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메아리 속엣 꾹꾹 눌러쓴 한 줄
내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가?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로 뉴스를 보다가 유명 유튜버의 한마디가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한 걸 보았다. 옆자리의 누군가도 같은 내용을 영상으로 보고 있었고, 그 사람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의 짧은 말이 타인의 생각에 파문을 일으키고, 그 파문이 나비효과처럼 전파되는 장면. 그 광경은 묘하게도 섬뜩하고 익숙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의 그림." 월터 리프만의 말(『여론』,Public Opinion, 1922)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그림조차 소수에 의해 그려진다는 사실이, 가슴 깊은 곳에 차가운 돌멩이처럼 박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내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가?
세상은 소수의 목소리에 의해 춤춘다. 한 사람의 외침이 만 명의 침묵을 잠식하고, 한 줄의 문장이 백만 개의 생각을 삼켜버린다. 소수의 목소리가 다수의 귀를 사로잡는다. 유튜브의 천만 구독자가 던진 자극적인 한 마디가 디지털 쓰나미를 일으키고, 인스타그램 이야깃거리 하나가 수백만 명의 세계관을 한순간에 뒤흔든다. 그들의 목소리는 전파를 타고 광장을 가로지르며, 나머지 많은 이들은 댓글 창이라는 메아리 속에서 자신만의 울림을 잃어간다. 모두가 다 듣는 것은 아니지만, 알고리즘이 만든 급류는 생각보다 거세다. 나 역시 무심코 올린 한 줄의 글이 퍼져나가는 것을 보고, 때론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다.
X에서 명확하게 쪼갠 한 줄의 주장이 여론의 나침반을 돌리고, 정치는 그 급속한 흐름을 따라 물살처럼 흘러간다. 우리는 플랫폼이 만든 급류에 휩쓸린 낙엽이 되어 떠내려가고, 어느새 내가 무엇을 옳다고 믿는지조차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세상의 일은 단순한 산수가 아니다. 겉보기에 명쾌해 보이는 여론조차도 수천 개의 실이 얽히고설킨 직물처럼 복잡하다. 감정과 이해관계, 시간의 퇴적층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지층이다. 한 개인의 선택마저 홀로 서 있는 외로운 등대가 아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다수의 시선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에 조종당하고, 그 실은 또 다른 큰 목소리들의 자석에 끌려간다. 세상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위태로운 연결망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작은 파동에도 삐걱거리는 배처럼, 우리는 늘 중심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거짓도 반복하면 진실의 가면을 쓴다. 괴벨스의 예언이 디지털 시대에 부활했다. 왜곡된 말이 메트로놈처럼 반복되며 사람들의 감각을 서서히 마비시키고, 그 마비는 새로운 현실이라는 신기루를 만들어낸다. 나 역시 그런 언어의 늪에 발목이 잡혔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누군가의 단호한 주장을 사막의 나그네가 오아시스를 보듯 생각 없이 받아들였고, 누군가의 진영 논리라는 기차에 표도 없이 몸을 맡겼다. 말은 점점 남의 옷을 입은 나의 것이 되었고, 나는 메아리만 되풀이하는 텅 빈 동굴이 되어갔다. 우리는 말이라는 칼로 서로를 베어낸다. 말이 신념이라는 갑옷이 되고, 감정이 편이라는 깃발이 된다. 일부의 극단이 마치 전체의 대변인인 양 목청을 높이고, 많은 이들은 안개 낀 바다에서 나침반을 잃은 배처럼 표류한다. 정치가 그 극단의 나침반만을 믿는다면, 나머지 우리들은 어떤 별을 보며 항해해야 할까. 그 물음의 중심에, 고개를 숙인 채 흩어져가던 내 모습이 거울처럼 떠오른다. 이따금 거울을 들여다보며, 내가 왜 그런 말들을 따라 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오래도록 누군가의 공감이라는 따뜻한 손길을 갈망했다. 외로움이라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내 생각이 우주먼지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기 위해, 나는 갈매기가 등대를 찾듯 누군가의 시선을 애타게 찾았다. 하지만 그 시선은 언제나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한나 아렌트가 경고했듯 악은 회색 정장을 입고 평범하게 찾아온다. 나는 그 평범한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대본도 없이 무심코 말했고, 관객처럼 따라 웃었고, 조롱했고, 고개를 끄덕였다. 책임 없는 말들이 내 하루를 메우는 잡초가 되었고, 공허한 동조가 내 마음을 지배하는 그림자가 되었다. 지금은 안다. 나는 말이라는 씨앗을 무심히 흩뿌렸고, 그것이 자라내는 열매를 확인하지 않은 채 외면하고 살았음을.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다. 내 말이 내 땅에서 자란 나무이기를, 내 감정이 내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상을 흔드는 건 언제나 큰 목소리들이지만, 그 힘이 반드시 파괴의 망치만은 아니다. 혁신도 한 알의 씨앗에서 시작되고, 변화도 바위틈의 작은 균열에서 꽃을 피운다.
내 문장이 그런 균열의 씨앗이기를 꿈꾼다. 누군가의 마음이라는 호수에 작은 조약돌을 던져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한 번쯤은 두드려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쓰는 문장이 성냥불만큼 작은 불꽃이라면, 그 불꽃이 상처를 주는 화염이 아니라 추위를 녹이는 온기가 되기를 바란다.
큰 목소리들이 여론이라는 바다를 흔드는 세상에서, 나 역시 내 문장으로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을 품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이 설득이라는 강요가 아니라 공감이라는 다리여야 한다는 것을. 소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등대 같은 말을 찾고 싶다.
진실은 가장 느린 걸음으로 온다. 하지만 그 진실을 기다리며 내 자리에서 내 말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작은 목소리를 가진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가장 큰 저항이다. 겨울나무가 추위 속에서도 뿌리를 지키며 봄을 기다리듯이. 내 목소리는 바로 여기, 내 가슴 깊은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