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은 특권이 아니라, 정의의 최후 보루이어야 한다.

法不阿貴 — 법은 귀한 자를 두호(杜護)하지 않는다

by 느루숨


사면권은 본래 법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예외적으로 인도적 사정을 고려하기 위해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막강한 권한이다. 형벌이 지나치게 가혹하거나, 새로운 증거와 정황이 드러나 억울함이 해소되어야 할 때 정의를 보완하는 안전장치로 설계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는 그 취지와 정반대의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이 정치적 이해와 개인적 인연 속에서 사면과 복권을 남발하는 모습이다. 국민의 법 감각과 정의감은 그 순간 깊이 훼손된다.




파렴치한 범죄의 실상, 그 민낯을 벗기다

최근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회 지도층의 범죄들을 살펴보면, 그 추악한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들이 저지른 것은 단순한 실수나 일탈이 아니다. 사회적 신뢰와 공정성을 송두리째 파괴한 계획적이고 파렴치한 범죄행위들이다.

먼저 자녀의 대학 입시를 위해 허위 서류를 작성하고 조작한 사건들을 보자. 한 고위 공직자는 자녀의 대학원 입학을 위해 허위 인턴 확인서를 발급받았고, 다른 이는 자녀의 의전원 진학 과정에서 각종 서류를 조작했다. 이는 교육의 공정성이라는 사회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행위다. 수많은 학생들이 정직하게 공부하고 노력하는 동안, 이들은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새치기'를 했던 것이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시민들의 선량한 마음을 이용한 기부금 사기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는 미명 하에 모금한 돈을 개인 용도로 빼돌리고 유용한 행위는 이중, 삼중의 배신이다. 기부자들의 선의를 짓밟았을 뿐만 아니라 정작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서 지원을 빼앗은 비도덕적 범죄다.

권력의 사익화는 더욱 노골적이었다. 공직자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특정 기업에게 부당한 특혜를 제공하고, 정당한 행정 절차에 개입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긴 사건들이다. 이는 공정한 경쟁 질서를 파괴하고 시장경제의 기반 자체를 흔드는 행위다.

시장으로서 경찰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건은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든 중대한 범죄다. 시민들이 선출한 단체장이 법 집행기관과 유착하여 돈거래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법무부 고위직이 만취 상태에서 택시기사를 폭행한 사건은 그 상징성이 더욱 충격적이다. 법을 다루는 최고위 공직자가, 그것도 생계를 위해 밤늦게 일하는 사회적 약자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이는 개인의 인격적 결함을 넘어 우리 사회의 계층 갈등과 권력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이 모든 범죄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바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이용한 파렴치한 사익 추구다. 이들에게는 공직자로서의 책임의식도, 사회 지도층으로서의 도덕적 의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과 가족의 이익만이 있었을 뿐이다.

더욱 분노스러운 것은 이들이 범행 과정에서 보인 뻔뻔함이다. 거짓말과 위장, 은폐와 조작을 서슴지 않았고, 발각된 후에도 진정한 반성보다는 법적 다툼과 책임 회피에만 골몰했다. 이들에게 법의 심판은 마땅했고, 그 판결은 늦었지만 정의로운 것이었다.




가중처벌이 마땅한 이유

이러한 범죄는 일반인보다 훨씬 더 무거운 책임과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지도층이 저질렀기에, 오히려 가중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국민은 그들에게 더 높은 도덕성과 법적 준수 의무를 기대한다.

그런데도 현실은 정반대다. 반성과 속죄는커녕, 권력의 방패 뒤에 숨어 있다가 사면이라는 '면죄부'를 받는다. 법치주의의 근간이 무너지는 순간이며, 사면권이 정의를 살리는 칼이 아니라 권력자와 범죄자를 잇는 고리로 전락하는 장면이다.




사면권 남용의 파괴적 결과

이러한 판결들은 사회적 경종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경종이 울리기도 전에 사면권 남용이 모든 과정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수년간 이어진 재판과 수사, 피해자들의 고통과 증언, 그리고 사회가 어렵게 세운 정의의 토대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된다.

참회와 반성이 부족한 이들이 다시 공적 영역으로 복귀하는 모습을 보는 국민은, 용서가 아니라 방조를 목격하는 셈이다.

사면은 권력자가 베푸는 은혜가 아니다. 그것은 법의 엄격함 속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쓰여야 하는 최후의 안전판이다. 특히 범죄로 법정에 섰던 최고 권력자가 사면권을 행사한다면, 그 판단에는 더욱 높은 윤리적 기준과 투명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정권의 이해, 정치적 동맹, 과거의 인연이 법보다 앞선다. 이런 사면은 '은혜'의 탈을 쓴 '거래'에 불과하다.




해외의 엄격한 제도적 장치

해외의 많은 민주국가들은 사면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제도를 두고 있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독립적인 사면심사위원회의 동의를 필수로 한다(미국 조지아주 주헌법 제5편 제2절). 영국은 사면을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하며 절차와 이유를 투명하게 공개한다(영국 정부 공식 발표, "Royal Prerogative of Mercy", 2023).

프랑스는 정치적 사건 사면에 강력한 제한을 둔다(프랑스 형사절차법 Code de procédure pénale 제133-7조, 2008년 개정). 독일은 연방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연방법·주법으로 엄격히 제한하며, 형 집행의 공익성과 형평성을 반드시 검토하게 한다(독일 기본법 제60조, 연방형법 §455a).

일본은 사면을 총리와 법무대신이 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각의 의결 후 천황이 공포하며, 특히 정치적 사건 사면은 극히 드물게 허용한다(일본 사면법 제2조, 1947년 제정).




역사가 주는 경고

역사적으로 사면 남용은 부패를 심화시키고 국가 기반을 무너뜨렸다.

로마 제국 말기의 네로(Nero, 재위 5468년)는 국고 횡령과 살인 교사 혐의를 받은 최측근 티겔리누스(Gaius Ofonius Tigellinus)를 사면하고 더 높은 직책에 앉혔다. 코모두스(Commodus, 재위 180192년)는 반란과 약탈 혐의로 기소된 장군 클레안더(Cleander)를 풀어주고 재등용했다. 카라칼라(Caracalla, 재위 198~217년)는 반역 혐의가 있었던 시리아 총독 마크리누스(Macrinus)를 사면했으나, 그는 훗날 황제를 암살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이러한 사면 남용은 “권력에 충성하면 어떤 죄도 용서받는다”는 왜곡된 신호를 퍼뜨렸고, 결국 로마 법질서의 붕괴를 재촉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도 이와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1997년 12월 22일,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의 주범인 전두환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무기징역을, 노태우는 17년형을 확정받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구속 2년여 만에 자유인이 되었다.

당시 사면의 배경을 살펴보면 그 정치적 계산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3후보 모두가 전두환·노태우의 사면복권을 경쟁적으로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김대중 당선자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국민 대화합'을 명분으로 임기 내 사면을 제안했다. 당시는 외환위기의 와중이었고, 김대중은 '동서화합'을 이유로 사면을 추진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국민 여론과 정반대였다는 사실이다. 1997년 9월 한겨레신문 여론조사에서 '조건 없는 사면'에 대해 73.8%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응답했고, 경향신문 조사에서도 63.3%가 대선 이전 사면에 반대했다. 국민의 압도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우선되었던 것이다.

이 사면이 남긴 후유증은 참혹했다. 광주 시민들과 민주화 운동 피해자들의 상처는 다시 벌어졌고, "권력에 충성하면 어떤 죄든 용서받을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렸다. 이후 우리 사회에서 권력형 범죄가 반복되고, 사면권이 정치적 거래 수단으로 남용되는 구조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 대가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치러야 했다.




국민 심리에 미치는 악영향

사면권 남용은 국민 심리에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법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는 인식이 퍼지고, 권력에 가까운 사람만이 특혜를 누린다는 냉소가 사회 전반에 확산된다.

이런 냉소는 정치 참여 의지를 약화시키고, 공적 책임과 도덕성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린다. 장기적으로는 권력과 부패가 결탁하는 구조가 굳어져 개혁의 동력이 사라진다.




구체적 제도 개선 방안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독립적 사면심사위원회 설치: 법조계, 시민사회, 학계 인사로 구성된 독립적 심사기구를 두어 사면 타당성을 사전 검토하게 해야 한다.

사면 사유 공개 의무화: 모든 사면에 대해 구체적 사유와 심사 과정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정치적 사건 사면 제한: 권력형 부패, 선거범죄 등 정치적 성격의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피해자 의견 청취 절차: 사면 과정에서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의견을 반드시 청취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사면권이 개인의 정치적 생존 도구가 아니라, 정의와 인권을 보완하는 장치로 기능하도록 제도적 울타리를 세워야 한다.




정의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자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사면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아니면 권력자 자신인가?

법이 무너진 자리에 권력이 서고, 그 권력은 '국민의 이름'으로 다시 정의를 베는 칼이 된다. 정의의 마지막 보루가 권력자의 손에서 무너질 때, 사회는 그 뿌리부터 흔들린다.

정의의 가치는 특정인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사회의 약속이다. 법은 귀한 자를 편들지 않는다는 法不阿貴의 정신이 지켜질 때, 비로소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뿌리내린다.

이 정신을 헌법 옆에 새겨야 할 때다. 그래야만 사면이 특권의 도구가 아니라, 정의의 마지막 보루로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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