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량을 늘려야한다. 그 팀의 00님은 정말 술이 세다. 내가 그 분하고 먹어봤는데 정말 다음날에 화장실가니 술이 나오더라......
술에 대한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왔던 몇주 뒤 내가 갈 곳. 벌써부터 그곳에 대한 내 이미지는 '술', 이 한 단어에 꽂여있었다. 그 곳에서 오랜시간 팀장을 했던, 지금은 한 도급사의 대표를 하고있는 분께서 가기전에 식사하자며 나와 같은 팀원 여럿을 초대했다. 그 분도 술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약간의 각오는 하고 갔다.
확실히 속도가 다른게,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한번 마신 후 연거푸 5~6잔을 소주로 들이붓다시피 마셨다. 그 대표님은 그 사업장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특히 '술'이야기를 하셨다. 나에게 주량을 물었다. "반병정도 됩니다." "아, 00님은 얼른 주량을 늘려야해...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살아남는다, 술 못먹으면 죽는건가. 그냥 해고당하는건가. 당연히 이런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걱정이 많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몸담았던 분께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더 긴장되었다.
1차가 끝난 후 질펀하게 술이 취한 서로를 끌어안고 2차를 가는 분위기였는데, 다들 대표님을 피하는(?) 분위기였다. 나의 손을 잡으며 내가 아는 곳으로 가자는 대표님과 뜯어말리는 주변분들. 알고봤더니 항상 본인이 가는 2차는 '춤'과 같이 술을 마시는 그런 곳이었고 (물론, 음란한 곳은 전혀 아니다. 살짝 7080의 느낌이라는 것) 막상 같이가면 대표님은 꾸벅꾸벅 존다는 패턴이 있었다. 나는 이미 따로 마시자는 약속이 있어서 얼렁뚱땅 손을 놓고 부리나케 2차로 달려갔다.
다음날, 그 대표님께서 문자로 연락이 왔다. '술에 대한 이야기는 농이었고, 전혀 강요하는 분위기 없으니 안심하라.'는 취지의 이야기였다. 아, 정말 그런가보다, 라고 나는 생각했는데 그것을 본 우리팀 과장님께서 이야기하시길 '괜히 너가 발령받아 그 쪽에 가서 이상한 이야기할까봐 그런거야.' 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농담이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인 것이었다. 물론, 내가 걱정할까봐 농담이라고 이야기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괜히 안좋은 이야기를 본인이 했다고 이야기할까봐 불안했던 마음도 깔려있을 것이란 사실을 나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 내가 좀 한심했다. 나는 아직도 순진하구나, 라는 것.
사회생활을 하고, 신입사원으로 '채용'을 처음 맡으면서 사람에 대한 여러 기대를 내려놓았던 것은 사실이다. 뽑은 생산직 아르바이트의 30%는 당일에 출근을 안한다. 출근을 해서 하루를 일해도, 다음날 정말 패턴화된 핑계 (어찌나 가족사들이 많은지)를 이야기하며 아예 퇴사를 하거나 오늘만 출근못한다고 하고 잠수를 타버린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네,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네, 사고가 났네, 아이를 케어해야해서 안되겠네 등등. 채용에서의 순진함은 버렸지만 난 아직도 어찌보면 '어른'들의 말하는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기에는 아직도 멀었다.
이런 의도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다면 그때서야 나는 '성장'했다는 느낌을 내 스스로 받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