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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Jul 05. 2021

#02. 생애첫 인사팀면접(Ssul) (2)

최저시급도 몰랐던 그때 그 시절

"자, 이제 앞번호부터 차례대로 들어가겠습니다."


명찰에 적힌 번호 순대로 차례차례 들어갔고 생각보다 좁은 회의실 같은 공간에 면접관은 무려 4명이나 있었다. 나는 제일 먼저 들어가 가장 안쪽에 앉았다. 와, 이게 말로만 듣던 면접이구나. 면접관분들은 빠르게 우리를 스캔하기 시작했고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될지 몰라 그냥 면접관의 눈을 한 분 한 분 쳐다보았다. (사실 아무 생각이 없다, 그 상황에서는)


"우리 회사 면접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우리 소개부터 할게요."


면접관 분 중 가장 왼쪽에 앉은 분이 면접의 포문을 열고 면접관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본인은 인사팀장, 그 옆은 영업팀장, 노무팀장, 구매팀장. 구매, 영업팀장님은 왜 참석하시지? 일단 최대한 살가운 웃음을 지으며 최대한 반갑다는 느낌을 온몸으로 표현하도록 애쓴 박수를 쳤다. (쓰면서도 무슨 박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그 뒤 우리들 소개 차례. 이건 준비했지. 1분 자기소개는 뭐 다들 기본 준비사항이지 않은가? 나는 일단 외운 것은 최대한 외운 티 내지 않으려 애쓰며 얘기했다. (외운 티 내지 않는 것이 포인트) 가끔 어떤 단어를 생각하는 듯이 살짝 얼버무리는 연기(외운 것을 읊는 것이 아니다라는 제스쳐!!)를 하며 1분간 혼신의 연기를 끝낸 뒤 다음 4명이 소개할 때까지 재빨리 예상 질문을 생각했다. (4명이 소개할 때 딴생각하지 않고 다른 지원자의 답변을 듣는다는 제스쳐(고개를 끄덕인다거나)는 필수다!)


"내 다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누구부터 해볼까.... 맨 왼쪽부터?"


맨 왼쪽은...? 난데. 아니 면접관이 볼 때는 난 오른쪽인데. 뭐지?


"000 씨? 올해 최저시급이 얼마죠?"


나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내가 받은 생애 첫 면접 질문. 그런데, 최저시급..? 엇, 뭐였지. 최저시급은 매년 노동계와 경영계 대표로 이루어진 최저시급위원회에서 다음 해 최저시급을 정하는... 아니, 이게 아니야. 그냥 올해 최저시급을 얘기하면 되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까 면접 대기할 때 질문받았던 것이 뭔지 궁금해 스마트폰으로 급하게 찾아봤던 탓이었을까? 아니다. 일단 나는 최저시급을 찾아보지 않았다. 내 질문 리스트에 아예 없던 질문. 정말 생각나지 않았고 신문에서 본 어렴풋한 7....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아, 그... 7천원...대였던 것 같습니다."


7천원대라. 면접관분들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7천원대'를 되뇌며 펜으로 뭐를 적으셨다. 다른 지원자는?이라는 말과 동시에 누군가가 "7,530원입니다."라는 답변이 들렸다. 그 순간 어디선가 맥이 탁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뭐 망했구나, 갑자기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인사담당자를 꿈꾼다면서 최저시급도 제대로 모르는 지원자라니. 나라도 안 뽑겠다. 이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면접 분위기는 점점 활기가 돌았다. 


"000 씨, 본인이 채용업무를 맡고 싶다고 했는데 본인이 생각한 채용 전략이 있나요?"

"아, 저는 이렇게 면접장이 아니라 면접 대기장소에서도 지원자의 태도를 관찰하고 평가할 수 있는 전략을..."

"그건 지금도 하고 있는데?"

"아? 네! 하하하!~~(다 함께 웃음(나 포함))"


뭐 이런 분위기. 면접관분들은 감사하게도 나에게 같은 질문을 주셨고 기억나지 않지만 주저리주저리 뭔가를 얘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이 나지 않는 이유는 최저시급 답변의 여파 때문이겠지. 아무튼 면접은 마지막 질문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없어요?'를 끝으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아 이거는 내가 할 얘기가 있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내가 언젠가 꼭 면접장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또 생각이 든 아이디어. '최저시급을 이야기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기회를 주신다면 1년여의 인사팀 실무경력으로 여러분들과 같이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순간적으로 든 아이디어였다. 그래! 마지막 멘트에 내 실수를 이렇게 녹여 이야기하면 좀 만회가 되겠구나. 손을 드려는 찰나 우리 가운데 유일한 여성 지원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정말 소중한 면접 기회를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다음 면접 기회를 주시면 꼭 합격해서 팀장님들과 함께 열심히 일해보고 싶습니다."


참, 나는 왜 이리 소심한 건지. 바로 손들고 이야기했으면 될걸 '한번 해볼까?'라는 뒤척임과 동시에 다른 지원자가 내가 준비한 멘트와 정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척척 이야기하였다.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순간이 어찌나 길던지. 또 왜 나는 면접장 가장 안쪽에 앉아서 나갈 때까지 가장 오래 걸리는 건지.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면접장을 나오자 해맑게 웃으며 반기는 질문폭탄 인솔자분. "면접은 잘 보셨어요?"


나는 웃는 둥 마는 둥 '아, 네 잘 모르겠어요.'라고 짧게 대답하며 인솔자가 잡아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로비로 내려왔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강남 테헤란로 한복판이라 그런지 활기가 넘쳤고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퇴근시간 전에 버스를 타야 된다는 생각으로 바쁘게 걸음을 재촉했다. 그날 버스에 앉아 집에 가는 길에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사팀에 정말 들어갈 수 있는 걸까?'


난 화학과라는 이공계열 전공자로 신입으로 인사담당자로 입사하는 것에 큰 제약이 있었다. 인사직무가 애초에 어떤 전공이 필요한 직무는 아니지만 상경계열 전공자로 한정하여 뽑는 회사도 많았고 내가 면접 기회를 얻은 이 회사처럼 '전공 무관'으로 뽑는 회사도 있었지만 그 수가 매우 적었다. 그래도 1년여의 실무경력이 있으니까, 그 경력을 무기 삼아 호기롭게 준비했지만 이번 면접을 보며 느꼈다. 준비 방향성이 너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실제로 나는 이 면접 뒤에 5개월 뒤 두 번째 면접을 보았고 그 회사에 합격을 했다. 그리고 내가 첫 면접 때 준비한 질문


"화학과인데 인사직무를 선택한 이유는?"

"공백 기간에는 뭘 했나요?"


같은 질문은 받지 않았고 오히려


"파견과 도급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인사직무의 가장 큰 덕목을 뭐라고 생각하나요?"


같은 직무 전문성 기반의 질문을 받았다. 사실, 서류가 통과되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원자의 이력을 신뢰한다는 것이며 그 외에 최소한의 전문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면접을 통해 확인해보고 싶다는 의도가 크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취준생 분들도 해당 업무에 대한 전문성에 포커싱을 맞춰서 준비하기를 권한다. 또한 요즘 채용 트렌드도 수시채용으로 바뀌면서 직무별로 사람을 뽑는 '직무중심 채용'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트렌드는 계속해서 확대될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나는 1년 6개월여간의 취업준비기간 동안 총 200여 개의 자기소개서를 제출했고 그중 2번의 면접을 봐서 지금 다니는 회사에 최종 합격했다. 이 글을 읽는 취준생 분들은 서류전형을 통과하기가 가장 어려운 만큼 서류가 통과되었다면 최선을 다해서 면접 준비를 하고 '직무 전문성'에 방향성을 잡고 준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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