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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May 24. 2023

고독의 색

보헤미안을 꿈꾸며

고독을 색깔과 무게로 표현하면 확실히 어둡고 무겁다. 어렸을 때 나는 밝고 가벼웠다. 좋아하는 가요만 들어도 마음이 붕 떠다녔으니까. 안타깝게 40대의 나는 확실히 무겁고 어두워졌다. 쉽게 붕 뜨지도 않고 밝아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런 지금의 내가 싫지는 않다. 내 마음도 그만큼 무르익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예전에 나는 대책 없이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했다면 지금은 좀 더 내면을 들여다보고 어떤 방법으로든 정리를 하려고 한다. 쓰기도 하고 머릿속에서 계속 질문을 하여 나를, 내 마음을 서술한다. 느려졌다고나 할까. 고독의 색깔이 무슨 색이냐 물어보면 보. 라. 색.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둠(파랑)과 밝음(빨강)의 합인 보라색. 나의 최애 색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내가 보라색을 좋아한다 하면 친구가 "보라색 좋아하면 미친년이래."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속으로 '그래서 좋아'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어렸을 때의 나의 꿈이 화가였던 만큼 어린 마음에 그저 다르고 특별하고 싶다는 욕망만 있었던 거 같다. 은연중에 보헤미안을 꿈꾸고 히피족이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나에게 구체적으로 냉정하게 다가왔고 공부는 그쪽으로 했지만 화가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지금 화가의 삶을 살고 있진 않지만 색이나 그림에 집착하고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어쩌면 아직도 그런 삶을 지향해서 나오는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감정에 색을 입히고 그 색이 나한테 어떻게 다가오는지 생각해 본다.


산책을 하면서 깨달았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육아를 하면서 나를 잃어버린 듯했고 내가 이럴 거면 왜 그 큰돈을 써가면서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마흔이 넘어가니 내가 지향했던 삶의 방향, 공부했던 것들이 쌓여서 드디어 폭발하는 시기가 지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생각들과 보고 배운 것들이 겹겹이 쌓여서 내가 되고 그것을 표현하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생각했던 거보다 상당히 늦게 나타난다. 나는 그것을 글로 표현하기로 했고 그림으로 했으면 화가가 됐으리라.


고독의 색. 보라색을 좋아하는 나는 어둠(파랑)과 밝음(빨강)이 뒤섞인 사람이다. 하지만 어둠에 좀 더 가까운 진보라색의 고독을 즐기는 것 같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또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인간이다. 진정한 보헤미안은 감정적으로 나를 가둬두지 않고 무거운 책임을 내려놓는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엄마, 아내, 딸이라는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나를 표현할 때만큼은 내려놓아도 괜찮다. 내려놓아야만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것이라 했나. 지금부터라도 보헤미안의 삶을 살아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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