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 깨기

『두 도시 이야기』가 남긴 질문들

by 느루숨

두꺼운 책을 끝까지 읽어낸 경험이 거의 없었던 내가, 이번에는 달랐다. 창비세계문학 34, 성은애 옮김 『두 도시 이야기』를 ‘벽돌책 깨기’ 강좌를 통해 드디어 완독 한 것이다. 책을 펼칠 때마다 벽돌 같은 두께가 나를 짓눌렀지만,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무너뜨려 갔다. 책장을 덮는 순간 성취감은 분명했으나, 마음 한구석은 의외로 담담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딘가 낯설고 멀게 느껴졌다. 그러나 ‘벽돌책 깨기’라는 표현처럼, 이번 경험은 인생 속 다른 벽돌들—미뤄둔 일, 두려운 도전—까지 깨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은근히 심어주었다.



낯선 우월성과 완벽한 희생


처음 낯설게 다가온 것은 작품 전반에 흐르는 영국의 우월성이었다. 디킨스는 프랑스혁명을 피와 광기로 덧칠하며, 영국을 상대적으로 안정과 법치, 점진적 개혁의 땅으로 그렸다. 민중의 굶주림과 절망이 만들어낸 분노는 희미하게만 스쳤고, 프랑스는 잔혹의 무대, 영국은 성숙한 문명의 상징으로 대비되었다. 극적 장면은 선명했지만, 내 정서는 그만큼 더 거리를 느꼈다.

또 하나는 시드니 카턴의 희생이다. 그는 루시를 향한 사랑으로 단두대에 올랐다. “내가 하는 일은 이제까지 내가 한 어떤 것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일이다”라는 마지막 독백은 영어 산문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절로 꼽히지만, 내게는 너무도 정교하게 준비된 무대 위의 대사처럼 다가왔다. 인간의 내면적 고뇌라기보다는 빅토리아 시대 도덕주의가 빚어낸 ‘순교자적 숭고’의 형식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비평가들의 목소리

이 불편함의 정체를 알고 싶어 평론가들의 글을 찾아보았다. G.K. 체스터턴은 『두 도시 이야기』를 디킨스 작품 중 가장 극적이고 구조적으로 완벽한 작품이라 평가했다. 조지 오웰은 디킨스가 영국의 점진적 개혁을 프랑스의 피비린내 나는 혁명보다 우월하게 제시했다고 비판했다. 현대 비평가 클레어 토말린은 카턴의 희생을 인류 보편의 구원 서사로 읽으면서도, 인물들이 상징적 장치로만 머문다는 점을 한계로 꼽았다. 알고 보니 내가 불편하게 여겼던 지점들은 이미 오랫동안 논쟁의 장에서 다루어져 온 문제였다.



공감하지 못한 세 가지 이유

그렇다면 왜 나는 여전히 이 작품과 정서적으로 공감하지 못했을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역사와 윤리의 차이다. 디킨스는 혁명을 도덕적 파국으로, 구원을 개인의 선의와 희생에서 찾았다. 하지만 오늘의 나에게 더 절실한 화두는 구조적 정의였다.

둘째, 정서와 미학의 차이다. 디킨스의 숭고는 웅장한 수사와 장면 연출로 고양되지만, 나는 균열과 회의의 미학 속에서 더 큰 울림을 느낀다. 균열이야말로 현실의 숨소리이기 때문이다.

셋째, 현재성과 보편성의 차이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보편의 메시지로 읽힌 장면들이, 오늘의 독자인 내게는 특정 시대의 산물처럼 다가왔다. 그 간극 때문에 작품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보다는 문밖에서 서성이는 독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차이 속에서 발견한 가치

그럼에도 『두 도시 이야기』는 고전으로서 여전히 힘을 지닌다. 거리에 쏟아진 포도주의 붉은 얼룩은 곧 피의 전조였고, 마담 드파르주의 뜨개질은 복수의 명부였으며, 발소리가 영영 사라지는 결말은 역사의 격동과 개인의 삶을 동시에 비추었다. 디킨스가 배치한 장치들은 정교했고, 여전히 배울 만한 교훈을 남겼다.

무엇보다 이 책을 완독 한 경험 자체가 내게 준 성찰이 크다. 두꺼운 책을 다 읽어낸 일은 단순한 성취가 아니라 자기 성찰의 과정이었다. 동의하지 못하는 대목조차 끝까지 읽어야 비로소 말할 수 있다는 역설을 체감했다. 공감하지 못한 독서도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내 가치관과 취향을 더 선명히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질문을 남기고 떠나는 책

비평가들은 카턴의 희생을 인류 보편의 구원 서사로 읽는다. 하지만 내게는 “내가 하는 일은 훨씬, 훨씬 더 훌륭한 일이다”라는 대사 속에 루시 개인을 향한 헌신이 지나치게 강조된 모습으로 다가왔다. 마담 드파르주의 뜨개질 역시 강렬한 상징이지만, 그녀는 인간적 갈등이 부재한 복수의 화신에 그쳤다. “실타래가 끊어지듯 쓰러졌다”는 장면은 복수의 종말은 보여주지만, 인물의 입체성을 전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차이를 귀하게 여긴다. 감동의 일치가 아니라 불편의 간극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질문을 만났기 때문이다. 희생은 어디까지 개인의 미덕으로 충분한가. 정의는 어떻게 구조를 바꿀 수 있는가. 고전은 시대를 넘어 오늘의 나와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답은 여전히 흐릿하다. 그러나 이 물음들은 앞으로 내 독서와 삶에 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두 도시 이야기』는 내가 완벽히 사랑한 작품은 아니지만, 나를 더 멀리 사유하게 만든 책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벽돌책을 끝까지 읽어낸 독자에게 주어지는 진짜 보상일 것이다. 책은 결국 나를 흔들지 않아도, 그 두께만큼의 질문을 남기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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