(물론 아직 진행 중), 그게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챕터가 갔으니 그와 함께한 지난 나의 일상 또한 좋든 싫든 어떤 식으로든 인사하고 보내줘야만 하니까. 앞으로는 다른 형태로 새로 맞이할 날들도 어떻게든 깨끗이 씻은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해야 할 테니까.












팬들도 팬들이지만 십 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한 멤버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영원을 얘기하던 마음으로 지금은 초연히 떠나는 이의 결정을 응원하게 된 그들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새 겪어내야만 했던 많은 절망과 좌절, 분노, 슬픔, 그리고 이내 수용이 있었을 것이다. 그중 한 멤버의 글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어 몇번을 읽었다.



"저도 처음엔 미웠지만 그 사람을 알고, 했던 수고들을 알고

그리고 표현은 많이 못했지만

정말 좋아하던 형의 앞길을 아주 멀리서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영원한 건 없지만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이 사랑이듯

떠나보내기 싫지만 떠나보내주고 싶은 마음도 사랑인 것 같네요"




...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았음에도 그 순간에는 영원을 얘기하는 것 그리고 바라보는 것


여전히 같은 세상에 살지만 그리고 사랑이 변한 것도 아니지만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어 보내줘야 하는 것


정말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은 그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임을


그게 설령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하는 것이라면

언젠가 다시 만날 것임을 알고 우리 모두 자연의 당연한 일부로써 애쓰지 않고 놓아주는 것

물론 슬퍼할만큼 슬퍼하면서






놓아준다고 해서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

기쁨 후에 슬픔이 온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그 사람과 함께해서 기뻤구나를 안다는 것


물론 그 사람의 매시간 매초가 공유되던 때와는 너무나 확연히 다르겠지만, 사실 그 사람이 뭘 하고 사는지 몰라도 되는 것


내 마음속에 같이 보낸 시간이 담겨있고

나는 오늘도 존재하고

그 사람도 안 보이는 어딘가에서 그 사람의 인생을 살고

그것까지가 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내 안에 큰 요동치는 감정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나는 그가 그저 잘 자고 매일 좋아하는 걸 하면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근 십몇년간 해본 적이 없어 쉽지 않겠지만 할 일 없는 한낮의 무료한 여유도 한껏 느껴봤으면 좋겠고, 뭐든 잘하려고 하는, 잘 해내려고 하는 그 아이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을 남으로부터가 아닌 자기 안에서 깨닫고 거기서 잔잔히 차오르는 사랑을 느꼈으면 좋겠다.








가장 힘든 때에 나를 살게 해 줘서 고마웠어.

새로운 걸 잘 시도하지 않고 무던한 나에게 네가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기쁨과 감정을 주었는지.

그때의 나는 너의 행복을 바라면서 내 행복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너를 왜 좋아했을까 굳이 생각해보면 이유를 찾기는 어렵겠지만, 힘든 때에도 사랑의 본질을 잃지 않고 언제나 눈을 반짝반짝 빛내던 네가 좋았던 것 같아. 그런 네가 너의 노력에 너 자신이 마땅한 칭찬을 주고, 매일을 하루하루 기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너와 인생의 한 부분을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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