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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May 11. 2023

작품 앞에 서기

#1

화창한 봄날, 혼자 산책 좀 할라 하면 흩날리는 꽃가루 때문에 눈도 따갑고 코도 간지럽다. 등산을 하고 자전거를 타볼까 하면 무릎이 시큰거린다. 우울함을 떨쳐버리려고 자연의 품에 안기고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못하다니. 40대 갱년기 증상이 나를 더욱 고독하게 만든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걸어야겠고 어떻게든 기분 전환을 해야겠다. 일단 괜찮은 옷을 챙겨 입어본다. 그나마 청바지가 제일 괜찮다. 얼마 전에 홈쇼핑에서 지른 봄 스웨터. 괜히 질렀다고 후회하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입어본다. 톤업이 되는 선크림을 두껍게 바르면 잡티가 어느 정도 가려지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러고 나서 동네의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하고 있는 갤러리를 검색한다. 미술을 잘 몰라도 상관없다. 그저 걷기 위해, 자연을 직접 만끽하지 못하는 대신에 미술 작품을 본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한없이 고독한 시간 속에서 작품을 만들어낸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 의미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만 고독한 것이 아니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안을 받는다. 그들은 얼마나 깊고 어두운 고독 속에서 이 작품을 탄생시켰을까. 그 어두움 속에서 반짝하는 스파클을 본 적이 있을까? 작품을 천천히 둘러보며 질문을 해 본다. 나는 그렇게 고독을 마주 보고 서 있는다.


야외 벤치에 앉아 챙겨 나온 도록을 펼쳐본다. 미술평론가가 쓴 글들은 언제나 어렵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의미와 어느 정도 맞는지 비교, 확인해 보는 건 흥미롭다. 정답이 없는 예술이 이래서 재미있는 걸까. 가능한 한 핸드폰은 멀리하고 산책을 더하고, 전시회를 가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려고 애쓴다. 내 손에 핸드폰이 들려 있지 않을 때 나는 가짜 세상이 아닌 진짜 세상과 더 가까워진다. 디지털 세상을 벗어난 고독은 더 이상 쓸쓸한 고독이 아니다. 

정치학자 토머스 덤은 이렇게 쓴다. "고독 속에서 각자는 혼자지만 쓸쓸하지 않다. 각자는 혼자이면서 외롭진 않다. 왜냐하면 긍정적인 방식으로 자신과 행복하게 지내기 때문이다." 
<낭만적 은둔의 역사_데이비드 빈센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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