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칼럼>
항암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고통이 함께 끝나는 건 아니에요.
치료가 끝난 뒤에도 손발이 저리고, 힘이 빠지고,
혼자 걷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는 분들이 있어요.
대체 왜 그런 걸까요?
안녕하세요.
말초신경병증 증상으로 이 글을 찾아오셨다면,
아마 지금 내 몸이 왜 이러는지, 앞으로 나아질 수는 있는 건지
그 답을 찾고 계신 분일 거예요.
오늘은 제가 진료실에서 직접 만났던 환자분의 이야기를 통해
그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드리려고 해요.
콕통증의학과 신경과 전문의 조성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휠체어를 타고 처음 오셨던 그날
얼마 전, 70대 남성 환자분이 처음 내원하셨어요.
휠체어를 타고 오셨고, 진료실에 들어오시는 것도
직원분들이 직접 도와드려야 할 정도였어요.
항암치료를 9차까지 받으신 분이었어요.
췌장암 치료를 마치고 나서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하셨어요.
체중이 10kg 이상 빠졌고, 손발에 힘이 없어졌고,
허리를 제대로 세우는 것조차 힘드셨다고요.
집에서도 가족이 항상 부축해줘야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상태셨어요.
처음 진료실에서 환자분을 마주했을 때,
솔직히 말씀드리면 마음이 무거웠어요.
항암치료 이후 이 정도로 기능이 저하되신 분을 뵐 때마다
빨리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거든요.
항암치료를 받은 분들 중 상당수가 치료가 끝난 뒤에도
손발 저림, 근력 저하, 보행 장애 같은 증상을 호소하세요.
이게 단순한 피로나 체력 저하가 아닐 수 있어요.
항암제 중 일부, 특히 백금계열이나 탁산계열 약물은
말초신경에 직접적인 독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신경 자체가 손상되면서 감각 이상, 저림, 근력 저하가 생기는 건데,
이걸 항암 유발 말초신경병증(CIPN)이라고 불러요.
이 환자분도 딱 그런 케이스였어요.
내원 당일 신경과 진료를 통해 MRI와 근전도 검사를 시행했어요.
당일 MRI 촬영 가능한
콕통증의학과 오시는 길
손가락과 발목 근력이 뚜렷하게 저하되어 있었고,
근전도 검사에서 말초신경 손상 소견이 확인됐어요.
신경과 입장에서 진단의 핵심은 단순히 어디가 저리냐가 아니에요.
저림이 어떤 패턴으로 분포하는지, 근력 저하가 어느 근육군에 나타나는지,
반사 반응은 어떻게 달라져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봐야 해요.
이 환자분은 사지 말단부터
대칭적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전형적인 말초신경병증 패턴이었어요.
그리고 항암치료 이력과 증상 발생 시점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고요.
말초신경병증 치료는 한 가지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아요.
신경 손상의 범위, 원인, 현재 기능 수준을 종합해서
단계별로 접근해야 해요.
이 환자분의 경우엔 신경과, 재활의학과, 통증의학과가 함께 협진 체계를 구성했어요.
각 과가 맡은 역할이 달랐고, 그게 치료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저희 신경과에서는 신경 손상의 정확한 범위와 정도를 파악하고,
말초신경 기능 회복을 돕는 약물 치료를 담당했어요.
비타민 B12 계열의 신경영양제, 신경병증성 통증 조절을 위한 약물 등을
증상과 검사 결과에 맞게 조정했죠.
통증의학과에서는 SI(초음파 유도하) 주사치료를 통해
통증이 가장 심한 부위의 염증 반응을 직접 조절했어요.
통증이 어느 정도 조절되지 않으면 재활 자체가 불가능하거든요.
주사치료로 먼저 통증의 문턱을 낮추고, 그다음에 재활로 연결하는 순서가 중요했어요.
재활의학과에서는 전기 자극 치료(EST)와 함께 본격적인 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손상된 말초신경이 회복되려면 신경 자극과 근육 사용을 동시에 이어가야 합니다.
손가락 세밀 운동부터 시작해서, 보행 훈련, 균형 감각 재교육까지
단계적으로 기능을 끌어올리는 과정이었어요.
ㄴ 치료 중 불가능이라는 장벽에 막혀 괴로워하지 않도록,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쓰겠습니다.
3개월 뒤, 스스로 걸어서 들어오셨어요
치료를 시작할 때 솔직히 말씀드렸어요.
말초신경 손상은 회복 속도가 빠르지 않고,
어느 정도까지 회복이 가능한지 처음부터 확신하기 어렵다고요.
그런데 환자분이 흔들리지 않으셨어요.
치료 하나하나에 성실하게 임해 주셨고,
그게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치료 시작 후 몇 주가 지나면서 발에 조금씩 힘이 들어온다고 하셨어요.
손의 저림도 덜해졌다고요.
3개월 집중 재활치료를 마칠 무렵, 환자분은 스스로 걸어서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오셨어요.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요.
처음 휠체어를 타고 오셨던 분이, 혼자 걷고 계셨으니까요.
이후엔 직장 복귀까지 하셨다니…
정말 뿌듯하고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말초신경병증 증상, 어떤 패턴이면 의심해야 할까요
말초신경병증 증상은 단순한 손발 저림과 혼동되기 쉬워요.
아래 패턴에 해당하신다면, 단순 피로나 혈액순환 문제로만 보지 않는 게 좋아요.
✔️ 손발 끝부터 시작해서 점점 위쪽으로 올라오는 저림
✔️ 발바닥이 화끈거리거나, 전기 오는 것처럼 찌릿한 감각
✔️ 발목이나 손가락에 힘이 빠지고 물건을 잡기 어려워짐
✔️ 밤에 누워 있을 때 저림이나 통증이 더 심해지는 경우
✔️ 항암치료 중 또는 치료 종료 후 위 증상이 새롭게 생긴 경우
✔️ 당뇨 진단을 받은 뒤 발끝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한 경우
이 중 두 가지 이상 해당된다면, 신경과 진료를 통해 정확한 감별이 필요해요.
여기서 한 가지 꼭 짚어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말초신경병증 증상은 처음엔 아주 애매하게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발끝이 가끔 저리거나, 양말을 신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정도라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습니다.
출처: Springer Link
그런데 말초신경은 한번 손상되면 회복 속도가 느리고,
손상이 누적될수록 회복 가능한 범위도 줄어드는 특성이 있어요.
초기에 가볍게 여기다가 수개월, 수년이 지나서야 진료를 받으러 오시는 분들을
진료실에서 정말 자주 마주합니다.
또 한 가지, 말초신경병증은 증상이 있어도 검사에서 정상으로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MRI는 말초신경 자체를 직접 보여주지 못하고,
근전도와 신경전도 검사도 경미한 손상 단계에서는
이상 소견이 안 잡히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래서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는 말을 들으셨더라도
증상이 지속되고 있다면 그냥 넘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검사 결과보다 증상의 패턴과 흐름이 더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경우가 실제로 많거든요.
신경과 진료에서는 숫자와 수치만 보는 게 아니라,
증상이 언제부터, 어떤 순서로, 어느 방향으로 퍼져갔는지를 함께 봅니다.
그 흐름 안에서 말초신경병증 여부를 판단하는 거예요.
증상이 애매하더라도, 오래됐더라도, 한 번은 제대로 확인받아 보시길 권해드려요.
말초신경병증 치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말초신경병증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원인에 따라 접근이 달라져야 한다는 거예요.
1️⃣ 항암 유발 말초신경병증(CIPN)
항암제 투여 이후 발생한 경우엔 신경 보호 및 회복을 돕는 약물치료와 재활이 핵심이에요.
항암 약물의 신경 독성이 축적된 것이기 때문에,
신경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치료를 설계해요.
2️⃣ 당뇨성 말초신경병증
혈당 조절이 병행되지 않으면 신경 손상이 계속 진행돼요.
통증 조절과 신경영양 치료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내과적 혈당 관리와 신경과 치료를 함께 연결하는 게 중요해요.
3️⃣ 원인 불명 말초신경병증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셨다면,
검사 방법과 판독 기준, 그리고 어떤 신경 영역을 확인했는지를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어요.
말초신경은 MRI나 혈액검사로 직접 확인이 어렵고,
근전도와 신경전도 검사도 경미한 손상은 놓치는 경우가 있거든요.
증상의 분포, 발생 패턴, 진행 속도를 종합적으로 보는 임상적 판단이 중요한 이유예요.
말초신경병증 병원을 찾을 때 기준이 되는 것
말초신경병증 병원을 찾으실 때 한 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신경과 단독 진료만으로 끝나는 곳인지,
아니면 필요에 따라 재활의학과, 통증의학과와 연결되어
통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인지요.
말초신경병증은 신경의 문제이지만,
그 결과로 생기는 근력 저하, 통증, 보행 장애는 재활과 통증 관리가 함께 이루어져야 해요.
어느 한 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이 환자분이 다시 걸을 수 있었던 것도
신경과에서 원인을 정확히 찾고, 통증의학과에서 통증을 먼저 조절하고,
재활의학과에서 기능을 끌어올리는 과정이 단계별로 연결됐기 때문이에요.
어느 하나라도 빠졌다면 결과가 달랐을 거예요.
말초신경병증은 분명히 오래 걸리는 싸움이에요.
빠르게 낫는 병이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도 제대로 된 방향으로,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면
분명히 달라질 수 있어요.
그게 진료실에서 직접 확인한 사실입니다.
오늘 이 글이 조금이라도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이 되셨으면 해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콕통증의학과 신경과 전문의 조성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