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가 직장내 괴롭힘 타겟이 되는 과정

막내야, 제발 그 강을 건너지 마오.

by 고룩한밤

K부장에게는 회사가 전부다. 나이가 나이기에 어릴 때처럼 기싸움 없이, 척하는 것 없이 속 시원하게 마음 터놓을 친구도, 애인도, 취미도 없다. 그런 그녀에게 회사는 자기 세상의 전부. 그렇기에 회사에서 생기는 자그마한 일도 그녀에겐 아주 대단히 심각하고 화낼만한 일이고, 여러 단톡방을 오고 가며 여기저기 씹어대고 다녀야 하는 일이 된다. 작년 이맘때쯤 그런 그녀에게 희생당하기 딱 좋은 어린양이 입사했다. (기존에 있던 막내는 초장에 K부장을 알아보고 나에게 화이팅하라는 쪽지를 남긴 채 도망쳐버렸다.)



위대하신 팀장에 대한 충성이 부족해

아직 한참은 더 커야 할 내가 누군가를 정의 내리고 평가한다는 게 건방지지만 지난 2년간 경험한 K부장이라는 회사원에 대해 정의하자면 이렇다.


일 많은 거 싫어, 이 나이에 새로운 업무는 무슨! 하던 일만 할 거야, 팀원들이 무슨 업무를 하는진 모르지만 알아서 잘해야 돼, 하지만 다들 팀장 대접은 똑바로 해줘야지, 마지막으로 내 실적에 도움 안 되는 팀원은 그저 무능력에 화풀이해도 되는 대상이야.


나는 다행히도 그녀의 입맛을 잘 알았고 그녀의 실적 달성에 도움 되는 팀원이라 비교적 평탄한 사이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사회생활이라고는 고작 몇 번의 인턴 경험이 전부였던 신입 막내는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그녀가 물어뜯기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대리님, 새로 들어온 A 씨 말이야, 대리님이랑 동갑인데 왜 이렇게 다르지?"


"왜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니, 매일 아침마다 달랑 본인 커피만 사 와서는 혼자 날름 먹잖아, 물~론 팀원들 것도 다 사 와야 하는 게 의무는 아니지만. 다른 팀원에 팀장까지 있는데 혼자만 커피 사 와서 먹는 꼴이 참, 요즘 MZ라는 게 이런 건가?"


위대하신 팀장님이 계신데 감히 신입 막내 따위가 혼자 커피를 사 와 마시고 있는 모습이 거슬리셨던 것이다. 이 외에도 팀장이 사주는 데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아메리카노 외 메뉴를 고른다든지, 간식을 사 와서 자리에서 혼자 먹는다든지, 식당에 왔는데 수저 세팅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다든지 등 K부장에 대한 충성심이 부재한 행동들로 신입 A씨는 타겟이 되고 말았다.


타겟이 된 이유들은 너무나 사소해서(찌질하다라는 표현도 쓰고 싶다.) 그런 것들로 혼내기엔 본인의 평판을 해치기 때문에 업무적으로 조그마한 실수라도 생기면 그동안 쌓아왔던 화를 전부 표출해내기 시작했다. 오타라도 나는 날엔 마치 A씨가 술 마시고 연락 두절된 남자친구라도 된 마냥 장문의 카톡으로 네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봐부터 시작해서 왜 자기를 실망시키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유치한 사랑싸움을 이어나갔다.

그럴 때마다 분명 화난다고는 하는데 짜릿한 희열을 느끼는 사람처럼 신나서 A씨의 험담을 늘어놓는 다고 느껴졌던 건 내 착각일까. A씨가 타겟이 되는 동안 나는 남자친구에게 상처받고 위로를 구하는 썸남이자 감정쓰레기통 담당이었다. 매일 아침 자리에 앉으면 어제저녁에는 어떤 식으로 A씨가 화나게 했는지, A씨를 생각하느라 밤새 얼마나 밤잠을 설쳤는지 내내 들어주며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리액션까지 곁들어야 했다.




안녕하세요, 히키코모리입니다.

"요새 OOO 핫하던데 가보셨어요? 어제 다녀왔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아니 모르는데, 근데 별론데? 그게 왜 핫해? A씨 그런 거 좋아하는구나..? 요새 취향은 이상해, 거기 말고 ㅁㅁㅁㅁ이 더 좋지"


항상 K부장과의 대화는 이런 식이다. 본인이 못해본 건 다 별로고 수준 이하의 질 낮은 것, 본인이 좋아하고 경험해본 건 다 제일 좋고 수준 높은 것. 항상 상대방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스타일이라 나는 집순이에, 묵묵한 사람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고 막내 A씨 또한 점점 '그냥 집에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보통은 매주 그냥 집에만 있다고 말한다면 두 가지의 경우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집을 좋아하는 타입이거나 사생활을 공유하기 싫은 타입이거나. 그렇다면 둘 중 하나겠거니 하고 넘기면 될 텐데 K부장에겐 어림도 없는 일이다.


"대리님, A씨 진짜 이상하지 않아? 맨날 집에만 있다고 하고.. 친구도 없는 것 같아. 회사에서도 사회성 떨어져 보이는 게 친구가 없어서 누구 하나 알려주는 사람이 없나?"


말 많은 K부장으로부터 프라이버시를 침범당하고 싶지 않았던 A씨는 그렇게 사회성 떨어지는 히키코모리가 되고 말았다. 일 못하고 친구 없고 집에만 있는 히키코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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