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아침 배송

by 제이미

요새는 내가 필요한 걸 시키지 않아도 AI가 아침에 알아서 배송해 준다. 식재료뿐만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나 조언까지도. 참 세상 좋아졌다.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왠지 하루가 나의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 듯한 느낌은 예전에도 그랬었는지 지금 너무 편해져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나야 언제나 군말 없이 요즘 대세에 따르는 사람이고 이것도 터치 한 번으로 가능한 것이니.


오늘 아침에 뭐가 배달 왔을까. 그저 묵묵히 AI 모닝 배달 백을 열어본다. 계란, 훈제오리, 우유.. 평소에 돌아가면서 먹는 음식들이 있는데 그것이 데이터화돼서 이번엔 훈제오리 먹을 차례인가 보네. 식재료백 외에 다른 작은 종이 박스가 와 있다. 이건 뭐지. 책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도 아니고 죽을 것인가라니. 아 최근에 내가 우울해서 심리학책을 다운로드하여 몇 권 읽었는데 그래서 AI가 이런 책을 보냈나. 뭐 보내줬으니 읽어보겠다만. 더 우울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아무튼 종이책은 오랜만이다. 아직도 종이책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네.


요즘 점점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는 게 심리상담을 받아 볼까 하고 검색해 보고 있는데 그런 예약은 왜 미리미리 안 잡아주는지 모르겠다. 검색하자마자 가까운 심리센터에 바로 예약을 알아봐 줘야 하는 거 아냐? AI는 사람 정신 건강에 도움을 주는 기능은 아예 꺼져있나?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지 젠장. 사람이 배송에 중독되어 있는 건 귀신같이 알아서 보내주면서.


사람은 자유의지가 있다는데 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도 선택할 수 있나?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내 맘대로 안 되는 것 같은데 말이다. 자살이 불법이라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하긴 안락사도 불법이니. AI가 보내준 책을 보면 알 수 있으려나. 다음 날 아침 배송은 식재료가 아닌 엉뚱한 것이 왔다. 팬과 무지 편지지. 추억의 물건이라 놀랐다. 아니 뭐 추억 소환이라도 하라는 건지. 요즘 팬으로 글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특히 편지는 더 그렇지 않나? 흠. 누구한테 편지를 써 볼까. 돌아가신 엄마한테? 친구한테? 뭘 쓰라는 거지? 나에 대해서? 나도 모르게 어렸을 때 추억을 글적글적 적어본다. 오랜만에 손글씨를 쓰니 어색하다. 그러다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한다.


유난히 피곤한 아침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침 배송을 확인하러 간다. 몸이 무겁다. 정신도 무겁다. 하지만 자동적으로 내 몸은 배송을 확인하러 현관으로 가고 있다. 반듯하게 놓인 종이 상자. 그렇게 크지 않은 책 하나 들어갈 정도의 크기다. 들어보니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무게. 이번엔 도대체 뭐가 들어있을까. 열어보니 물건 위에 얇은 하얀 종이가 둘러져 있다. 그 종이를 들어내고 보이는 물건에 나는 침을 꼴깍 삼킨다. 등줄기에 갑자기 식은땀이 난다.


이건 권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