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우 Jul 27. 2022

#20. 내 생애 첫 채용설명회를 진행하다.

우리 회사는 본래 한번도 채용설명회를 진행한 적이 없다. 최소한 내가 아는 선에서는 진행한 적이 없고 채용박람회는 몇번 신청하여 참석했던 적은 있다. 이렇듯 채용에 대한 대외 홍보활동이 전무하던 회사가 팀장님이 바뀌고 채용전략의 방향성을 "학교 연계 채용을 통한 안정적 인력수급의 기틀 마련"으로 잡고부터는 채용활동에 대한 여러 변화가 생겨났는데, 그 중 하나가 "채용설명회"이다. 


팀장님이 주문한 채용의 방향성 안에 채용설명회가 들어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학교와 연계한 채용은 학교 취업담당 교수님과의 커뮤니티 형성이 너무나 중요했고 그 형성과정에서 서로 윈윈하는 전략이 회사 인사담당자가 방문하여 진행하는 채용설명회였다. 설명회를 통해 교수님과 컨택하고, 방문하여 교수님을 뵙고 인사나누면서 회사의 어려운 점과 학교의 어려운 점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다.


처음 채용설명회 신청을 받는다는 메일을 전국 100여개 대학에 송부했을 때는 7월이었다. 역시 이런 채용전략은 처음이라 메일 송부 시점부터 삐걱거린 것이, 7월은 학교가 방학을 시작하는 달이었던 것이다. 몇몇 학교에서는 긍정적이었지만 방학때문에 당장은 안된다는 답변이 많았는데 한 대학에서 직접 연락을 취해 날짜까지 지정해주며 가능한 지 문의를 주셨다. 오, 당연히 가능했다. 안된다는 답변만 받다가 친히 이 날짜에 가능하냐는 질문을 주시다니, 나는 당장 오케이를 했고 그날부터 그 학교에 방문하여 설명회를 진행하는 상상을 하며 자료를 만들고 미리 발표 연습도 해보았다.


드디어 당일, 학교는 전라도에 있었기 때문에 KTX를 타고 이동했다. 오랜만에 타보는 KTX는 내 긴장 탓인지 쓰고 있는 마스크 탓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입은 정장 탓인지 살짝 답답하게 느껴졌다. 노트북으로 간단히 필요한 업무를 하고 바로 채용설명회 ppt를 띄워놓은 뒤 중얼중얼 연습을 했다. 어제 팀장님 앞에서 간단히 브리핑할 때만 해도 '별거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 왠걸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살짝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만한 유머러스한 멘트도 개인적으로 준비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유치한 멘트 같기도 했다. '여러분! 여러분들께 살아있는 정보를 주기 위해...(살짝 머뭇거린다.)팀장님말고 저 혼자왔어요!' (별론..가?)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갈 때 정장에서 반팔, 반바지로 갈아입을 심산이었기 때문에 짐이 꽤 있었다. 역에 도착하고 바로 물품보관함에 그 짐들을 넣고 역에서 나와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택시 중에 가장 앞에 있는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님, 00대 가주세요."


긴장해서 그런지 제발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한테 왜왔는지, 여기는 처음 오는지 같은 질문은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이 아무 말씀 없이 대학에 도착했다. 나는 소강당이라는 곳을 네이버 지도에서 검색한 뒤 건물이름을 이야기하며 그 곳에 내려달라고 했다. "삐빅-" 내 첫 법인카드 결제되는 소리. '어? 얘 도착했나 보네?' 결제 알림을 받은 법인카드 주인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 했다. 학교는 역시 방학이라 그랬는지 조용했다. 소강당 단어를 찾아봤는데 어라? 보이지 않았다. 세미나실 같은 곳만 있었고 보이지 않아 네이버 지도를 켜보니 소강당은 이 건물이라고 되어있었다. 나와 계속 연락하던 취업지원센터 담당자에게 전화해보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니? 왜 전화를 안받지? 더운 날씨에 비가 왔던 탓인지 습도는 높았고 나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20분. 마침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물어보니 여기가 아니고 바로 밑에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아! 감사합니다~" 연신 인사를 하며 부리나케 그 건물로 발걸음을 옮기며 담당자에게 전화해봤지만 또 부재중. 아, 이럴줄 알았으면 핸드폰 번호좀 알려달라고 할걸. 그런데 알려준 건물에서도 소강당은 찾을 수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많으면 물어보겠는데 학교 안은 정말 한산했다. 저기 멀리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학생이 보여 물어봤다.


"저기 혹시 소강당이 어딘지 아세요?"

"어...나...베트..베트남."


아, 베트남 학생이었다. 절망. 다시한번 담당자에게 전화했지만 또 부재중. 어떡하지. 그때! 울리는 전화. 그 담당자였다. 


"아, 여보세요! 아니 저 계속 헤매고 있어요."


무심결에 나온 짜증. 왜 전화를 안받았냐는 조그마한 항의였는데 그 분은 개의치 않고 어떻게 오라고 하면서 주차하시면 된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아, 어차피 차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한 거구나...


드디어 도착한 취업지원센터에는 담당자 한분만 계셨다. 다른 회사의 채용설명회 진행때문에 모두 그 곳에 가 있는 것이었다.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회사의 이름을 보니 긴장이 되었다. 왠지, 이 회사 끝나고 모두 우루루 나갈것만 같은 그런 기분. 우리의 몇배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아마 초봉도 우리의 1.5배 정도되는 그런 회사였다. 노트북을 두고 잠깐 어떤 곳인지 궁금해 소강당으로 가보았다. 살짝 문을 열어보았는데, 헉! 정말 강당 전체가 학생들로 만석이었다. 250석 정도 된다는데 잠깐 보기에도 꽉 차있어서, 잘만하면 이 많은 학생들 앞에서 정식으로 회사 소개를 할 수 있겠구나, 멀리서 온 보람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긴장은 되었지만 그래도 멀리서 왔는데 성과는 있어야지.


다시 취업지원센터 사무실로 가려는데 울리는 전화기. "어디신가요? 지금 소강당으로 출발하시면 됩니다~"

아, 아까부터 정말 전화 타이밍이 안맞네. 죄송하지만 이미 소강당이라서 노트북을 들고 와달라고 요청드렸다. 담당자분은 행사 진행 중인데 들어가야될까, 말아야될까 살짝 고민하다가 결심한듯 앞쪽 문을 열고 들어갔고 나는 따라 들어갔다. 실제로 정말 많은 학생들이 와있었고 준비해주신 자리에 앉아 앞을 보니, 'MOU 체결 행사'. 그랬다. 우리와는 비교도 안되는 행사였던 것이다. 무려 학교와 기업간의 정기적인 인력교류를 맺는 행사에 내가 턱하니 숟가락을 얹은 것이다. 채용설명회를 하는 연사님은 알고보니 그 회사의 대표이사였다. 기가 살짝 죽었다. 이거, 이 행사 끝나고 학생들 우루루 나가겠네. 한숨을 쉬며 음료수 한모금 마시고 바닥에 내려놓는데 순간 병을 놓치고 말았다. 병은 데굴데굴 강단 쪽으로 굴러갔다. 조용히 경청하고 있는 학생들이 일제히 그 병을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하, 정말... 나는 부리나케 엉거주춤 일어나 확 병을 잡고 재빠르게 앉았다. 왠지 모두 나를 비웃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찾아온 자격지심때문에 갑자기 폭풍같은 긴장감이 몰아쳤다.


"질문 받겠습니다."


마지막 순서였다. 글로벌 생산기지로 전출이 가능한지 등등 학생들의 질문이 이어졌고 시간관계상 이라는 말과 함께 행사는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와 동시에 나는 담당자의 안내에 따라 강단을 향해 일어났고 학생들은 내 뒤로 우루루, 출구를 향해 쏟아져 나갔다. 흑흑... 하지만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취업센터장님이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학생들에게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아서 이해해달라."는 말로 양해를 구하셨다. 나는 당연히 웃으며 "아이 괜찮습니다.~^^"라는 대인배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시간은 12시였고 점심시간인데다가 사람은 20명 남짓밖에 없었다. 10시 30분 부터 있었던 학생들이라 다들 퀭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고 그 분위기에 눌려 정말 속사포같은 속도로 거의 30분 만에 화끈하게 마무리지었다. 3시간 걸려서 30분 채용설명회를 하다니. (준비한 내 유머러스한 멘트에는 누구도 웃지 않았다.) 그래도 내 30분 채용설명회를 위해 현수막까지 설치해주셔서 감사했다.


끝나고 다시 취업지원센터 사무실로 가니 센터장님께서는 점심을 함께 하자고 하시며, 벌써 끝났냐고, 더 길게 하셔도 되는데.. 라는 혼잣말을 연신 하셨다. 나도 길게하고 싶었다구요. 하지만 분위기가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의 엄청난 공감능력은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빨리 점심을 먹게 할지가 그 순간의 가장 큰 고민으로 다가왔습니다..


점심은 취업지원센터에 일하는 분들과 졸업사진을 찍는 사진사, 그리고 나 이렇게 7명이 먹었다. 나는 이런 자리에는 지독히도 말이 없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도 모르겠고, 불편해하는 주변 분들을 보는 것이 너무 곤욕이다. 어찌됬든 꾸역꾸역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자는 말에 기차시간이 다되서 안되겠다는 대답으로 무사히 정당하게 커피까지는 피할 수 있었다. 센터장님은 정말 친절하게도 커피 한잔도 사주시면서 일부러 그 지역의 명소를 볼 수 있도록 살짝 돌아간 뒤 역에서 내려주셨다. 와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끝으로 시원섭섭한 내 생애 첫 채용설명회가 끝이 났다.


"팀장님, 채용설명회 잘 마치고 기차타고 바로 퇴근하겠습니다."

"고생했어요~ 어땠어요?"

"우려하신대로 전 회사 설명회 끝나고 우루루 나가더라구요. 그래서 한 20명 학생들과 설명회 진행했습니다."

"응, 그래서 혼자 보낸거야^^ 이런 경험도 해봐야지. 그치?"

"아, 네..."

"거긴 옆에 산업단지도 있고 초봉이 높은 업종이 많아서 우리 회사가 유치하기 쉽지 않아요. 그래도 고생했어요. 내일봐요~"


아, 네. 그런데 정말 좋은 경험이긴 했습니다. 회사 대표로 회사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팀장님은 다 알고 계셨군요. 이렇게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앞으로 여러 채용설명회가 남아있고 9월에는 본격적으로 지방에 여러 학교에 설명회를 진행하면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려 한다. 나의 단점은 너무 그 분위기에 휩쓸린다는 것인데, 다음 설명회에서는 절대 휩쓸리지 않고 내가 준비한 것을 뚝심있게 할 것이라는 다짐을 하며. 이만 끝.

작가의 이전글 #19. 한 일자리관련 기관과의 아름다운(?) 이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