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의 기능

날 알아줬으면 좋겠어. 아니, 몰라도 돼

by 융이



나는 두 개의 블로그가 있다. 하나는 친구들만 볼 수 있는 블로그이고 나머지 하나는 인터넷에서 교류하는 사람들과 주로 지내는 블로그이다. 친구들이 볼 수 있는 데서만 할 수 있는 얘기가 있고 나를 실제로 모르거나 취향이 같은 사람들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나름의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어서 공개할 수 있는 범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갑자기 블로그가 다시 급유행을 했던 적이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에 너무 길거나 사적인 일상들을 담는 용도였다. 인스타그램에도 물론 일상을 올리지만, 그곳은 특별한 사진을 전시하는 곳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인스타가 MZ세대의 명함과도 같아서 초면에도 아이디 교환을 하는 경우가 많다. 꼭 친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공간에서 사적인 일상을 보여주는 것은 조금 꺼려진다. 그런 부분에서 블로그는 그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블로그에는 여행을 갔던 이야기, 사소한 일상의 모습, 하루의 일기, 개인적인 생각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이 올라온다. 이 사람은 이렇게 살고 있구나. 때때로 친구를 만나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잘 먹고 잘 지내고 있구나, 하는 것들을 알게 된다. 내가 몰랐던 그 사람의 많은 면을 알게 한다. 그러다 보면 사람은 너무나도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는 입체적인 존재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꽤 오랫동안 블로그를 써 왔던 나는 블로그가 유행하며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어서 신기하고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감정도 퇴색되고 말았다. 그들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받아들이는 내가 변했다. 언제부턴가 그 사사로운 일상도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고 나니 전혀 궁금하지 않은 것들이 되었다. 내가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느끼는 것들이 블로그 글에서도 똑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괴로웠다. 내가 이렇게 속 좁은 사람이라니. 이 정도의 일상 글도 견디지 못하다니. 다른 사람의 일기를 보는 게 조금은 괴로운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말하자 지인은 내게 말했다.


“입체적인 면..? 안 궁금한데.”


그렇다.

문보영 시인의 <일기 시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실로 그렇다.

그러나 쉽게 미워할 수가 없는 것은 꽤 고통스러운 일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지인들이 볼 수 있는 블로그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게 되었다.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몰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것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요즘 고민은 뭔지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굳이 알아야 할까?’로 시작해서 끝끝내 ‘그래, 몰라도 돼’라는 마음이 더 커지곤 한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 채 어렴풋이 잘 살고 있겠지 정도로 생각해 주는 것이 나도 상대방도 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로 입체적인 면을 안다는 게 정말 좋은 건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온전히 좋기만 한 일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현재는 그런 것들보다 당장의 내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더 먼저가 아닐까 싶다.

p.s 늘 답이 없는 결론을 내는 주제로 글을 쓰고 보니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드네요. 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글을 쓰고 공유한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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