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숫자를 센다

분노에서 자비로, 하나부터 다시

by 느루숨

분노의 순간, 숫자를 세다

하나, 둘, 셋, 넷.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나는 조용히 숫자를 센다. 단순한 수의 나열이 내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는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분노는 여전히 곁을 쉽게 떠나지 않는다. 말을 아끼려는 결심에도, 다급한 반박이 먼저 떠오르고, 뜨거운 감정이 내 이성을 앞질러 달려 나간다.




정의감이라는 착각

젊은 날, 나는 그런 자신을 정의롭다고 여겼다. 옳지 않은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 부당함 앞에서 침묵하지 못하는 마음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 정의는 종종 타인을 해치는 칼날이 되었다. 상대방의 사정은 헤아리지도 않고, 내 기준으로만 옳고 그름을 재단했다. 지금은 그런 날이 찾아올 때면, 재빨리 숫자를 세며 마음의 칼집을 닫는다.

뜨거운 말이 목구멍 끝에 차오를 때, 손끝이 떨리고 숨결이 거칠어지는 순간, 나는 조용히 셈을 시작한다. 운전대 위에서도, 통화 중에도, 북적이는 자리 한가운데서도 속으로 숫자를 반복한다.

누군가는 십자성호를 긋고, 누군가는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린다. 내게는 숫자를 세는 이 작은 행위가 균형을 되찾는 의식이 된다. 불교의 아나빠나사띠, 즉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는 호흡 명상처럼, 그저 차분히 숫자를 세며 잠시 감정과 생각을 내려놓는다. 이렇게 마음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내는 시간 속에서, 움켜쥐었던 고집과 판단이 점차 느슨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세상을 오로지 내 잣대로만 재려 했던 날들이 자연스럽게 물러가고, 틱낫한 스님이 말씀하신 “중도란 내가 쥐고 있는 모든 견해를 놓아버릴 때 드러나는 평화의 길”이라는 뜻이 잔잔한 파동처럼 내 마음에 번져간다.

숫자를 세는 동안, 마음의 결은 서서히 부드러워지고, 그 순간만큼은 맞고 틀림, 옳고 그름을 내려놓는다. 고요가 깃들기 시작하면, 내 안의 옹졸함과 남을 재단하던 습관도 잦아든다. 정의감에 휩싸여 세상을 바꾸려 애쓰던 때와 달리, 이제는 내 안의 평화를 먼저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고요 속에서 찾은 평화

어느 저녁, 집에 돌아와 불을 밝히지 않은 채 조용히 앉았다. 그날은 유난히 마음이 어지러웠다. 오래 참았던 갈등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고, 그 여진이 내 마음 한복판을 흔들고 있었다. 크고 작은 오해와 다툼이 겹겹이 쌓인 채로 해가 저물었다. 마음이 풀리지 않는 매듭에 얽혀 있을 때, 나는 조용히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셋, 다섯, 일곱, 아홉… 숫자가 올라갈수록 마음은 내려앉았다. 말로는 도저히 풀리지 않던 매듭들이 하나둘 느슨해진다. 고요와 반복의 시간 속에서 나는 침묵으로 나를 달래고, 숫자로 나를 다독였다.

그렇게 고요한 저녁, 견해를 내려놓고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주는 평온 속에서, 타인의 연약함과 상처가 전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마음의 문이 열릴수록 자비란 내 약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 남을 품는 온기로 이어진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비의 해를 선포하며 남긴 “자비란 하느님의 마음이 인간의 비참함에 다가가는 것”이라는 말처럼, 내가 내 마음에 먼저 자비를 베풀 때야, 타인에게도 그 따스함이 닿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분노로 가득 찬 자리에는 침묵을 놓고, 단정하던 태도 위에는 조심스레 질문을 남기며, 나는 조금씩 나의 견해를 내려놓는 법을 배워간다. 숫자를 센다는 일은 단순한 습관을 넘어 내면의 흐름을 바꾸는 조용한 힘이었다. 무언가를 놓으면 반드시 채워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빈틈에 고요가 깃든다. 그 고요는 어떤 말보다 강력했고, 어떤 설명보다 깊었다. 때로는 그 침묵이 누군가의 위로가 되었고, 나 자신의 치유가 되기도 했다.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

숫자를 세며 달라진 것은 내 겉모습이 아니다. 여전히 같은 일상, 때로는 화도 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마음을 밀고 나가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짧은 침묵 속에서 숨을 고르고, 내면의 중심을 다시 찾는다. 그 중심은 언제나 나를 향한 부드러운 시선에서 시작된다.

침묵이 깊어질수록 설명도 판단도 필요 없는 순간이 온다. 고요만이 남고, 내 안의 작은 등불 하나가 나를 감싼다. 이제는 감정을 다스리려 숫자를 세는 것이 아니라, 흐트러진 마음을 모으고자, 평정심을 지키고자 셈을 되뇐다. 때로는 다섯, 때로는 열둘. 어디까지 세느냐보다, 그 반복 속에서 내가 나를 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은 내게 주는 작은 선물이다.

세월이 깊어질수록 나는 더 자주 숫자를 센다. 세월의 흔적이 몸에 남아 예전보다 한결 느려졌지만, 그 느긋함 덕분에 마음은 더욱 넉넉해지고, 깊은 평온이 스며들었다. 세상을 바꾸려 애쓰지 않고, 다른 이를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내 마음의 방향을 고를 뿐이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고, 모두가 즉시 반응하길 원한다. 그럴수록 나는 잠시 멈춘다. 하나, 둘, 셋. 이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은 달라진다. 분노와 불안 대신, 고요와 자비로 대답할 수 있다.

숫자를 센다는 것은 내가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이다. 감정에 떠밀리지 않고, 생각에 갇히지 않으며, 그저 지금 이 자리의 나를 바라보는 것. 나는 그 문턱 앞에서 오늘도 숨을 고른다.

누군가의 말에 가슴이 뜨거워질 때, 나는 다시 셈을 시작한다. 그 리듬 속에서 자비를 배우고, 균형을 연습하며, 나를 살린다. 견해를 놓고, 감정을 알아차리며, 고요를 받아들이는 삶. 그 시작은 언제나 하나에서 출발한다. 오늘도 나는 숫자를 센다. 하나부터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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