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를 살아낸 노학자가 남긴 삶의 세 갈래 길
오래된 말의 새로운 울림
"이웃을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하라."
김형석 명예교수가 강연의 끝에서 남긴 이 말은 새로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 세기를 살아온 노교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에, 그날 내게는 새로웠다. 106세의 나이에도 강단에 선 그는 은퇴 이후의 삶을 세 갈래 길로 정리했다.
첫째,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이어가는 것.
둘째, 미처 시도하지 못한 꿈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
셋째,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이 세 가지는 그의 생애가 증명하는 결론이었다.
남양성모성지의 길 위에서
지난 토요일 오후, 사단법인 엔드리스에서 마련한 ‘인문학을 남양성모성지에서 만나다. - 토요인문학 제6탄’, “100년의 삶의 인문학” 강좌를 들으러 남양성모성지로 향했다. 햇살은 언덕의 숲과 풀잎 위로 차분히 내려앉고, 순례객들의 발걸음이 완만한 오르막을 따라 이어졌다. 바람은 잎새를 흔들며 은은한 풀향기를 전했고, 오후 한 시를 알리는 종소리는 비록 디지털 음이었지만 성지의 고요한 공기를 가득 채웠다.
30여 년 전 꽃잔디와 야생초로 가득했던 이곳은 이제 웅장한 대성당으로 바뀌어 눈앞에 서 있었다.
팔순의 아들 손을 잡고 천천히 들어온 백세 노학자의 눈빛은 맑고 단호했다. 그는 장식을 배제하고 오직 삶에서 건져 올린 말을 꺼냈다. 강연은 교훈을 일방적으로 전하는 시간이 아니라, 오래 살아낸 사람이 들려주는 고백이었다. 그의 말은 단순했지만, 오랜 세월이 깎아낸 진실의 결이 느껴졌다.
그는 일본의 장수 노인들을 조사한 결과를 인용하며 노년의 행복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오랫동안 해온 일을 멈추지 않는 것. 그는 여전히 집필을 계속하며 젊은 날의 열정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었다.
둘째, 새로운 꿈을 시작하는 것.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예술이나 여행, 가족과의 시간을 통해 삶의 여백을 채울 수 있다고 했다.
셋째, 봉사로서의 일.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남을 돕는 일에서 비로소 삶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의 문장은 명확했고, 그 말끝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무엇을 이어가고, 무엇을 새로 시작하며, 누구를 위해 내 시간을 내어줄 것인가.
문득 30여 년 전 군 생활이 떠올랐다. 척박한 군대 막사에서 작은 수첩과 함께 김형석, 안병욱 교수의 에세이집을 읽던 날들. 거친 군 생활의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책이었지만, 그 글들은 내 인생의 첫 이정표가 되었다. 고된 일상 속에서도 마음 한쪽에 불이 켜지던 그때의 감각이 오늘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지금, 노년의 문턱에 선 나에게 같은 분이 머릿속에 엉켜 있던 생각들을 정리하도록 이끌어 주어 또 한 번의 이정표를 세워주었다.
상처를 품은 빛의 조각상 앞에서
강연이 끝나고 성당을 둘러보았다. 성당을 설계한 마리오 보타는 빛과 자연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50미터 천장에서 제단 위로 내려오는 햇빛은 그 신비로움을 더했고, 무지개 형상의 천장은 음향 반사판 역할을 하며 그 사이로 스며드는 자연광의 변화가 경이로웠다. 처음부터 바실리카 인준을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제단 위 천장에 매달린 십자가상은 이탈리아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가 아흔을 넘긴 나이에 직접 조각한 유작이었다.
몸에는 오상의 자국이 선명했지만, 고개를 쳐올리고 두 눈을 부릅뜨며 앞을 내다보는 강렬한 모습이었다. 평소 눈을 감고 고통을 견디는 전통적 형상과 달리, 비록 십자가에 못 박혀 있지만 부활의 생명으로 충만한 이 형상은 “부활하기 위해 기쁘게 죽는 예수님을 조각하고 싶었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힌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향하는 빛으로 표현했다”라고 영상에서 만난 반지의 말이다. 상처를 지우지 않고 품은 채로 빛을 내는 모습이었다.
나는 잠시 그 앞에서 내 삶의 흔적들을 떠올렸다. 견뎌낸 시간과 놓아버린 순간, 그리고 다시 이어 붙이고 싶은 기억들. 그것들이 하나의 줄기를 이루듯 이어졌다. 완벽하지 않아도, 상처가 남아 있어도,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세운 나의 이정표
성지를 나설 때 서쪽 하늘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는 이, 묵주를 손에 쥔 이, 촛불 봉헌실의 수많은 촛불 아래에서 묵상하는 이들.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오늘 들은 세 가지 길을 나는 마음속에 새긴다. 이어가는 길, 새롭게 여는 길, 내어주는 길. 노년은 완성의 시간이 아니라 수확의 시기이며, 그 수확은 이웃과 나누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젊은 날 이정표를 만들어주었던 노교수의 가르침은 이제 노년의 이정표까지 만들어주었다.
성당의 벽을 물들이던 남양의 빛은 내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 빛은 내일을 향한 다짐으로 옮겨졌다. 나는 내일도 오늘의 일을 이어가고, 미뤄둔 새로운 시작을 열며, 도움을 청하는 손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말이 다시 귓가에 맴돈다. “이웃을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하라.”
노년의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여기, 작지만 분명한 선택 속에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