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순례라고 부르기엔 조금 느슨한 희년의 여행기
2025년 10월 21일~ 11월 6일까지의 기록
다시 열리는 시간 앞에서
희년은 가톨릭에서 25년마다 돌아오는 특별한 해다. 용서와 화해, 새로운 시작을 위해 순례의 문을 여는 시간. 2025년 희년의 공식 주제는 "희망의 순례자들"(Peregrinantes in Spem)이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희년 선포 칙서의 제목을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Spes Non Confundit)로 정했다.
그 문장 안에, 이 시대를 건너는 신앙의 방향이 조용히 담겨 있었다.
희년의 핵심은 기다림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다시 걸어 나설 수 있게 하는 희망. 그 희망은 희년마다 성문이 열리는 로마의 네 교황 대성전에서,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을 지나며 조용히 한 사람의 삶 안으로 스며든다. 희년의 순례는 결국, 문을 지나며 지난 시간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간을 받아들이는 의식이다.
다음 희년이 돌아올 때면 나는 아흔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내가 다시 로마의 돌길을 밟을 수 있을까. 이번 여정은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오직 '지금'이라는 생의 틈새가 허락한 유일한 기회였다. 지금이 아니면 이 길은 영영 생각으로만 남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길의 끝에는, 세 번이나 다녀왔음에도 여전히 마음속에 머물러 있던 로마가 조용히 나를 부르고 있었다.
순례를 떠나겠다는 생각은 갑작스럽지 않았다. 오랫동안 마음속에서만 되뇌던 계획이었다. 책상 위의 컴퓨터 화면에는 유럽 지도가 펼쳐져 있었고, 나는 그 위를 마우스로 더듬으며 이미 여러 번 로마에 도착해 보았다. 그러나 지도 위의 길은 언제나 현실의 걸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에서만 떠나는 순례가 나를 더 머뭇거리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심은 요란하지 않게 내려왔다.
'가자.'
그 생각 하나로 준비는 시작되었다.
처음엔 홀로 떠날 생각이었다.
순례는 본래 그런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누구의 속도에도 맞추지 않고,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는 길. 그런 고독이 순례의 본질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출발을 두 달쯤 앞둔 어느 날, 아들이 자신의 일정을 조정해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짧고 담담한 말이었지만 뜻밖의 제안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각자의 선택이 엇갈리며 말은 점점 줄어들었다. 명절에 마주 앉아도 굳이 말을 잇지 않는 관계가 되었다. 그래서 그의 제안은 반가움보다 먼저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번 여정이 단지 성지를 향한 이동이 아니라, 함께 성문을 통과하기 위한 시간이 되리라는 사실을. 어쩌면 이는 멀어졌던 사이를 다시 잇게 하려는 하느님의 은근한 중재가 아니었을까.
순례가 홀로의 길이라 여겼던 나는 그 말 앞에서 알 수 없는 안도와 따뜻함을 느꼈다.
이 여정은 처음부터 곧장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길이 아니었다.
로마로 가기 위해 지나친 도시들은 하나같이 발걸음을 늦추게 했고, 경유지라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표정과 시간을 품고 있었다. 머무르라고 붙잡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치게도 하지 않았다.
그곳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를 잠시 멈춰 세웠고, 순례라는 말의 속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 도시들은 목적지를 대신하지 않았지만, 성문 앞에 서기 전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으로는 충분했다.
성문을 통과한다는 것은 단지 문지방을 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여러 번 자신을 비워낸 뒤에야 가능한 일임을 길은 먼저 가르쳐 주고 있었다.
아들과의 동행도 그랬다.
우리는 갑자기 가까워지지 않았고, 서둘러 말을 늘리지도 않았다. 다만 같은 풍경 앞에 서서 각자의 침묵을 견디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다. 예전 같았으면 어색했을 그 침묵이,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를 밀어내지 않았다.
말은 적었지만,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의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이번 길에서 나는 새삼스럽게 배워가고 있었다.
이 여정은 아직 결론을 향해 있지 않다. 오히려 지금은,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시간에 가깝다.
홀로 떠나야 한다고 믿었던 순례가 누군가와 함께여도 가능하다는 것. 목적지에 이르기 전의 경유지들이 삶의 부록이 아니라 본문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관계 역시 해결이 아니라 다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길은 말없이 가르쳐 주고 있었다.
로마는 여전히 앞에 놓여 있다.
세 번이나 다녀왔음에도 마음속에서 완전히 닿지 않았던 도시. 이번에는 다른 걸음으로 열린 성문 앞에 서게 될 중심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이 순례가 그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길 위에 서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
이 글은 여정의 기록이기 이전에, 다시 걸어 나설 수 있음을 확인한 한 마음의 서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