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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중 Oct 23. 2019

나쁜 치매 증상으로서의 '불안'

치매와 살아가기 - 실전 편 2

예순이 넘어 보이는 아들이 여든 후반의 노모를 모시고 진료실에 들어왔다. 노모는 아들이 어머니의 증상 양상을 설명하는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질문을 하면 수줍은 미소를 지었지만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럼 옆에서 아들이 대신 대답을 해줬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봤을 때는 전형적인 착한 치매 모습이었다. 아들은 아내와 사별한 후 혼자 살면서 어머니와 같이 지내왔다. 치매가 진행되기 전 어머니는 혼자가 된 아들을 그렇게 걱정했다고 한다. 밥 먹을 때도 일 때문에 늦게 들어온 아들 옆에 앉아 이것저것 반찬을 숟가락 위에 올려놨다. 일 때문에 아들이 늦으면 자기가 잠들어 문을 열어주지 못할까 봐 자기 방에 들어가질 못했다. 자기가 없으면 누가 아들을 돌보겠냐는 이야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이야기했다고 한다. 노모의 그런 모습은 치매가 진행돼도 달라지지 않았다. 노모는 아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아들이 없으면 불안해하고 대문 밖에서 기다렸다. 일을 해야 하는 아들 입장에서 노모를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문제가 터진 건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서다. 아들이 돌아왔는데 매번 대문 앞에서 기다리던 노모가 사라졌다. 아들은 허겁지겁 경찰에 신고했고 다행히 가까운 거리에서 헤매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경찰로부터 안타까운 마음은 알겠지만 이렇게 어머니를 이렇게 방치해두면 방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억장이 무너졌다. 점점 경찰에 어머니를 실종신고하는 빈도도 늘었다. 결국 아들은 어머니를 요양원에 데려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절대 자기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어머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들은 세 가지를 궁금해했다. '어머니의 불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건지',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리고 '요양원에 어떻게 갈 수 있는지'. 사실 이건 아들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들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나쁜 치매 증상으로서의 '불안'의 가장 핵심적인 세 가지 질문이기도 하다.


첫째, 어머니의 불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어머니는 아들 옆에서는 착한치매지만 아들이 없으면 나쁜 치매로 돌변한다.

나쁜 치매의 불안은 전형적인 '분리불안 (separation anxiety)'의 문제다.

사실 분리불안은 정상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12개월이 된 신생아는 엄마에게 온전히 의존하다 서서히 바깥세상을 향한 탐험을 시작한다. 그때 아이는 자신의 엄마가 뒤에 있는지 확인 후 안심하고 다시 앞으로 나간다. 이 모습이 바로 분리불안의 시초이다. 그렇게 세 살 정도가 되면 정상발달로서의 분리불안은 가라앉는데 그것이 치매로 인해 다시 노년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런 걸 보면 정말 치매는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나쁜 치매 증상으로서의 분리 불안의 첫 원형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치매 노인의 분리불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거 부모와 자식 사이에 벌어졌던 경험들에 연결고리가 있다. 자식에게 저녁을 차려줘야 한다와 같은 '부모로서의 역할'에서 오는 걱정, 부모로서 충분히 뒷받침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기반으로 한 '자녀의 삶에 대한 걱정', '둘 사이에 벌어졌던 심리적 트라우마'같은 기억들이 그 뿌리가 된다. 하지만 일반인과 달리 치매 노인에게는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불안의 내용)은 사라지고 그 경험에 기인한 감정(불안)만 남아 나쁜 치매 증상으로서 불안의 정도에 영향을 미친다.


'집에 돌아오지 않은 아들에 대한 걱정'과 '자신을 돌보느라 재혼을 못한다는 죄책감'은 치매로 인해 어느 순간 노모의 마음속에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한 불안은 대문 밖에서 아들을 기다리며 눈덩이처럼 커져갔을 것이다. 거기다 오랜 기다림의 반복은 지금 아들을 기다리며 느끼는 어머니로서의 감정과 과거 어린 시절 어머니를 기다리던 노모의 감정을 이끌어 내 뒤섞고 더욱 강한 불안으로 번져 나갔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머니는 자식을 기다리는 것이면서 동시에 어머니를 기다리는 것이기도 하다. 자식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감정의 영역에서는 자식을 잃고 동시에 어머니를 잃는 경험이다. 노모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자식 옆을 떠나지 않으려는 이유일지 모른다. 돌아온 자식에게 치매 노인이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는 건 그런 마음의 작용일 것이다. 


둘째, 어머니의 불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사실 이에 대해 정해진 정답은 없다. 분리 불안이 치매 노인과 그 가족들과의 관계를 원형으로 형성되기에 그들의 삶이 다른만큼 분리불안의 형태와 이를 다루는 방법 또한 모두 다르다. 이는 가족과 치료자들이 치매 노인을 이해하며 같이 머리를 맞대어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분리 불안을 대처하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를 고려하여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1) 반응성 responsiveness (2) 일관성 consistency (3) 예측가능성 predictability


첫째, 반응성(responsiveness)이란 표정, 행동으로 보이는 신호와 요구를 적절하게 읽어내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들에게 똑같이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를 어머니는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배가 고픈 건지, 어디가 아픈 건지 또는 어머니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인지. 나는 이런 능력은 타고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애를 키우며 느낀 건 이는 아이와 같이 살면서 부단한 관심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치매 노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보이는 반복적인 행동, 말, 감정에 귀를 기울이자. 그것의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 있는 반응성의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자. 혹 반응성이 높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치매 노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같이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둘째, 일관성(consistency)은 주보 호자의 치매 노인에 대한 수용적 태도가 일관적으로 유지돼야 함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나는 매일 아침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살펴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여러분은 '뒤센 미소(Duchenne smile)'를 아는가? 입술 근육과 눈가의 근육을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진실된 감정을 전달하는 미소다.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은 말보다 표정으로 전달된다. 내 표정을 관리하여 치매 노인의 감정이 이해되었음을 몸짓 혹은 표정으로 전달되도록 하여 빨리 안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스킨십도 중요하다. 회진 돌 때 치매 노인과는 여러 말보다 손을 잡고 웃어주면 훨씬 그들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마지막으로 일관성을 위해 주보 호자 역할을 하는 사람의 마음의 건강도 잘 챙겨야 한다. 돌보는 사람의 마음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치매 노인에게 절대 수용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없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간과하다 갈등이 악화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셋째,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은 노인에게 기대되는 과도한 요구 사항을 줄이고 단순하며 규칙적인 생활의 틀을 만들어 하루를 예측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인에게 단순하며 규칙적인 생활의 틀을 만드는 건 중요하다. 그들의 삶이 무료함으로 채워지면 이에 비례하여 불안감은 더 빠르게 악화된다. 사실 가족들의 힘만으로는 무료함을 채우기 어렵다. 그래서 요양보호사에게 부모의 돌봄을 부탁하거나 중간단계로 주간보호센터, 치매안심센터에서 운영하는 치매쉼터를 활용할 수 있다. 아들 혼자 채우지 못하는 것을 주위 전문가들의 손길로 채워줄 수 있다. 단, 분리 불안으로 인해 처음에 치매 노인은 심한 불안감과 거부감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예상하고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종류의 불안은 일시적이지만 무료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분리불안은 더 지속적이고 파괴적이다


다행히 아들은 어머니의 마음을 잘 읽었다. 그러나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남겨둔 노모에 대한 불안감이  아들의 마음에 큰 병을 만들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불안을 일관적으로 포용해주기에는 지쳐 있었다. 아들도 치료를 받기로 했다. 그리고 매일 아들만 기다리며 집에서만 지내는 노모의 무료한 생활 패턴을 바꾸기 위해 노인장기요양신청을 하여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기 위한 준비를 하기로 했다. 주간보호센터로 연계되기 전까지 치매 안심센터에 있는 쉼터를 이용하기로 했다. 상담 선생님은 아들 사진을 챙기고 아들에게 하루에 세 번 전화를 해주기로 했고 아들의 목소리를 들려줘 노모의 불안감을 가라앉히기로 했다. 그리고 초반에 악화될 분리불안에 대비하여 소량의 항불안제를 복용하도록 하고 추가적으로 비상약을 챙겨 놓기로 했다. 아들은 다행스럽게 퇴근 시간과 쉼터 종료시간을 맞출 수 있었고 쉼터에 들려 어머니를 모시고 가기로 했다. 이제 노모에게 '집'이란 아들이 없는 두려움 가득한 공간이 아닌 아들과 같이 돌아가는 쉼터가 되길 기원했다.


셋째, 요양원 입소 시 노인의 불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치매 노인의 분리불안 문제가 두드리는 상황이 있다. 바로 요양원 입소할 때다. 치매는 결국 진행하는 병이다. 일정 시기가 지나면 전문적인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가족들은 치매 노인을 져버린다는 죄책감에 불안을 느끼고, 환자는 낯선 상황에 대한 두려움에 불안이 커진다. 서로의 불안은 요양원 입소를 계기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나쁜 치매 증상으로서 망상 및 공격성으로 입원 치료받은 할아버지가 있었다. 나쁜 치매 증상은 어느 정도 조절되었으나 치매로 인한 자기 관리 기능이 떨어져 돌봄이 필요한 상태가 되었다. 이에 가족들은 퇴원 전부터 요양원 입소를 준비했다. 가족들은 할아버지에게 미리 요양원 사진을 보여주고 앞으로 이곳에서 지낼 것임을 반복적으로 설명해줬다. 가족들이 요양원 가까운 곳에 살았기에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음을 설명하고 할아버지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퇴원 후 한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가족들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오자마자 경기를 하고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간질 발작은 아니었다. 분리불안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가족들도 불안에 휩싸여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가족들을 진정시키고 일단 가져간 비상약을 복용하도록 한 뒤 교육시킨 내용을 상기시켰다.


요양원 입소 후 극단적인 분리불안을 보이면 가족들은 죄책감에 다시 치매 노인을 데려오려 한다. 하지만 이것이 옳은 선택일까?  요양원 입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가족들에게 나는 역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린 자식들 어린이집 보낼 때 처음에 어떻게 하셨나요?, 적응하는데 얼마나 기간이 걸렸나요?'

어린이집에 입소를 하게 되면 부모와 아이는 적응기간을 반드시 갖게 된다. 처음에 엄마와 아이는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서 같이 지내다 점차 한 시간씩 분리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가 견디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면 점점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늘리게 된다. 아이가 엄마가 돌아온다는 확신과 어린이집이 안전한 곳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면 그때부터 분리 불안이 완화된다. 보통 이 기간이 아이 기질에 따라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세 달까지 걸리기도 한다. 요양원에 가는 배우자나 부모도 마찬가지다. 가족들은 한 달에서 길게는 두, 세 달간 치매 노인의 분리 불안을 감당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불안에 휩싸여 요양원을 여기저기 바꾸거나 잦은 환경의 변화를 경험하게 하면 노인의 분리불안은 점점 더 악화될 뿐이다.


불안은 고통스럽지만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불안은 달래야 한다. 그러나 치매 노모의 분리불안을 통해 자식은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근원적 불안과 어머니로서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 맘 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감사가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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