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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Dec 29. 2021

#13. 내 생애 첫 면담은 해고면담이었다.

채용 업무를 맡고 얼마되지 않았던 신입사원 시절, 타 부서 팀장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최근에 입사한 신입사원 한 명이 있는데 아무래도 계속 일하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수습고과에서 합격을 줄 생각이 없으니 인사팀에서 면담을 통해 해당 사실을 통보해달라는 것까지,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일단 알겠다고는 했으나 이 면담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 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과장님께 말씀드렸더니 내가 잘 면담해서 해결해보라고 하셨다. 이것도 언젠가는 겪어야 될 업무 중 하나라면서. 입사하고 처음으로 하는 직원과의 면담이 해고면담이라니.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해당 직원과 면담 일정을 잡고, 수습사원 평가표 받아 들여다보았다. 내가 채용담당자로 있을 때 들어온 분인데 이렇게 내가 종료를 통보해야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잘 하실 것 같았는데, 현실은 아니었다보다. 


약속시간이 임박하고 나는 비어있는 회의실을 찾아보았다. 그날따라 회의실은 예약이 꽉 차있었다. 어떻게하지...? 고민이던 순간, 면담할 직원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눈이 마주쳤고 나는 애써 가볍게 목례한 뒤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성큼성큼. 나보다 훨씬 키가 컸던 그 분은 나를 밀어 넘어뜨릴듯이 따라왔다. 비어있는 회의실은 없었다. 그때 한 쪽에 불꺼진 공간이 보였다. 여직원 휴게실이었다. 점심시간에 주로 이용하고 평소에는 거의 비어있는 공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 곳 한쪽에 있는 작은 티테이블로 안내했다.


"여기 앉으세요."


키가 커서인지 티테이블 주변에 놓여진 의자가 매우 작아보였다. 그분은 살짝 의심하는 표정을 지으며 아무말 없이 앉았다. 나도 맞은편 의자에 앉고 잠시 가지고 온 평가표를 뒤집어놓고 펜을 꺼냈다. 그 30초도 안되는 순간 우리 둘은 아무말이 없었다. 현장에서 한창 일하고 있다가 온 그분은 내가 왜 여기왔는 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입사하신 지 이제 3개월이 다 되가는데 일은 좀 어떠세요?"


일은 좀 어떠세요? 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눈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괜찮아요."


원래 말이 좀 없는 분인 것 같았다. 


"처음하는 일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이제 조금 적응은 된 것 같은데요?" 


하하. 나는 한번 웃어보였다. 대화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만들어보고자 웃어보였고 그분도 따라서 살짝 미소지으며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고갯짓으로 응답했다. (응답이었을까?) 대화를 조금 더 이어가보고자 미리 조사한 그분의 멘토, 배치된 공정의 동료들 이름을 불러가며 흥미를 돋궈보자 했지만 살짝 호응하고 금새 원래의 텐션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더이상 지체하면 서로 피곤할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본론을 꺼내려 테이블 위에 놓고 뒤로 뒤집었던 평가표를 집어 내용이 잘 보이도록 다시 뒤집었다.  


"000님 이제 곧 수습기간이 종료돼요. 그리고 평가표를 미리 전달받아서 그 결과를 알려드리려 일하는 중간에 모셨습니다."


평가표는 여러 항목에 'B'와 'C'가 체크되어 있었고 가장 마지막 최종점수는 'C'에 체크되어 있었다. 'B'이상이어야 합격이다. 


"불합격인가요...?"


그는 처음으로 살짝 몸을 띄어 적극적으로 고개를 앞으로 기울여보였다. 말이 뿌려지지 않으면 착 가라앉는 이 공간의 공기가 너무 무거워서 나는 이 평가표에 대한 설명을 주저리주저리 내뱉었다. 그리고 이제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할 차례.


"그래서...... 'B' 이상을 맞지 못했기 때문에 불합격 처리되었어요."

"불합격이면 뭔가요. 저 잘리는 건가요?"

"계약서에 기재된 수습종료일까지 근무하고 계약이 종료됩니다."

"이..해할 수 없어요.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내가 토를 달았다가는 살짝 언성이 높아질 것 같았다. 나는 아무말 없이 그분을 쳐다보았다.


"3개월이 긴 시간이 아닌데, 더 기회를 줘야 판단할 수 있을텐데 이렇게 종료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누가 평가하는 건가요?"

"해당 부서에서 평가합니다."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제대로 알려줬으면 더 잘했을거에요. 기회를 더 주시면 안될까요? 너무 아쉬워요."


나는 이미 결과가 나온 이상 번복은 없다고, 이제는 조금 강한 어투로 받아쳤다. 이제는 그래야만 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말랑말랑한 대화가 목적은 아니었으니까. 날카롭게 알려드려야만, 그래서 본인이 이 사실을 빠르게 이해해야만 한다. 그분은 계속 억울하다며, 이제는 주변 동료들의 이야기를 하며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사람들을 탓하기 시작했다. '이미 기회를 많이 드린 것으로 알고 있어요.' 내가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전달받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어느 부서도, 부서가 필요해서 뽑은 인력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지 않는 곳은 없다. 그 신뢰가 없다면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면담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야기했고 나는 계속해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실랑이가 이어지자, 그분도 이제는 어찌할 수 없다고 느꼈는지 이제 자기는 어떻게 해야되냐고 물었다. 나는 퇴직에 대한 절차를 설명하고 부서에 준비된 사직서에 서명한 뒤 물품을 반납하면 된다고 했다. 계약종료일은 면담일의 다음날이었다. 


"......네......"


그분은 이 대답 뒤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일어나자고 했고 그도 따라서 일어났다. 전화를 걸어 면담이 끝났으니 사직원 작성하면 된다고 부서에 연락했고 나는 그 부서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면담을 끝내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사무실에는 다른 일이 있는지 팀장님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팀장님께 짧게 보고드리고 바로 면담일지를 작성한 뒤 인쇄해서 서랍에 넣어두었다. 그분은 별안간 요청받은 면담의 다음날 바로 짐을 싸서 해고된 꼴이다. 사실 계약종료 통보를 미리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종료일에 거의 임박해서 면담일정을 잡았다. 보통 이렇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 면담이 더 힘들었다. 다음날 종료될 사람과, 그 사실을 통보하는 면담이라니. 나는 혹시몰라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만 있었고 밖에 돌아다니지 않았다. 괜히 무서웠다.


내 생애 최초의 면담이 해고면담이라니.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면서 면담일지에 저장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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