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는 마음과 별마당 도서관의 상관관계
내 취미는 영화 보기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 편은 보려고 한다. 여유가 있을 때는 더 많이 보기도 한다. 바쁠 때는 일주일에 한 편도 못 보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조차 ‘얼른 영화를 봐야 하는데’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쓴 글 중에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작품 분석보다는 영화를 좋아하는 내 마음에 초점을 둔다. 그래도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저 좋아하는 것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도 커서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다.
그런 고민을 할 때면 내 주변의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떠오른다. 영화를 통해 가까워진 인연은 아니지만 서로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중 하나이다. 우리는 왓챠피디아로 작품에 별점을 남기는 것을 통해 생사를 확인하곤 한다. 그런 친구 중 한 명과 오랜만에 연락을 주고받았다. 도서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친구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고 답장을 보냈다. 나도 오늘 코엑스에 있었다고. 비록 도서전이 아니라 혼자 영화를 보러 간 것이지만, 오늘 우리가 엇비슷하게 같은 장소에 있었다고 말이다. 이 친구와는 몇 달에 한 번씩 이런 사소한 대화로 시작해 종종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요즘은 뭘 좋아하며 어떤 걸 하고 있냐고 물었다. 졸업이 가까워진 탓에 이 말에도 진로는 정했냐는 의미가 포함되곤 한다. 나는 여전히 소설과 영화가 좋아서 큰일이라고 했다. 졸업은 다가오는데 그나마 잘하는 것도, 남들보다 조금 더 관심 있는 것도 영화와 소설이었다. 이것이 없으면 삶이 너무 무료하다는 것을 알아서 다른 길로 가려다가도 자꾸만 그 주변에서 기웃거리게 된다. 이런 마음은 마치 코엑스의 복잡한 구조와 같다. 목적지를 아무리 찾아도 돌고 돌아 별마당 도서관으로 발길이 도착한다. 어쩌면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도 이런 종류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 내가 쓴 글에서는 “영화판에 뛰어들려면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영화 한 편에 행복해할 수 있나?’에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길래 깔끔히 접어두었다.”라는 말을 내뱉은 적이 있다. 이 문장은 쓰면서도 어렴풋이 느꼈지만 다시 읽으니 더 확실하게 느껴지는 게 있다. 나를 속이기 위한 문장이라는 점이다. 책만 해도 접어둔 페이지는 자국이 남아서 제자리로 돌려놔도 계속 자국이 남아있다. 심지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길이 들어서 더 잘 접힌다. 깔끔하게 접어둔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마음을 뗄 수 없을 거라는 것을 다 어렴풋이 알고 적은 문장인 것 같다.
이렇듯 좋아하는 마음은 억누르려고 해도 되살아나곤 한다. 계절이 돌고 도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멀어진다. 좋아하는 일에 뛰어들진 않아도 발이라도 적셔보고 싶어서 근처를 맴돈다. 내가 일정한 걸음과 보폭으로 일자로 주욱 길을 걷고 있어도 잠시 넘쳤다가 도망가는 파도처럼. 좋아하는 일이 내게 먼저 다가와 줬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내가 걷고 있는 것은 해안가가 아니라 물의 수위도 온도도 일정한 수영장이므로. 내가 뛰어들지 않으면 영원히 평행선으로 걸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요즘엔 그런 생각을 한다. 평행선이면 어떤가. 굳이 닿지 않아도 바라보기라도 한다면, 결국엔 별마당 도서관의 법칙이 이뤄지지 않을까? 나는 이제 그런 마음에 더 희망을 갖는다. 영화 한 편에 행복하냐는 대답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는 못할지언정 싫어하냐고 물어보면 곧바로 ‘아니’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있기에. 좋아하는 마음을 소중히 여기려고 한다. 좋아하는 것 곁에 머무르는 것은 좋아하는 마음이기에 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기에 할 수 없는 일 사이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일이다.
p.s. 여러분은 열정을 쏟을만한 일을 갖고 계신가요? 아니면 곁에 머무르고만 있는 것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