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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국진 Nov 09. 2020

두 사람을 위한 축하와 후회

예능PD가 반드시 알아야 할 소중한 인연

뭐가 그리 급하길래 뒤도 안 돌아보고 살아가나...

늘 트랜드를 쫓아가며 살아가는 피디들은 가장 강력한 화제성과 시청률, 그리고 광고를

담보하는 출연자들을 섭외하기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의무감보다는

휘발성 출연섭외에 열중한다. 그러지않기로 다짐하며 직장에 입사한 나도 유혹에 빠진다.

사람...캐릭터보다 그저 유명, 흥행만을 쫓는 그런 일들의 연속.

최근 예능PD로 살며 가장 행복하고 가장 슬픈일을 연이어 경험했다.


함께 일했던 동료가 행복한 결혼식으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고

또 한명은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기쁜 일과 슬픈 일, 좋은 날과 불행한 날을 동시에 겪으며 또 한번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피디생활을 하며 만나는 출연자들과 방송활동 외로 연을 이어가며 지내는 것이

비일비재한건 아닌데 어쨋든 소중한 인연이 되어버린 사이의 지인들의 좋고 나쁜 소식을 접하며

수년간 간단한 안부연락조차 하지 못했던 나를 돌아본다.


아이돌에서 신부가 된 그녀

레인보우 지숙의 이야기다. 지숙이와의 만남은 수년전 내가 연예가중계를 맡게되면서다.

개편을 맞아 새로운 역할의 리포터가 필요했고 나는 지숙이의 회사에 캐스팅 요청을 한 후

함께 일하게 되었다. 물론 수많은 정규와 특집프로그램에서 레인보우와 일을 할 기회가

많았지만 특정멤버와 함께 고정프로그램을 함께 한 것은 처음이었다.

워낙 재주가 많은 건 알았지만 당차고 부드럽고 위트까지 겸비한 그녀의 진행 능력은

프로그램에 활력소가 되었고 출연자들 사이에서도 칭찬을 많이 받는 진행자였다.

레인보우의 걸그룹 연차가 높아지면서 멤버들마다 각자 전문분야에 도전을 하는 상황이었고

지숙은 어떤 프로그램에 나가도 잘 할 정도로 능숙한 진행솜씨를 뽐냈다.

연예가중계로 매주 촬영을 나가고 생방송에 매무 참여하면서 <나혼자산다>, <차이나는 클라스>등

많은 고정출연을 하게 되면서 지숙이는 전문 방송인으로 거듭났다.

대성기획을 나와 전문방송인 엔터회사와 계약도 새로하여 지금까지도 방송을 하며 자기 역할을 해내고 있다.

연예가중계 리포터를 뽑을 당시, 소위 더 급이 높은 혹은 더 인지도가 있는 가수, 배우들을 섭외하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나는 머릿속에 지숙이를 떠올렸다.

피디로써 지금도 가지고 있는 나름의 원칙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뜬 연예인만 쓰면 스타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였다.

피디는 시청자와 엔터 중간에서 트랜드를 창출하는 고리인데 다 된(?) 연예인만 섭외해서 제작하면

뜨지못한(?) 가능성있는 사람들과 중소회사들은 어떻게 활동하나?라는 생각인것이다.

어차피 최고의 스타는 나 이외에도 모든 제작진이 찾기 마련이고 기왕 의기투합해서 만들거라면

내가 잘 만들어서 스타를 만들어보는게 피디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프로그램의 연으로 지숙이가 산 첫 차도 시승해보고 연예인 지숙이 아닌 사람 김지숙의 이야기를 많이

공유할 수 있었다. 그녀가 늘 잘 되기만을 바랬는데 청첩장을 보내왔다.

20대초반에 만나 함께 일하던 가수가 결혼이라는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시작을 내가

보며 축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그것은 사회에서 만난 여느 인연보다 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결혼 이후엔 사적인 교류가 조금 덜해지겠지만 방송제작현장에서 언제나처럼 다시 함께 일하길 바란다.

그것도 꾸준히...트랜드를 그리고 핫한 섭외만을 지향하는 그런 피디는 되지않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레인보우로 앨범이 나온다면 예전처럼 시디 7장을 사비로 사서 한명한명 싸인을 받아 소장하고 싶다.

대한민국을 웃겼던 대표 희극인 그러나 한 없이 여린 작은 소녀 박지선

프로그램을 만들다 문득 보게 된 기사...그녀의 사망소식이었다. 어릴적(?), 숨쉰채 발견이라는

최악의 기사문구를 본 후부터 이런 기사들이 올라오면 믿지않게되어 지선이의 사망소식을 도저히

처음부터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전화번호를 눌러보았지만 꺼져있는 상태를 확인한 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실이었다. 한 동안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안타까움보다 미안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너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나? 너는 누구인데...라는 원초적인 질문들이

머릿속에 나열하기 시작했다. 한 희극인의 죽음이 내 일의 목적을 다시 묻게하는 계기였다.

지선이는 8년전쯤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하며 연을 맺었다. 당시 수질검사라는 코너를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는 역할을 하였는데 섭인겹은 무서운 것이었다.

방송에 나올 때처럼 늘 하이톤으로 당장 웃겨줄것만 같았던 그녀는 마이크를 내려놓는 순간

시골 소녀처럼 순박하고 수줍음이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더욱 박지선이라는 사람의

진짜였고 나는 더욱 그녀의 재능과 모습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시절 나는 조연출이었기 때문에 프로그램 출연자를 섭외하는 역할은 아니었고 그렇게

종종 녹화때마다 얼굴을 보며 지내왔다. 그리고 연출로 소위 입봉이란 것을 하면서 나는 이른바 대박 프로그램을 만들어 성공을 꿈꾸었고 나와의 소중한 연을 이은 이들보단 가장 핫한 출연자들을 섭외하기 급급했다.

물론 프로그램마다 성격이 다르니 기획에 맞는 섭외를 하다보면 무조건 친하거나 함께 일해봤던 사람들만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정으로 머리를 맞은듯한 멍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왜 난 그 사이 그 흔한 안부 연락도 주고받지 못했나?" "생각보다 덜 친해서 일거야" 등등의 말들이 떠올랐지만

아무것도 미안함을 씻어주진 못했다.


대한민국을 웃게 해주는 젊은 희극인, 고 박지선의 과거는 계속해서 전진하려고 하는 나에게

브레이크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사람사는 것...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를 묻게 된 계기가 되었다.

우린 지금 무엇을 위해 그 무엇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가? 성공보다 갚진 것은 삶속에 발견한 인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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