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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Dec 30. 2021

#14. 전화를 받았는데 별안간 쌍욕을 듣게된다면?

채용 실패의 대가를 톡톡히 치뤘던 그 날

"야, 잘들려? 잘들리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은 전화기에서 별안간 반말이 내 귀를 날카롭게 찔렀다. '누구시죠?'라는 말과 동시에 상대방은 작정했다는 듯 쌍욕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누구시죠? 라는 물음에 본인이 누구라고 밝히기는 해서 대충 어떤 상황인지 감은 왔다. 얼마전 생산직 정규직 사원을 뽑아야되서 근무하고 있는 생산직 아르바이트 분들 중 적격자를 대상으로 면접을 진행했었다. 지금 전화한 그 분은 그 면접에서 합격해서 입문교육까지 마친뒤 돌연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린 사람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루 이틀한 사람도 아니었다. 내 기억으론 3~4개월은 꾸준히 하신 분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면접을 진행했던 것이었는데, 정규직으로 현장에 배치되던 첫날 갑자기 잠적해버릴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었다. 그리고 잠적 한달 뒤 이렇게 전화를 해서 나에게 정말 친한 친구에게나 할 법한 쌍욕을 퍼붓는 것이었다.


"야, 너 우리 엄마한테 뭐라 그랬어? 니가 뭔데 전화해가지고 시X 지껄이냐고."

"그럼 000님은 왜 무단 결근하고 연락도 없이 안나오셨어요?"

"아니 시X 그건 니 알바 아니고 왜 가만히 있는 노인네를 건드는데!!"


자꾸 본인의 어머니를 건드렸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나는 그 분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사직의사가 있다면 빨리 사직서를 작성하든 해서 퇴직처리를 해야하는데 연락이 되지 않으니 입사할 때 받아놓은 비상연락처를 확인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전화를 받았었다.


"아 000님 어머니되시죠? 아니, 아드님이 갑자기 무단결근을 하셨는데 연락이 전혀 안되서요. 아무 연락 없이 3일이 지나면 해고처리 될 수 있으니까 빨리 연락달라고 해주세요."

"아이고 죄송해요. 지금 내가 따로 살고 있는데 한번 연락달라고 할게요."


그리고 아무 연락이 없자 나는 결국 해고통보를 위한 내용증명 발송을 위해 인사카드에 본인이 직접 적은 집주소를 검색해보았다. 검색해보니 고시원이었다. 이 불안한 느낌은 뭐지. 아니나다를까, 그 분이 살고 있는 고시원을 검색해서 그 주인과 통화했더니 2달 전부터 월세도 내지 않고 집도 들어오지 않아 짐을 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내용증명을 보내도 받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아까 전화했던 인사팀 000인데요~ 아드님 집주소가 불명확해서 저희가 해고통보를 위한 내용증명을 보내야하는데 일단 아드님이 적은 주소랑 어머니랑 두 곳에 동시에 보낼게요. 혹시 받게되면 꼭 전달해주세요."

"네 알겠어요. 아유 죄송해서 어쩌나 이 놈이 내 전화도 잘 안받아서......"


아마 어머니를 자꾸 들먹이는 이유가 어머니에게 한 소리 들어서 그런 것이겠지. 잔소리 들었으니 빡이 쳤겠을 것이다. 마마보이 새끼. 속으로 열불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아, 이 내용증명 발송 이 후에 마지막으로 나는 그 분이 생산직 아르바이트로 입사했을 당시 알선해준 인력파견업체 담당자에게 전화했었다. 그 분 이름을 얘기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혹시 좀 이상하지 않았어요?" 라고 되묻는 것이었다.


"아니, 저한테도 전화가 왔었거든요. 건강보험 감면 대상자인데 왜 그걸 숨겼냐고. 떼먹은 거 아니냐고. 엄청 흥분해서 말하시길래 일단 공단가서 신청하면 차액분 드리겠다고 하고 끊었거든요."


담당자는 전화온 날이 얼마 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무단결근하는 와중에 전화를 걸었다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일부러 작정하고 회사를 나오지 않았구나, 아 내가 정말 사람을 잘못 뽑았구나, 후회해보았자 이미 늦었다. 이미 나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그 분은 계속해서 반말과 욕을 섞어가며 말도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몇살이냐고, 나이도 어린게라면서 내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슨 친구처럼 들먹이며 얘기하는데 순간 욱했다. 사무실이었고 나도 같이 욕을 할 수도 없었고 언성을 높일 자신은 없었지만 너무 화가 났다. 흥분하면 순간적으로 세상에 나와 상대방 둘만 남게 되는 느낌이 있다. 바로 그런 느낌이 확 들었다.


"그럼 너가 연락을 받았으면 되잖아?"

"뭐?"


나도 말을 짧게하니 상대가 살짝 당황하는 느낌이었다. 말도 안되는 억지에는 침묵이 답이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왜 연락을 안받고 잠수를 타냐고. 여기가 무슨 구멍가게야? 그리고 왜 쌍욕하고 반말하는데?"

"오~ 그래? 어디한번 계속 얘기해봐."

"너 아르바이트 성실하게 해서 뽑은건데 이렇게 뒤통수치면 너 뽑은 사람은 뭐가되는건데? 너 때문에 한두명 피해본 게 아닌데 니네 엄마한테 전화한게 그렇게 자존심상하면 잘나오던가, 그런것도 아니면서 전화해서 욕질이야? 니가 뭐......."

"너는 니 세치혀때문에 망할줄 알아라."


저 마지막 말을 남기고 갑자기 끊어버렸다. 전화기를 놓고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봤다. 도대체 내가 무슨 대화를 하고있었던 거지? 옆에 있는 대리님이 무슨일이냐며 다가왔다. 무단결근 한 그분이고 갑자기 쌍욕을 하면서 몰아붙였다고. 손이 떨려서 아무 일도 손에 안잡힌다고 했다. 듣고 있었던 건지 아닌지 뒤에 있는 과장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야, 그렇게 전화로 욕하는 사람들 실제로 만나면 아무짓도 못해. 원래 비겁한 사람들이야. 빨리 잊어." 라며 툭 무심히 내 의자를 한번 치고는 담배피러 나가셨다.


이 일이 있고 난뒤에 실제로도 아무 일이 없었다. 나는 혹시 몰라 내 핸드폰에 그 분의 연락처를 등록해놓고 차단 버튼을 눌렀다. 혹시 개인 번호로 전화할 수도 있으니까. 지금이야 다 잊혀졌고 워낙 별일이 다 일어나는 업무라 크게 개의치 않지만 그때 당시에는 참 큰일이라 한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이 일을 얘기하곤 한다.


그런데 전화받고 들었던 "야, 잘들리냐?"라는 첫마디가 무슨 의미였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아마 본인이 녹음기능을 켜놓고 잘들리는 지 확인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시비걸기 전에 워밍업 단계(?) 였을 수도 있겠지. 아무튼 그 이후로 내가 직접 쌍욕을 들은 적은 없다. (나 때문에 과장님이 대신 욕을 들었던 적은 있었다. 죄송해요......)


세상엔 참 별일이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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