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한양에서 목수들이 올끄다. 잘해봐라!"
10년 전 포항에서 집을 짓고 있을 시절이었다. 그날도 고단한 일상을 마치고 뜨끈한 국밥에 머리를 박고 있다가 팀장이 하는 소리에 21세기에 한양 타령이라니, 하고 쿡 웃음이 났다. 그래도 나와 다른 세계가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튿날 그들과 함께 지붕에 올랐다. 끙끙거리는 신음을 흘려가며 6미터가 넘는 용마루를 간신히 걸었는데, 저 뒤에서 '내려!'라는 말이 뺨을 스치는 바닷바람 사이로 들렸다. 아, 정말 미치겠네... 라는 말부터 잇새로 새어나왔다. 나무들 틈 사이로 묘기를 하며 1층으로 내려가 전선부터 끌어오고 있었는데, 저어~기 용마루에서 내려오지 않은 '한양' 목수들이 무려 '무선'절단기를 꺼내 두꺼운 용마루를 단칼에 잘라내는 모습이 보였다. 세상에... 신문물이 일을 다 하네... 어깨에 둘러메고 있던 전선타래가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영상 제작자로 살며, 새로운 도구에 적응하는 삶에 더욱 불이 붙었다. 지금 쓰는 장비들이 손에 익기가 무섭게 새로운 장비들이 쏟아져 나왔다. 유튜브에선 이거만 바꾸면 영상의 질이 올라갈거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댔다. 그들의 호들갑에 못이겨 결제버튼을 눌러버린 것도 꽤 되었다. 도대체 돈을 벌어서 살림에 보태는 건지, 장비들을 채워가는데 쓰는건지 모를 정도였다.
단순하고 소박한 일상을 꾸려가는데 애를 쓰는 이웃들 옆에서 온갖 신문물에 둘러싸여 있는 내 모습이 민망할 때도 있다. 엽서를 써서 마음을 전하고, 풍물을 배워가며 넘치는 흥을 소비하고, 그럼에도 정말 정말 듣고 싶은 음악은 cd플레이어에 담아 듣고 사는 아이들 곁에서 혹여나 내가 쓰는 물건들이 그들에게 괜한 호기심을 자극하는게 아닌가 싶어 조심하게 된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아이템은 블루투스 이어폰이다. 특히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는 이것 없이 공부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일 달고 산다. 촬영을 위해 운전을 하러 갈 때나, 걸을 때나, 심지어 주방에서 설겆이를 하거나, 아이들에게 아침 식사를 차리면서도 귀에는 이어폰을 꽂아 듣는다. 눈이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귀로 들으며 입으로 따라 웅얼거리는 것만으로도 해결이 되니, 식당 노동에, 영상 노동에, 살림에, 생존을 위한 운동에, 매일 글을 쓰는 일과를 하면서도 해야할 공부 분량을 어느정도 채우고 있다.
어느새 첫째는 살림을 하는 틈틈히 내가 쳐다보고 있는 액정 너머의 선생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이게 뭐야?"라고 자꾸 물어서 어쩔 수 없이 아빠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코끼리 선생', '두꺼비 선생'이라고 알려줬다. 그럼 선생님이 뭐해줘? 같이 덩기덕 쿵떡 해줘?라고 묻는 첫째의 질문에 다시 웃음이 났다. 아직 첫째에게 선생은 함께 밥을 먹고, 자고, 놀아주는 존재라는 것을 잊었나보다. 그래, 네가 지금 누리는 일상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렴. 아빠는 아빠의 몫을 해나갈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