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우 Aug 17. 2021

#05. 현장이 보이면 인사가 보인다.(2)

제조사업장 인사담당자의 숙명

현장에 들어간 지 이틀째. 오늘도 적당히 현장을 둘러보고 나오면 되겠지, 라는 생각에 가볍게 현장으로 들어갔다. 한 번 해봤다고 이렇게 익숙해질 것은 또 뭐람? 옷을 갈아입고 위생모를 쓰고 손을 씻고 혹시 모를 눈썹까지 돌돌이(?)로 잘 정리하고 에어샤워까지. 이 과정을 주변의 현장직 분들과의 이질감 없이 해냈다는 뿌듯함을 뒤로 한채 어제 인솔받았던 사무실까지 혼자서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이 적막함. 뭐, 아직 내가 익숙하지 않겠지. 원래 여기로 발령받은 사람도 아니니까. 오늘은 또 어떤 음식을 맛보는 걸까? 생각하며 한 쪽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5분쯤 지났을까, 어제 인사드렸던 관리자분이 오셨다. 그런데 옆에 분은 누구시지? 어제 보지 못했던 여자 분이 계셨다.


"어, 와있었어? 인사해 오늘 일 알려줄 분이니까 일단 시키는대로 하면 될거야."

"아 이 분이 그 신입사원이시구나? 오늘 뭐 얼마나 일시키면 되는거죠? 요즘 일이 하도 많아서"


일? 어떤 일을 이야기하는 걸까? 현장을 가보니 정말 많은 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던데 다들 설비를 다루고 기술이 좀 필요한 업무니까 뭐 따로 시킬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관리자 분과 같이 온 여성 분과의 대화에서 '4시간...', '포장...' 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정말 '일'이라는 것을 시키려고 하는 걸까?


여자 분은 조장이었다. 조장님은 나를 따라오라고 하더니 내가 어제 보지못했던 새로운 공간으로 데려가셨고 대뜸 일체형 방진복과 앞치마, 팔토시를 주더니 입고 빨리 들어가라는 시늉을 했다. 내가 갈 곳은 에어샤워가 설치되어 있는 공간이었고 그 공간 안에는 내가 받은 복장을 입은 수많은 분들이 분주하게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멈췄다!', '빨리 방송으로 알려!!' 등등 여러 소리가 겹쳐들리면서 한 눈에 봐도 정신이 없을 것 같은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오늘은 여기서 일할 거에요. 오늘 뭐 오전 내내 일하러 왔다고 들었는데 맞죠?"

"아, 네네 아마... 그...럴거에요 ^^"

"그래요 들어가면 또 안내해줄거니까 에어샤워하고 들어가요~"


나를 밀어넣는 거친 손동작. 나는 그 바쁜 공간으로 빨려들어갔다. 


그 좁은 공간에 한 눈에 봐도 4개 정도의 라인이 쉴새없이 돌고 있었고 라인마다 4~5명씩 바쁘게 무언가를 봉지에 담고 있었다. 한 켠에는 옆 설비에서 넘어오는 듯한 완제품들이 느릿느릿 움직여 바구니에 하나 둘 담겨지고 있었고 그 설비 앞에 있는 한 분이 얼추 제품이 바구니에 담겨지면 번쩍 들어 한 쪽에 쌓아놓거나 라인 앞에 설치된 길다란 판에 촤르륵 제품을 쏟고 있었다. 정신없는 가운데 대충 보니 거의 모든 분들이 여성분들이었다. 내가 들어가서 멍하니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 저기서 유일한 남자 한 분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아 오늘 일하러 오신 분이죠? 일단 잠깐 설명드릴게요."


이 공간에 관리자인 듯한 분이 설비와 이 공간의 하는 일을 간단히 설명해주었고 나는 바로 '힘쓰는 일'에 투입되었다. 옆 공간에서 넘어온 제품이 바구니에 쌓이면 차곡차곡 쌓거나 라인에 부어주는 업무였는데 이 부어주는 업무가 만만치않았다. 사람들이 계속 라인작업을 하고 있으면 그 뒤에서 바구니를 번쩍 들어 사람 넘어로 힘껏 넘겨야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계속 반복하니 어깨도 아프고 무엇보다 내가 바구니를 들 때 사람이 다칠까봐 굉장히 긴장이 되었다. 내가 이 일을 어느정도 하자 라인에 섞여 포장하는 일을 했고 화장실 가시는 분들의 빈 공간을 재빨리 메꿔 그 일을 또 맡아서 했다. 


아침을 먹을걸. 너무 아무 생각없이 현장에 온 탓일까. 순간적으로 당이 너무 떨어졌고 급기야는 제품을 잘 못넣어 불량이 발생하거나 라인이 나때문에 서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한숨을 푹 쉬는 라인의 조장님. 뭐라고 말도 못하고 이렇게 하면 안된다 하시며 계속 내 뒤치다꺼리를 해주시는 것이었다. 정말 쉴새없이 움직이는 통해 죄송하다는 틈도 없이 다시 라인이 움직이고, 나땜에 또 서버리고, 또 움직이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 지 모를만큼 엄청난 속도였다. 이 일을 어떻게 몇년을 하셨을까. 나중엔 이런 잡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아무 생각없이 손만 움직였던 것 같다.


정신없는 4시간이 끝나고 사무실에 복귀하였다. 몇시간동안 위생모를 눌러 쓴 통에 머리는 푹 눌러져있었고 얼굴에는 모자 자국, 온 몸에는 제품을 만들 때 나오는 기름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나는 그 주 내내 오전 4시간 동안 라인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했고 내가 올 때마다 팀의 선배분은 "어? 대왕00 (00은 우리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 이름)이다!" 이라며 키득키득 웃으셨다.




나는 일주일 현장에서 일하고 한주 더 일한 뒤 현장활동을 종료했다. 주52시간 근로시간 변경에 따라 많은 생산 인력을 한꺼번에 채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의 이주일은, 생산인력을 채용할 때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채용공고에 기재할 때 뿐만 아니라 실제로 면접자에게 해당 직무를 소개할 때 살아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지식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장에서만 쓰이는 '은어'를 적절히 섞어쓰니 훨씬 더 듣기에 살아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 


현장에서의 2주는 또한 현장 분들과 소통할 때 좀 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현장에서만 쓰이는 '단어'를 적절히 섞어 쓸 때, 묘하게 그들과 내가 조금이라도 연결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그런 느낌 뒤에는 항상 나를 좀 더 신뢰해서 좀 더 살아있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제조사업장에 근무하는 인사담당자는 현장활동이 필수적이며, 어느 정도는 그들과 부대끼며 생활해야 원활하고 효과적인 인사관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비단 주기적인 현장활동이 아니더라도 (너무 자주 들어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계속해서 현장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문제점을 찾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니, 사업장 인사담당자는 이러한 활동이 거의 업무의 70~80%라고 생각할 정도로 중요하다. 서류는 부수적인 것이다. 경험하지 않으면, 몸으로 느끼지 않으면 의사결정을 위해 필요한 서류의 내용도 풍부해질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04. 현장이 보이면 인사가 보인다.(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