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와 살아가기 - 실전 편 4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나면 항상 가슴이 먹먹해진다. 생일상을 받으러 상경한 치매 노모가 지하철 서울역 구내에서 남편을 놓친 뒤 실종되어 버린 후 보이는 가족들의 고통과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엄마의 사진을 어떤 걸 쓰느냐를 두고 의견이 갈라졌다. 최근 사진을 붙여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누구도 엄마의 최근 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너는 언제부턴가 엄마가 사진 찍히는 걸 매우 싫어했다는 걸 생각해냈다.
소설이나 참 소설 같지 않은 묘사다. 한 비평가의 표현처럼 엄마를 '잃어버리기' 전에 엄마를 '잊어버린' 상황이다. 이런 상황들이 실제 치매 노인 실종 이후 가족들이 겪게 되는 절망감과 죄책감의 모습이다. 치매 노인의 배회 증상은 실종으로 이어질 경우, 치매 노인도 사망까지 이를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들을 잘 돌봐왔던 가족들에게 엄청난 죄책감을 안긴다. 이런 이유로 치매 노인 가족들은 배회 증상이 나타나는 걸 기점으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같은 시설 입소를 적극적으로 고려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승희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2015~2019년 2월 연도별 실종자∙가출자 사망 통계 현황>에 따르면, 2017년 치매 실종 1만 명 시대에 도달했다. 2018년도에는 12,124명의 치매 노인이 실종 후 발견되고, 128명이 사망하였다. 물론 통계치로 보자면 매해 99.9%의 실종 치매 노인이 되돌아 오지만 안타깝게도 배회로 사망한 노인들이 매해 늘어나고 있다. 99.9%의 치매 노인을 귀가시키는 경찰 분들과 사회기관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그러나 돌아가신 128분의 치매 노인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 오로지 가족들에게 책임 지울 수만 없고 입소시킨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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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마비, 뇌졸중 치료에 골든 타임이 있듯이 치매 노인의 실종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기 위한 골든 타임이 있다. 바로 24시간이다. 24시간이 넘어가면 그들을 찾을 확률이 확연히 떨어진다. 24시간이라는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 그전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중앙치매센터에서는 다음의 3가지를 준비하라고 안내한다.
첫째, 실종 위험이 있는 만 60세 이상 치매어르신의 옷에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인식표
둘째, 배회감지기(GPS형, 매트형)
셋째, 경찰청에 지문등록
각 지역 치매 안심 센터나 보건소에 연락하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이다.
경찰청 브리핑에 따르면 치매노인 실종 신고 후 발견까지 평균 11.8 시간(708 분)이 걸리는데 배회감지기 하나만 갖춰져도 실종 신고부터 발견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1.1시간 (66분)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배회감지기 업그레이드한 새로운 장치들이 개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일산 동구 치매 안심센터에서는 이와 더불어 치매 특화사업으로 '꼬까신 사업'을 진행 중이다. 배회 감지 칩을 신발 밑창에 심어 환자의 배회 활동을 감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에는 깔창형 배회 감지기를 통해 비용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이런 훌륭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치매 가족들이 알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된다. 배회 증상의 대처를 요양시설 입소로 결론짓게 되면 위의 사업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가족들이 조금 넓게는 지역사회에서 치매 노인들을 품기 위해서 이런 시스템의 보급과 홍보에 우선 힘써야 한다.
2018년 중앙치매센터에서 발표한 치매 통계 자료에 의하면 전국 705,473명의 추정 치매 환자 중 배회 감지기 이용자 수는 2,154명, 인식표 발급은 18,819건, 발급률 2.7%이다. 물론 지역마다 보급률에 편차가 나겠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보급률을 올려야 한다.
여기에 GPS와 같은 기계에 의존하는 방식은 항상 기계 오류를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정확도가 높은 GPS 기계라 할지라도 치매 노인들이 달고 다니기 힘들어하거나 충전방식이 복잡하다면 효용성이 떨어진다. 치매 노인이 GPS 연결이 어려운 산으로 배회하게 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이가. 그렇기에 최근에는 치매 안심 마을이라는 콘셉트가 관심을 받고 있다. 네덜란드의 호그 벡 마을처럼 실제 치매 환자들로만 구성된 마을 자체를 조성하려는 노력도 있고, 일본의 지역포괄케어처럼 치매 노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역사회 자원을 찾아내 네트워크를 만들고 강화하는 형태의 시도도 있다. 앞으로 치매 노인이 요양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밑바탕이 될 시도들이라 여러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민해야 할 것들이다. 치매 안심 마을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겠다.
변비나 단순한 무료함부터 환청 같은 심각한 정신 증상까지 배회를 악화시키는 요인은 수십 가지다. 그렇기에 배회를 다루는 정형화된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물론 환청이나 초조에 의한 배회처럼 원인이 명확한 경우는 약물 치료를 통해 배회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빈도가 높지 않다. 대부분은 그 원인을 짚어내기가 어렵다. 복합적이다. 이럴 경우 배회를 '증상'이 아닌 '욕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식욕, 성욕, 수면욕과 같은 본능, 욕구 말이다.
'증상'의 관점에서 보면 이유가 무엇인지 찾고 이를 변화시키는는 것이 중요하지만, '욕구'의 관점에서는 원인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해도 괜찮다. 이를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식욕을 해결하는 방법은? 마음으로 달랜다고 해결되나? 약을 먹는다고 해결되나? 아니다. 일단 먹어야 해결된다. 수면욕도 마찬가지다. 커피를 진하게 타 마시고, 신경 자극제를 먹고 쏟아지는 잠을 순간 견딜 수는 있다. 그러나 이건 일시적이다. 결국 수면욕도 잠을 자야 풀 수 있다. 배회를 증상이 아닌 욕구의 관점에서 보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배회도 결국 '배회해야' 해결된다.
치매 환자들의 배회가 실종으로 이어지거나 주위 사람을 자극하지만 않는다면, 적당한 배회는 그 날 수면과 초조 증상 완화, 식사량 증가에 도움이 되는 것을 종종 본다. 배회를 막으면 오히려 공격적으로 반응하거나 초조 증상이 예상보다 더 크게 나타나기도 한다. 자, 그럼 여기서 질문이 바뀐다. 어떻게 배회를 해야 하는가? 핵심은 '안전하게' 배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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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세 가지 그림에서 치매 환자가 화살표 방향으로 배회한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안전하게' 배회 활동을 할 수 있는 구조는 어떤 것일까?
(1) 직선 순환 구조 (2) L-자 모양 순환 구조 (3) 뜰 안 연속 통로 구조
그리고 답을 골랐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2011년 발표한 Gesine Marquardt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치매 환자의 안전한 길 찾기를 위해 다음 4가지를 강조했다
(1) 단순하고 직관적이어야 한다. (글이나 몇 단계의 해석을 통해 파악해야 하는 환경은 피해라.)
(2) 모든 구조가 한눈에 들어와야 한다.
(3)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환경은 피해라.
(4) 위치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단서(enviormental cue)가 있어야 한다.(예: 가구, 독특한 건물 등등)
다음을 만족하는 구조는 무엇일까?
정답은 직선 순환구조이다. L-자형이나 연속 통로형 순환 구조는 방향이 바뀌고 모든 구조가 한눈에 파악되지 않는다. 그리고 방향이 바뀌면 위치를 파악하는 단서를 놓칠 수 있다. 그에 비해 직선 순환 구조는 위의 4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된다. 만약 가족들이 치매 노인의 배회 욕구를 풀기 위해 같이 돌아다닌다면, '빨리' 가는 길보다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직선 순환 구조의 길을 이용하자. 멀리 돌아가더라도 위의 조건에 적합한 길로 목적지에 가는 연습을 반복하자. 이는 배회를 하는 노인의 인지적 부담을 줄여 '안전한' 배회를 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배회가 실종으로 이어져도 쉽게 노인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위에 제시한 내용은 한 가지 예시일 뿐이다. 배회를 없애야 할 '증상'이 아닌 '욕구'로 바라보는 관점은 배회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또 다른 시선을 확장시켜준다. '안전한' 배회를 위한 고민을 가족, 지역사회, 전문가 집단이 같이 공유하고 발전시켜 간다면 배회로 인해 요양시설로 가게 될 많은 치매 노인들을 다시 지역사회에서 품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