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예정일에 입사하지 못하는 몇가지 이유들
입사하고 6개월만에 갑자기 맡게 된 비정규직 인력운영. 비정규직 인력운영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때에 맞춰 인원을 충분히 공급해주는 것이다. 우리 회사에서 비정규직은 생산직무 외에는 운영하지 않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생산량과 갑작스런 비상상황 (코로나19 확진자의 급증이라던가 예상치 못한 날씨변화(우리 회사는 날씨가 주문량에 큰 영향을 차지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이다.) 등)이 닥쳤을 때 결품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생산현장에서 원하는 인원을 제때 수급하는 것이 가장 큰 '역량'이라 하겠다.
그런 과정에서 '노쇼(No show)'는 인원을 수급해 준 채용대행 업체나, 인원이 입사할 것이라고 통보하는 나나, 그걸 믿고 준비하는 현장에서나 큰 상실감을 안겨준다. 온다고 해놓고 오지 않는 이런 행태들은 비단 서비스업 뿐만 아니라 제조업에서도 큰 문제거리인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노쇼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원 수급 프로세스를 지원자가 전혀 신뢰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내가 거래하는 채용대행업체는 당장 인원 수급이 급하니 전화로 면접을 진행하고 바로 다음날이나 다다음날부터 출근하도록 안내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아마 대부분 생산직 인력을 공급하는 업체가 사용하고 있는 방식일텐데 이럴경우 지원자 입장에서도 느슨한 채용 전형때문에 '내일부터 출근하겠습니다!' 라고 전화로 호기롭게 외쳐도 안나오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생긴다는 것이다. 대면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안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정성을 쏟았는데도 발생하는 노쇼다. 면접은 보통 올라온 공고를 지원자가 직접 확인한 후 연락을 취해 약속시가을 잡아 진행한다. 업무를 맡고 1년까지는, 왜 본인이 원해서 면접을 진행했고 이 날짜게 출근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 오케이까지 했는데도 입사예정일에 나타나지 않을까?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속도 많이 상했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 더 정성을 쏟은 지원자는 노쇼보다는 입사취소가 좀 더 많은 것은 다행이다. 노쇼는 연락조차 없이 그냥 나오지 않는 것인데, 입사취소는 뒤늦게라도 연락을 취해 이러이러한 사정때문에 못갈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에게 적용하는 단어다. 그래도 4년이나 되었다고 여러 경험치가 쌓여서 그런지 어느정도 그 사유가 패턴화(?)되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사유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다른 회사에 취업한 경우
: 사실 이 경우는 오히려 타회사 정보도 알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업체명을 알려주는 경우는 많이 없지만 여기보다 이런 점이 낫다고 은연중에 이야기해주기 때문에 채용활동 또는 처우 산정을 위한 채용 트렌드 파악 시 도움이 된다.
2. 갑작스러운 사고
: 나는 살면서 이렇게 사람들에게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지 몰랐다. 집안에서 물건을 옮기다가 허리를 삐끗했다거나, 접촉사고가 났다거나, 갑자기 걸린 감기몸살로 당일 출근이 어렵다고 통보해오는 분들에게 2~3일의 시간을 드려 다음에 출근하라고 하면 10명 중 8명은 그 날짜에도 나오지 않는다.
3. 갑작스러운 상(喪) 또는 가족의 건강악화
: 입사예정일에 출근하지 않아 확인해보면 (또는 먼저 연락이 와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상을 당하시어 장례식장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친척, 할머니, 할아버지 등 다양하다. 한창 노쇼가 많을 때 3번 연속으로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출근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전달한 채용대행업체 담당자나 들은 나나 너털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가족이 갑자기 아파 돌봐야 된다며 안나온 경우도 많은데 여성분들이 남편이나 자녀를 돌보기 위해 나오지 않은 경우가 많다.
4. 조금 더 고민해본다고 하는 경우
: 사실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분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생산직 계약직(아르바이트)은 보통 입사 문턱이 낮고, 낮은 이유가 분명히 있다. 교대 근무에 고된 노동인 경우가 많아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면접 진행 시 큰 결격사유가 없다면 바로 출근하도록 안내하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 좀 더 구직활동하거나 알아보고싶다.' 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인사담당자 10명 중 10명 모두 이해할 것이다. 담당자도 해당 직무가 근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당장 생각나지는 않지만 여러 사유가 있지만 대표적인 세가지만 정리해보았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알겠다고는 하지만 속으로는 100% 믿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사실 1~2달 근무하다 발생하는 경우는 이해하지만, 꼭 "입사당일"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어디까지 믿어야 될지 확신이 없다. 나는 이런 지원자를 최대한 필터링하기 위해 면접에서 항상 질문해본다.
"전 회사에서 왜 퇴사하셨나요?"
퇴사사유를 간결하고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정말 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서 지원한 분들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어물쩡 넘어가거나 너무 장황하게 설명하거나 하면, 입사를 해서도 갑자기 나오지 않는다거나 말도안되는 긴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왜 내가 이 회사를 못다닐 것 같은지 전화로 듣게될 확률이 매우높다.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는 몇 가지 없다. 계약이 만료되었다거나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거나 등이다.
사실 이 모든게 100% 맞을 수는 없겠지만 경험상 최소한의 필터링을 위해 항상 물어보며 지원자의 말하는 방식이나 표정을 본다. 요즘 노쇼때문에 예악제를 운영하는 여러 음식점, 서비스업 사장님의 시름이 깊다는데 내가 사장은 아니지만 담당하는 입장에서 그 힘듦이 너무나 공감된다. 어디가서 하소연하기도 애매한 이런 "사람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일이나 업무는 누구의 책임소재를 가리기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다. 정말 부탁하건데, 나도 최선을 다해 면접에 임할테니 합격하신 분들도 최선을 다해 입사예정일 출근을 위해 노력해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