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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Aug 22. 2021

#06. 구직자 사이에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내가 재직중인 회사는 제조업이니 만큼 생산직과 생산활동에 필요한 기술직(예를들면 공무, 품질팀 정도?)의 채용이 굉장히 자주 있는 편이지만 그에 반해 사무직 대졸 채용은 상대적으로 많이 없다. 내가 채용담당자를 갓 맡은 시기에는 그래도 어느정도는 있었으나 그 때 입사한 인력들이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어 거의 1~2년간 학사 채용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개인사정으로 한 명이 퇴사하게 되면서 오랜만에 대졸 학사 채용을 시작하게 되었다. 부서 자체가 수요는 적은데 공급이 많은 인기부서이니 만큼 지원자가 상당히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 더 꼼꼼하게 공고를 쓰고 준비를 했다. 채용공고를 내고 일주일이 지났는데 200명이 넘게 지원서가 들어왔다. 요즘 채용시장이 정말 힘들구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요즘 취업시장은 우리 회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호기심에 찾아보다가 해당 공고를 준비하는 지원자의 오픈채팅방을 찾아 들어가 보게 되었다.


사실 많은 채용담당자가 구직자 커뮤니티에 하나씩은 가입해서 동향을 살펴보고 필요하면 직접 글을 올려 채용을 독려하기도 할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명이라 공고를 올리고 기다리기 보다는 직접 커뮤니티에 공고를 올리고 개인답변이 오면 답변도 해주면서 채용을 진행하는데, 이렇게 익명의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여기 연봉이 이정도라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퇴사해서 뽑는 것 같은데 이런 곳에 이 부서로 들어가면 지옥일 듯'

'여기 구내 식당 있나요?'

'위치가 별로네...'


여러가지 이야기가 오갔다. 가끔 구직자 커뮤니티에서 내가 올린 공고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 말도안되는 연봉을 적어놓고 '여기 가지말라.'고 하는 글을 보며 어이없어했던 경험도 있는데 이 채팅방에는 그런 '뇌피셜'은 오고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류전형을 마치고 면접자가 선정된 후 채팅방은 그 순간부터 '합'이니 '불합'이니 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내가 여기보다 높은 회사도 서류는 붙었는데, 여기를 떨어지네...' 하는 말도 있었고 본인은 불합격인데 합격자 스펙을 묻는 글도 있었다. 기분이 좋아진 합격자는 본인의 스펙을 쭉 나열해서 보여주기도 하고 몇 분뒤 딱 삭제하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지원자들끼리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채팅방에서 사실이 아닌 정보가 마치 사실인양 퍼져 지원자들이 현혹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는 의도가 아니라, 몇몇 지원자들의 행태가 굉장히 아쉽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1차면접이 끝나고 2차면접 일정이 잡히니 그 채팅방에는 최초 30~40명에서 7명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2차면접은 3명. 불합격자도 그냥 나가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2차면접이 끝나고 최종 합격자를 통보해야하는 시간. 2차 면접이 끝나고 1,2차면접위원 전원이 모여 30분 동안 누구를 뽑을 지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결국 좁혀진 한 명에게 나는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아 조금 기다렸더니 2시간 뒤 전화가 왔다.


'아, 안녕하세요. 전화가 와 있었어요. 제가 못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여기 00회사 인사팀입니다. 저희 2차면접에 합격하셔서 입사 안내 해드리려는데, 혹시 본인 생각은 어떠신가요?'


합격했으니 마지막으로 본인도 우리 회사에 입사하기를 원하는 지 확인하는 절차. 보통 이런 경우는 면접을 두 번이나 봤기 때문에 합격하는 무조건 오는 사람으로 보지만, 혹시나 나중에 번복할까봐 확실히 해두기 위해 다른 면접자에게 불합격을 알리기 전에 거치는 통과의례다. 그런데,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든 한 마디.


'아... 저 혹시 연봉이랑 복지가 어떻게 되나요?'


연봉이랑 복지??? 뭐지, 초장부터 이런 걸... 물어볼 수도 있지! 이제 다니게 될 회사니까 궁금해서 물어볼 수도 있지. 설마 연봉 듣고 취소하겠어? 면접을 두번이나 봤는데. (그리고 실제로 초봉은 나쁘지 않은 편이라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었다.)


'네, 복지는 공고에 나와있는 것을 참고하면 될 것 같고, 연봉은 0000원 입니다.'

'아, 성과급... 포함한 건가요? 아니면 별..도로 나오나요?'

'별도입니다.'


대화를 하면서도 이상했다.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고 바로 이런 것을 물어본다고? 아니, 그럴수도 있지. 나같아도 궁금하겠다. 이쯤되면 '네, 저 다니고 싶습니다.' 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 저 좀만 고민해보고 전화드려도 될까요? 부모님하고 상의를 해봐야 될 것 같아요.'


부모님?? 요즘은 또 부모님하고 상의를 하고 회사를 결정하는 문화가 있는 건가. 느낌이 너무 이상했다. 해당 부서의 팀장이 임원의 반대를 무릎쓰고 뽑은 사람이라 나는 더 어이가 없었다.


'아, 네 저희가 빨리 처리를 해야되서 00시까지 연락해주세요.'


00시면 지금으로부터 10분 뒤다.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고 굳이 많은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10분 뒤, 전화가 왔다.


'아... 아쉽지만 저는 다니지 않겠습니다.'

'네? 혹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아...그게 위치도 좀 집이랑 멀고...그래서요.'

'혹시 부모님이 반대하시나요?'

'네...좀 더 다른 회사 지원해보라고 하셔서요...'

'아, 네 그럼 합격 취소로 알고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랬다. 사실, 사회초년생들이 자기가 정말 가고 싶은 회사를 가기 위해 면접을 연습한다 생각하고 끝까지 참여하는 문화가 있다고는 들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을 걸러야 하는 것이 회사의 역할일 수 있다. 자신의 능력을 좀 더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그런데 그 대화를 끝내고 팀장님에게 보고한 후 잠시 잊고있던 오픈채팅방에 뜬 하나의 글.


'최종 합격 연락왔습니다. 합격 포기합니다. 다음분 축하드려요.'


당연히 그 지원자였다. 

'다음분 축하드려요.' : 본인은 최초합격했으니 혹시 합격연락이 와도 당신들은 나의 차선책일 뿐이다.

라는 의도가 명백한 글이었다. 


사실, 당연히 합격 포기는 할 수 있다. 담당자 입장에서는 취소 연락을 받았을 때 정말 힘이 빠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들의 권리다. 본인이 더 가고싶은 다른 회사에도 합격한 것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면접에 합격한 것은 그의 능력이니까. 그런데, 다른 면접자가 뻔히 채팅방에 있는 걸 알면서도 저렇게 글을 쓰는 것이 과연 합격자의 권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요즘 정말 힘든 취업시장에서 같은 배를 탄 구직자에게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어 화가 치밀었다. 그냥 최종 합격해서 본인이 회사에 들어간다는 의사를 보내왔다면, 합격했다는 말이 오히려 불합격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다른 지원자에게는 필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합격을 포기할 상황인데 저렇게 공개적인 곳에 글을 올린다는 건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말그대로 '상도'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회사와 구직자는 갑-을 관계일 수 밖에 없다. 그 관계가 형성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보'의 차이다. 회사는 구직자의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뽑히고 싶으면, 당신들의 과거를 정리해서 제출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회사는 회사의 정보를 주지 않는다. 요즘은 많은 부분 개선이 된 것은 사실이다. 정보의 비대칭때문에 오히려 회사가 보는 손해가 늘어나고 있어 (회사와 맞지않은 사람이 1년 이내에 퇴사하면 회사에는 큰 손실이다.) 유튜브, 취업설명회를 통해 줄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주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사실 구직자 입장에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지원자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문화는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본 몇개의 공고 채팅방, 댓글을 보면 회사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마치 사실인양 퍼지는 부분도 있지만 지원자 사이에서의 경쟁의식 때문인 지 배려없이 이야기하는 글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이 채팅방 전에도 다른 익명 채팅방을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여기 회사 저 같으면 안가요. 저는 어쩌구 저쩌구...'


라는 말 때문에 다른 지원자가 발끈했고 ('굳이 지원도 안할 건데 여기와서 이러는 이유가 뭐냐') 싸우고 끝났었다. 굳이 정말 '저 같으면 여기 안가요.' 라는 글을 쓰는 이유는 뭘까? 난 능력이 되기 때문에 이 회사말고 더 좋은 회사 갈 수 있다. 라는 것을 은연중에 자랑하려는 심리일까?


나는 면접에 합격한 분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이가 있다. '댓글에 현혹되지 말라.' 정말 80% 이상은 아예 사실이 아닌 이야기고 10%는 주관적인 이야기다. ('힘들다.'라는 말은 참고는 할 수 있지만 극히 주관적이며 다른 사람에게는 힘들지 않을 수 있기 때문) 그러니, 10%의 사실을 얻기 위해 댓글을 너무 찾아보고 맹신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항상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최대한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그럼 10에 9은 끄덕끄덕한다. '이제 좀 안심이 되나요?' 하면 '그렇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회사의 사무직 퇴사는 작년에 0%였고 올해 1명이 퇴사해 채용을 진행했다.)


회사가 구직자에게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 것처럼, 구직자 사이에서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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