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있는 달팽이가 세상 부러운 지호, ‘현관만 내 집’인 집주인 세희, 둘은 위장 결혼을 했다.
지호는 운 좋게 조건에 맞는 월세에 세입자로 들어간다. 집주인 세희가 남자인지는 꿈에도 몰랐다. 세희도 지호가 여자인지 몰랐다. 지호란 이름은 남자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서로가 이성인 건 동거인으로서의 결점이겠으나, 서로에게 사랑에 빠질 일은 절대 없다고 생각한 둘은, 같이 살기로 한다. 마침 결혼 독촉에 시달렸겠다 결혼 적령기 이 두 남녀는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으로서 위장 결혼 계약까지 맺는다.
tvN 드라마 <이번생은 처음이라>에서 세희는 머릿속에 집 대출금과 고양이밖에 없는 남자다. 함께 영화를 보다가도 방에 들어갈 땐 문을 꼭 딸깍 잠그고 들어간다. 지호는 작가의 꿈을 위해 바쁘게 산 덕분에, 연애 한번 못한 모태솔로로 설정되어 있다.
이런 둘이서 계약처럼 속행해 버린 결혼, 이들의 결혼생활은 서로의 목적에 충족할 수 있었을까.
남들처럼 지호에게도 시월드가 펼쳐진다. 어느 날 제사 준비로 시댁에 소환된 지호, 뒤늦게 참석한 세희는 결혼계약서에 없었던 각자의 부모님에 대한 효행을 부담했다며, 대가로 돈을 내민다.
지호는 단단히 삐쳤다. 세희와 지내며 뜨악스러운 경우가 한 둘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하다 돈은 필요 없고 똑같은 노동력으로 갚아라고 한다. 혼자 처가로 내려가서 똑같은 6시간 동안 김장하고 오라는 것이다.
무뚝뚝한 이 남자, 덜컥 가겠다고 한다. 올해 한 번도 쓰지 않은 귀한 월차를 사용해서 지호의 고향으로 내려가겠단다. 지호는 끝내 씩 웃는다.
그런데 세희는 왜 그 아끼던 연차까지 쓰면서 남해로 내려간 걸까. “제사 노동에 대한 등가교환”이라고 치기에는 과하지 않은가.
세희는 그동안 사무적이고 의무적인 태도로 지호를 대했지만, 지호를 사랑하고 있었다. 의무적인 관계 때문에 가려진, 어쩌면 본인도 몰랐을, 사랑을 발견하게 된 하나의 계기가 바로 김장 에피소드였던 것이다.
노동한다고 해서 반드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위해 기꺼이 노동한다. 노동은 사랑의 필요조건일까. 어쨌든 사랑과 노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건 분명하다.
둘은 결국 사랑하게 된다. 매일 얼굴을 보며 생긴 정(情) 때문일까. 아니면 가끔 아침밥도 해주고, 퇴근 후 서로 어색하게 맥주도 마시고, 집안일을 도와주며 주고받은 노동의 시간도 함께 쌓였기 때문일까.
사랑이 먼저였는지 노동이 먼저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중간쯤 아닐까 싶다. 중요(?)한 건 세희가 남해로 내려간 이유가 계약자로서의 의무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건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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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챙기며 쓰는 짧은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