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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중 Oct 06. 2019

치매와 살아가기

치매와 살아가기-사전 준비 2: 받아들임. 이음의 첫 단계

지역사회에서 치매 강의를 하다 보면 항상 말하는 레퍼토리가 있다.

'우리나라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2017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중 추정 치매 환자는 약 70만 명, 평균 치매 유병률은 10.0%이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2024년 백만 명, 2039년 2백만 명을 넘을 것이다.'

'치매는 SNSB나 CERAD 같은 치매 평가 도구를 이용해 인지기능장애 여부 및 정도를 평가하고 뇌영상검사와 치매 관련 피검사를 통해 치매의 종류를 감별할 수 있고 조기 발견되면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6개월에서 2년까지도 막을 수 있다.'

수치와 의학적 지식을 통해 우리가 치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토로해보지만 청강하는 분들의 표정은 항상 솔직하다. 두 눈이 반쯤 감겨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해보고 싶었다.

많은 시청자에게 감동을 줬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http://tv.jtbc.joins.com/photo/pr10010994/pm10051124/detail/13967


‘찬란한 시간을 위한 등가교환의 원칙’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타임리프를 사용한 한지민이 겉모습은 노인인 김혜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판타지 로맨스 이야기로 알았다. 그런데 우리 중 10명 중 한 명이 겪게 될 현실이라는 반전이 벌어졌다. “저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습니다.”라는 독백으로 시작되는 현실이었다. 김혜자가 아빠라고 생각했던 나이 든 안내상은 아들이었고, 괴롭히던 건달들은 요양병원 직원, 복지관에서 만난 친구들은 같은 요양병원 환자들이었다. 알츠하이머 병은 외롭고 힘들었던 삶을 살았던 혜자를 25살까지의 행복했던 기억에 머물게 했다. 

젊은 김혜자 삶의 고통과 무게를 보면서 우리는 25살에 머물러 있는 알츠하이머 김혜자를 안타깝게만 여기지 않는다. 어느 순간 알츠하이머 김혜자가 경험하고 있는 망상과 환각은 힘들었던 그녀의 삶에 대한 마지막 휴식처럼 느껴진다. 


물론 드라마다. 현실과 다른 부분도 분명 있다. 그들이 신경증적 장애 중 하나인 해리(Dissociation) 환자처럼 현실과 격리되어 지속적으로 환각과 망상의 세계에만 빠져 지내는 것은 아니다. 또 환각과 망상의 내용은 아름다운 시절에만 머물지 않는다. 삽화적 기억(episodicmemory)이 아닌 감정을 기억(emotional memory)하는 변연계(limbic system)는 긍정적인 감정(positive emotion)보다 트라우마를 일으킬 만한 부정적인 감정(negative emotion)을 더 잘 기억한다. 그래야 뇌는 생존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치매 환자의 망상은 주로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부정적 감정을 기반으로 한 피해망상이 많다. 


하지만 ‘눈이 부시게’가 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줬는지 생각해보는 건 의미가 있다. 여타 치매환자들이 나오는 다른 드라마와 달리 단순히 치매 고통받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거나 이상 행동을 하는 치매 환자를 보여주며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두려움을 자극하는 대신 그들의 감정, 마음과 그들이 만들어 낸 세계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즉 치매라는 무서운 병이 아닌 사람을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삶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들이 현실과 분리되어 만들어 낸 세계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아직 치매는 완치가 없다. 

치매가 진행되고 나면 지금까지 나온 치매 약물(도네페질, 리바스티그민, 메만틴, 갈란타민 등)을 사용해도 진행되는 것을 6개월에서 2년 정도 늦출 뿐이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에서 수백억을 들여 개발했던 치매 약물의 대부분이 3상 실험에서 실패했다. 신문 기사에서 ‘치매 원인 발견, 치료의 실마리를 잡았다’ 같은 기사를 읽으면 대부분 동물 실험 단계일 뿐이다. 

하지만 치매를 완치할 수는 없어도 같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받아들이기 힘든 그들의 감정과 행동을 주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해주고, 그들의 불안정한 마음을 달래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이어주는 것, 즉 그들이 만들어낸 현실과 우리의 현실을 연결해 주는 작업을 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나쁜 치매’를‘착한 치매’로 바꾸는 과정이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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