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었던 아이를 대학에 보낸다는 것

by 코지

엄마의 아는 분 소개로 대치동에서 처음 만난 그 아이는 키가 아주 작았다. 첫날 어머님은 아이를 혼내가며 엄하게 가르쳐도 된다고 하셨고, 그 아이는 내가 방문할 때면 언제나 뚱한 눈으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어린 마음으로 자기는 선생님을 바꾸는 게 취미라고 하던 그 아이와의 수업시간은 내게 하나의 과제와도 같았다. 첫 수업이 끝난 후에 심리학을 공부하던 친구에게 sos를 쳐 어떻게 빠져나올지 함께 고민했을 정도이니. 약속된 다섯 번의 수업이 끝난 후에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진지하게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수업에서 그 애가 쓰는 글들은 다소 폭력적인 부분이 있었고, 나는 그 애가 쓰는 행위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아니 뭐라도 연필을 잡고 써 내려갈 수 있도록 내가 준비해 갔던 지문대신 그 애가 가장 관심 갖던 전쟁 얘기에 대해 써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애가 수업시간 동안 어떤 가시 돋친 말들을 하든 그 애의 글을 무미건조하게 첨삭해 주었다.


어쨌든 다섯 번은 수업을 이어가야 했으니 그 후로는 그 애가 흥미 있어하는 것들에 집중했다. 그 애는 7살 때 칼세이건의 코스모스 다큐멘터리를 보았다고 했고, 전쟁과 관련된 모든 역사를 정확히 외웠으며, 철학과 정치 관련 지식도 상당했다. 아직 중학생이지만 영문 에세이를 쓰며 니체의 위버멘시를 레퍼런스로 드는 등 아무튼 또래와는 좀 다른 특이한 아이였다.


다섯 번의 수업이 몇 번씩 연장되며 점차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세상을 보는 눈이 어딘가 염세적이면서 차분한 면이 나와 닮아있어 묘하게 얘기가 잘 통하기도 했다. 그 애가 무미건조한 눈으로 부정적인 말을 하면 나도 그렇지 그럴 수 있지 하며 동조했다.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긍정이 꼭 부정을 나타내는 것만은 아니니까. 그건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중의 하나니까.



그렇게 이 년 정도 수업 후 그 애가 미국으로 떠나고 나서 우리는 화상 수업을 이어갔고, 방학 때를 제외하고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 만났다. 처음에는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 하는 간단한 인사도 어머님이 머리를 눌러야 마지못해 몸을 꼬며 하던 애가 이제는 먼저 꼬박 ”안녕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혹시 그날 언제 시간 되시나요? “ 하는 게 새삼 매번 신기하다.



그 애가 미국에 유학간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미국애들은 왜 그래요?” 물어보며 걔네가 어떻다 저떻다며 공감을 구하기도 하고, “쌤 이번에 개봉한 무슨 영화 보셨어요? 쌤 저 이번 주에 양념치킨 먹었다요,” 이것저것 조잘대는 게 그래도 내게 좀 의지하는구나 싶어서 뿌듯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동시에 안경 낀 동양인 유학생이었던 나를 보곤 했다.



그 애와의 첫 수업 후 내가 상담을 요청했던 친구는 그 애 얘기를 할 때마다 “아직도 걔랑 수업해? 니가 인간 만들었다”라고 하곤 하지만 그 애는 그저 자기 페이스대로 인생을 살아오며 성장했을 뿐이다. 돌아보면 한 번도 나쁜 애였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처음 가족과 떨어져 타지에서 부딪혔을 수많은 장애물이나 장벽들은 그 애를 그 애의 방식으로 훌쩍 커버리게 만들었다. 마치 내가 그랬듯이.



그런 그 애는 곧 대학에 간다. 이제는 이 몇 년간의 인연도 끊기겠지 생각하면 벌써 아쉽다. 여느 학생들의 소식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때와 같이, 아니 조금 더 많이 아쉬울 것 같다. 그럴 때면 나는 나를 거쳐간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그들만의 기쁨과 슬픔을 겪고, 글쓰기 수업에서 읽은 기억에 남은 책의 구절이나 교훈을 되뇌이며 저마다 그 일들을 잘 소화하기를 바란다. 그 평범한 일상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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