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환은 화장실 문을 잠그고 등을 기댄 뒤 주저앉았다. 밖에서 현관 벨 누르는 소리에 이어 전화벨 소리가 작은 집 전체를 흔들어댔다. 동네 사람들 부끄럽지도 않은지 문이 부서져라 두드려대더니 정환의 이름이 터져 나왔다.


"문 열어! 너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얼른 나와!"

"아 왜 이래. 이런다고 애가 나와? 내가 할게. 정환아. 얘. 우리 아들. 엄마야. 문 좀 얼여봐."


좁은 원룸은 하필이면 현관 바로 옆에 화장실 겸 욕실이 붙어 있었다. 어지러운 꽃무늬의 시트지가 발려진 합판문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토씨하나 빼놓지 않고 통과시켰다. 지방에서 버스와 기차를 몇 시간이나 타고 온 부모님이 아침부터 찾아와 해가 중천에 뜬 지금까지 난리다. 이쯤 되면 누가 주인을 부르든 경찰을 부르든 할법한데 뭐 한다고 바쁜지 아무도 찾아와 보지 않는다.


"떡볶이 배달 왔습니다."


현관 앞의 시끄러운 소리를 뚫고 배달원의 외침이 들려왔다. 동시에 정환의 뱃속이 꼬르륵 요동을 친다. 하루 종일 하는 것이라고는 방 안을 뒹구는 것뿐인데 때만 되면 배가 고팠다. 화장실 안은 윗집인지 아랫집인지에서 볼일을 보고 물 내리는 소리와 샤워하는 소리 같은 것이 한데 엉켜 시끄러웠다. 게다가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어째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정환은 한 때 지방 작은 소도시를 대표하는 젊은 꿈나무였다. 그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오래도록 내 걸린 적도 있었다. 유명 사립 중학교를 가서, 머리 좋은 아이들만 간다는 고등학교에 가서, 말만 들으면 다들 입을 떡 벌리는 대학에 가서, 모두가 꿈꾸는 회사에 들어가서. 젊어서 꿈이 꺾인 채 흐르는 대로 살다가 귀농한 정환의 부모는 그의 잘난 머리를 알아보고 미래 설계를 했다. 물론 그것은 다 정환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끌고 가는 대로 잘 따라주었고 결과 또한 원하는 것 이상으로 나왔다. 미래 설계도의 가장 위를 차지한 목표는 취업이었다. 정환의 부모는 거기까지만 하면 잘난 아들의 미래가 알아서 잘 굴러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들 우러러보던 그들의 아들은 반년만에 회사를 관두었다.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집으로 내려가던 정환이 얼굴을 비추지 않고 연락이 되지 않자 이리저리 연락하다 뒤늦게 알게 된 일이다. 정환의 부모는 기가 막히고 속이 터져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시끄러워."


꽉 닫혔던 화장실 문이 열리고 팬티 한 장만 달랑 걸친 정환이 나왔다. 물기 어린 몸이 번들거리고 머리는 귀 밑까지 늘어져 몇 가닥으로 나누어진 채 딱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현관을 등지고 베란다로 나갔다. 가는 길에 선풍기를 돌리고 에어컨 온도를 한껏 낮췄다. 한 뼘도 안 되는 베란다를 반이나 차지한 에어컨 실외기가 찬바람을 안으로 들이느라 터질 듯 붕붕 댔다. 귀가 터질 것처럼 웅웅대는 통에 뒤쪽 현관에서 나는 소리가 어디로 날아가버렸다. 주저앉아 쳐든 시선에 지글대는 햇빛을 가려주고 있는 나무가 보였다. 이름 모를 나무에는 꽃인지 뭔지 파릇한 잎 위로 노릇노릇한 것이 뭉탱이져 있었다. 바람에 휘둘리던 노란 것들이 작은 먼지처럼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쏴아아.' '툭.' '윙윙윙윙'


귓속을 가득 채운 소리가 멀어지더니 눈앞에 글자가 나타났다. 주변을 돌아보느라 고개를 양 옆으로 돌리니 '휘휘' 하는 글자가 튀어 올랐다. 눈을 감았다. '꿀꺽' 하는 글자가 이번에는 머릿속에 떠올랐다. 눈을 뜨니 온 사방이 글자로 가득 찼다. 귀로 들어오던 소리가 어디로 가고 글자로 바뀌어 둥둥 떠다니다가 사라졌다. 현관 앞에서는 그의 부모가 내는 소리들이 어지럽게 글자가 되어 엉켜 들고 있었다. 정환의 숨소리가 거칠어지자 이번에는 쉴 새 없이 코와 입가로 글자들이 튀어 올랐다.


방 안이 환해졌다 어두워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밤이 되어도 소리들은 사방팔방에서 팝콘처럼 튀었다. 세상은 너무 시끄러웠다. 정환은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잠이 들었을 때만큼은 소리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꿈을 꾸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일이었지만. 가물가물한 머릿속에 '쉭쉭' 같은 글자가 떠다니다 흐물거리며 사라졌다. 잠이 오려는 모양이었다. 정환은 기꺼이 잠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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