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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중 Nov 07. 2019

치매 망상 대처 시 명심해야 할 한 가지

치매와 살아가기- 망상 (번외 편)

할머니는 아들이 준 용돈을 서랍에 넣고 이를 잊어버렸다. 어느 날 아들이 돈을 잘 쓰고 계신지 물어보자 그제야 할머니는 돈이 없어진 걸 알았다. 여기저기 뒤져도 돈이 안 나오자 할머니는 며느리가 돈을 훔쳐갔다 생각해 화를 냈다. 현명한 며느리는 흥분하지 않고 할머니를 달래며 같이 돈을 찾았다.  여기저기 살펴보던 중 다행히 서랍에서 돈을 찾아냈고, 할머니는 '의심'을 풀었다.


이는 망상과 의심에 대한 강의 중 나오는 예시이다. 물론 글에 나와 있듯 이는 단순 의심에 대한 내용이다. 이때 나는 청중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럼 똑같은 상황에서 '망상'이라면 내용이 어떻게 바뀔까요?”


망상은 정신병리학(Psychopathology)적으로 ‘잘못된 신념 (false belief)’이라 정의 내린다. 우리는 평상시에 ‘신념’이라는 단어를 어디에 쓸까? 가장 대표적인 건 종교, 정치와 같은 단어와 붙을 때이다. 종교적 사고, 정치적 사고라는 말은 뭔가 어색하다. 종교적 신념, 정치적 신념이라 했을 때 충분히 그 의미를 전달한다. ‘사고’와 ‘신념’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이해해 볼 수 있다.


불교 믿는 사람이 기독교를 믿는 사람에게 석가모니의 좋은 말씀을 설명했다고 치자. 아무리 기독교인이라도 석가모니의 말씀을 이상하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참 좋은 이야기다.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는 ‘사고’의 레벨에서 둘 사이에 대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자 그럼 불교신자가 기독교 신자한테 ‘석가모니의 말씀이 이렇게 좋으니 불교를 믿으십시오’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누군가는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것이고 어떤 사람은 감정을 드러내며 단호히 거절할 것이다. 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 이는 ‘신념’의 레벨에서 대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신념이란 내가 어떤 사람들과 살아왔고 어떤 경험을 해 왔는지에 따라 오랜 기간 동안 숙성되어 만들어진 믿음이다. 신념은 자신에게 옳고 그름을 따지는 기준이 되나 이는 사실에 근거한다기보다 느낌이나 정서, 감정 쪽에 더 가깝다.


다시 망상의 내용으로 돌아가 보자. 망상은 '잘못된 신념'이라고 정의 내렸다. 즉 신념 레벨의 문제이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하는 실수가 있다. 여전히 신념의 레벨이 아닌 사고의 레벨에서 다루려 한다. 망상을 설득하려 하거나 교정하려 한다. 특히 가족들이 그런 대응을 하는 경우가 많다. 충분히 설명해주면 바뀔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에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망상을 더욱 자극할 뿐이다.


망상은 논리적 사고로 이해 가능한 사고의 문제라기보다 '감정'의 문제에 가깝다. 가장 대표적인 감정인 '화'를 예로 들어보자. 사실 화가 튀어나오는 순간에는 이를 조절할 방법이 없다. 여러 심리학 책에서 이야기하는 방법들로 조금 지연시킬지언정 그 순간 터져 나오는 화를 막을 수 없다.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화가 가라앉고 난 이후이다. 화를 내서 나에게 도움이 된 것이 있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됐을 때 과도하게 화내지 않는 힘을 쌓게 된다. 망상도 마찬가지이다. 망상에 휩싸였을 때 직접 부딪치면 안 된다. 우리조차 망상의 파도에 휩쓸리면 안 된다. 감정에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한다 (distancing). 일단 그들을 망상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돌린 후 무엇이 망상을 자극했는지 찾아야 한다. 배고픔이나 최근 해결되지 않은 변비가 원인일 수도 있고 하루 종일 방에서만 지내면서 생긴 무료함이 원인일 수도 있다. 망상의 내용(content) 보다 망상의 과정(process)에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 앞에서 질문한 내용의 답은 다음과 같다. 할머니가 아무리 돈을 찾았다 하더라도 며느리가 돈을 훔쳤다는 믿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믿음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할머니의 머릿속에서는 또 다른 생각이 자라난다. '돈을 가져간 건 며느리가 확실하다. 하지만 지금 돈이 발견된 건 아들놈에게 보여주기 위한 며느리의 쇼일 뿐이다. 아들이 안 보면 또 내 돈을 훔쳐갈 것이다.' 여기서 며느리가 '제가 안 가져갔어요, 돈은 어머니가 받았잖아요. 전 받은지도 몰랐다고요.'라며 부딪치면 또 다른 망상이 자라난다. '저렇게 화를 내는 것을 보니 다른 꿍꿍이가 있구먼. 보니 저 돈 훔쳐서 자기네 집에 몰래 갔다 줬을 수도 있지. 아니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을 수도 있어. 그때 전화하면서 내 눈치를 봤었지. 틀림없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는 게야.'


중앙치매센터에서 제안하는 다음과 같은 방법들은 망상을 다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망상과 환각은 일시적이거나 짧은 기간에 나타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하며, 돌봄 제공자가 평온한 마음을 가지고 대응하여야 합니다.

망상은 대게 해로운 것은 아니므로 환자를 편안히 안전하고 즐겁게 해 주면 효과가 있습니다.

환자 앞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환자의 의심이나 행동, 환자가 잃어버렸다고 의심하는 물건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조롱하는 말투를 사용하지 않으며, 특히 귓속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환자가 주장하는 것에 대해 부정하거나 논쟁하지 말고 환자의 감정을 받아들여 환자를 안심시켜 줍니다. 환자의 주장을 부정하거나 설득하려고 하면 오히려 환자는 강한 불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물건이 없어졌다고 하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같이 찾아봅니다. 돌봄 제공자는 어디까지나 도와준다는 행동을 하고 환자 자신이 물건을 찾도록 합니다. 물건을 찾더라도 환자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잃어버렸다거나 훔쳐갔다고 주장하는 물건을 찾은 경우, 환자를 비난하거나 훈계하지 않습니다. 물건을 발견했을 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요한 물건은 환자가 믿는 사람이 보관하거나 스스로 가지고 있게 합니다. 귀중품은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두고, 쓰레기통을 비우기 전에 다시 확인하며, 실제 분실되는 경우를 대비해 같은 물건을 2개 이상 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도둑 망상으로 환자가 방을 지키려고 방안에 있기를 고집하면 위험하지 않는 한 방에 있도록 허용합니다.

환자의 생활공간은 단순하며 안전하게 유지합니다.

환자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전환 요법을 적용합니다. 음악, 운동, 친구와의 대화, 사진첩 보기, 애완동물과 놀기 등을 통해 환자의 주의를 돌려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망상이나 환각이 심한 경우 전문의에게 알리며, 약물치료가 도움이 됩니다.


치매 망상 대처 시 다음을 명심하자.

치매 망상은 파도와 같다. 파도가 강하게 밀려올 때 온몸으로 부딪치지 말라. 우리조차 감정에 휘둘리면 망상은 모두를 옥죄일 것이다. 감정적 거리를 두고 그들이 만들어 낸 망상의 파도에 몸을 맡겨라. 망상을 부정할 필요도 억지로 바꾸려하다보면 더 큰 아려움에 부딪칠 것이다. 망상의 내용보다 망상으로 인해 그들이 느낄 불안, 초조, 두려움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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