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못하는 한 순례자의 고백
지도 위에 머무는 순례자
나는 아직 떠나지 못한 순례자다. 2025년 희년을 맞아 이탈리아 성지를 걷겠노라 마음먹었지만, 현실은 여전히 지도 위에 머문다. 로마에서 아씨시로, 시에나와 피렌체를 거쳐 다시 로마로 돌아오는 길. 루르드와 파티마도 목록에 있다. 그러나 나는 출발하지 않는다. 구글 지도를 돌려보며 교통편, 숙소, 미사 시간까지 꼼꼼히 계획하지만, 실행은 늘 내일로 미룬다. 마우스를 클릭하고 손가락으로 경로를 그리며, 나는 그저 떠나는 척만 한다.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상상은 위안이 되지만, 마음 한편에는 이루지 못한 결심이 늘 무겁게 남는다.
망설임의 진짜 이유
이토록 철저한 준비가 현실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많다. 무릎이 아프고, 환율이 불안정하며,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혼자 나서는 두려움, 그리고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모르는 망설임이다. 순례지의 범위가 넓을수록 길은 흐려지고, 계획은 복잡해진다. 로마부터 시작할까, 루르드를 먼저 둘러볼까. 파티마는 넣어야 할까, 미뤄야 할까. 망설임은 세월 따라 그 얼굴을 바꾼다. 젊을 땐 시간이 없다고, 지금은 건강과 형편 탓이라며 발걸음을 늦춘다. 그렇게 하루를 넘기고, 일주일을 보내고, 한 달이 흘렀다. 순례를 결심한 지도 어느덧 일 년. 시간은 지났고, 발걸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렀다. 마크 트웨인의 말이 마음을 때린다. “20년 후, 하지 않은 일을 더 후회할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긴다. 그럼에도 아직, 나는 출발하지 못한다. 밤이 깊어지면 창가에 앉아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여정을 상상한다. 창밖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묻는다. “언제쯤일까?”
작은 순례부터 시작하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멀리 가려는 계획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로마, 아씨시, 루르드, 파티마. 이름만으로도 무겁던 여정이었다.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나는 지금 내가 실현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순례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희년은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주제로, 어둠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이들을 위한 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희년은 단지 성지를 방문하는 일이 아니다. 하느님과 화해하고, 마음의 매듭을 푸는 회심의 여정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속한 수원교구에서 가까운 성지를 찾아 순례를 시작하기로 했다. 첫 계획은 남양성모성지. 광활한 성모 동산과 묵주기도 길, 십자가의 길이 있는 그곳에서 성모님의 시선을 마주하며 걷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에 마음이 정돈되고, 한 걸음마다 기도가 차오른다. 순례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그 속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이 작은 여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수원교구의 다른 성지, 은이성지와 미리내성지, 양근성지까지 순례할 계획을 세운다. 이미 여러 번 다녀온 곳들이지만, 희년을 맞아 새로운 마음으로 그 길을 다시 걷는다. 은이성지에서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미리내성지에서는 교우촌의 조용한 숨결을 느낀다. 양근성지 언덕에서는 한강을 내려다보며 순교자들을 기억한다. 성지마다 다른 기도와 다른 풍경이 있지만, 그 모든 길은 하나의 여정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작고 구체적인 계획이 나를 조금씩 현실의 길 위로 이끈다. 그렇게 나는 지도를 벗어날 준비를 시작한다.
오늘도 준비하는 순례자
나는 오늘도 작은 순례를 계획한다. 남양성모성지에서 시작해, 언젠가 이탈리아로 향하겠다는 다짐을 되새긴다. 그날을 상상해 본다. 성년의 문이 열린 로마, 베드로 성당 앞에서 나는 고요히 그 문턱을 밟는다. 그 문을 통과하는 순간, 내 안에 새로운 시작이 피어난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 베드로, 성 요한 라테라노,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당을 천천히 걸으며 기도한다. 바오로 참수 터와 카타콤베를 지나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당까지 이어지는 길을 걷는다. 트라스테베레 골목을 지나 작은 바에 앉아, 순례의 숨을 고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성 베드로 광장에서 나는 속삭일 것이다. “나는 여기 있다.”
아씨시에서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 언덕을 오르고, 피렌체에서는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도시를 내려다본다.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깨닫는다. 내가 정말 여기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지도를 돌린다. 이탈리아의 지도를 확대하고 축소하며 루르드와 파티마를 바라본다. 그 성지들을 포함할 것인가, 아니면 다음을 기약할 것인가. 마음은 간절하지만, 형편은 쉽지 않다. 스페인에서 프랑스를 거쳐 포르투갈까지 이어지는 여정, 그 길을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가끔은 루르드의 성모상이 꿈에 나타날 듯하고, 파티마 삼목 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는 상상에 젖는다. 그러나 현실과 타협하며 이번에는 이탈리아까지만 계획한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속에 분명히 새긴다. 언젠가는 꼭 그 길을 걷겠다고.
그 시작을 위해 나는 오늘도 준비한다. 기도문을 챙기고, 미사 시간을 확인하며, 낡은 배낭을 꺼내 먼지를 턴다. 익숙한 신발 끈을 조이며 마음도 다시 다잡는다. 순례는 오늘을 걷고, 내일을 준비하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작은 순례길을 걷는다. 언젠가 이탈리아의 돌길 위에 서면, 나는 웃으며 말할 것이다. “드디어, 지도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또 다른 길 위에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