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의 집에서 조르주퐁피두 센터까지
빅토르위고의 집에서 나와 북쪽으로 올라가니 차들이 다니는 큰 길가가 나왔다. 보마흑쉐 가를 걷다가 문득 이 분위기와 감정을 느끼고 싶어 대학 때 만난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시간이 오전 11시 정도 되었으니 한국시간으로는 저녁이겠구나. 결혼한 친구였지만 고맙게도 전화를 받아주었다. 인스타로 여행기 잘 보고 있다며, 어떻게 혼자 이렇게 돌아다닐 생각을 한 건지 신기하다는 반응. 나도 내가 신기하다, 왜 이제야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지. 살아보니 세상사는 것, 별거 아니다는 체념? 내 일상 반경에서 1주일 간의 부재가 그렇게 크게 영향이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겸손? 어쨌든, 몇 달 전 뉴욕이던 지금의 파리던 나에게는 큰 결정임에는 틀림없다.
한국사람으로 보이는 동양인 여자가 많이 보였는데 근처에 그 유명한 '메르시' 매장이 있었다. 사실 내가 잘 모르는 브랜드이기도 하고 사줄 사람도 없어 들어갔다가 바로 나왔다. (마지막 날 다시 방문한 건 안 비밀)
구글이 안내해 준 대로 가니 좁은 골목에 큰 장벽이 세워져 있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들어가고 있었다. 이 좁은 골목에 많은 사람들이 보이면 으레 뭔가가 있다는 것이지 않나, 발걸음을 옮겨보니 피카소 박물관이었다. 피카소는 스페인 사람이지 않나? 파리의 가장 부유한 지역 한복판에 있는 피카소 박물관은 알아보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도 있었고 여행의 필수코스였다. 사실 파리의 피카소 박물관은 추천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스페인과 달리 파리는 우리가 아는 피카소의 화풍인 사물을 뜯고 분절시켜 아예 다른 느낌으로 그리는 입체파 그림이 더 많다고는 했다. 스페인의 그곳은 오히려 피카소의 발달 과정 전체를 아우르는 박물관이라고 한다. 뮤지엄 패스로도 갈 수 있었지만 오늘의 메인 코스인 루브르박물관 도착 시간 때문에 그냥 지나쳤다.
파리 역사국립 문서관을 지나니 갑자기 출출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보이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과 어떤 가게. Maurice라는 카페인데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가 무언가를 주문하고 있었다. 약간 와플 같은 빵을 주문하고 있었는데 모를 땐 메뉴판의 가장 위에 있는 것을 달라고 하면 되겠지? 싶어 무작정 들어가 가장 위에 것을 주문했다. 와플 같은 모양인데 바삭하지 않고 약간 눅눅한 식감이었다. 좁은 인도에 옹기종기 모여 서서 먹기도 하고 앉아서 먹거나 건물 벽에 걸터먹기도 했다. 나도 질 수 없어서 엣지 있는 각도로 벽에 기대어 맛을 보았다. 오, 나도 이제 좀 여행에 여유가 있어졌는데?
먹고 좀 더 걸으니 보이는 조르주퐁피두센터. 한눈에 걷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물이었다. 철골을 그대로 노출시킨 건지 사방이 철골로 뒤덮였고 굴뚝과 왜 이렇게 칠했는지 모르는 색깔로 덮인 배관까지. 난 남들과 달라!라고 외치고 있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건물을 만들 때 세상에 없던 건물을 만드려고 했단다. 보통 안에 설치하는 배선이나 배관을 밖으로 뺐고 기능별로 나눠 색깔을 칠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관광객 입장에서는 왜 색깔을 저렇게 배열했을까 궁금할 법했다. 이런 독특한 외관 때문에 개관 당시에는 파리 시민들의 미움을 받았다고 하니, 첫인상이 전체를 좌우한다는 첫인상 효과는 효과가 아닌 오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첫 매력을 보여주려 힘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보여준 나다운 매력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지 않을까. 혹 그 사람이나 조직이 맘에 들지 않는 첫인상이라 하더라도 '이게 나야!' 하며 지속하다 보면 그게 매력이 될 수 있다. 쟤는 원래 그래. 그러면서 조직에 융화되는 삶.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